김치 파동, 호들갑 아닐까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
  • 승인 2005.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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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건강] 국산 김치에서도 기생충 알 검출…위험도 낮은 만큼 차분히 대처해야

  중국산 김치에 이어 국산 김치에서도 기생충 알이 검출되었다. 우리의 주식인 김치에서 납이나 기생충 알같이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나온 것은 실로 유감이다. 하지만 지난 9월 납 김치에서 촉발된 김치 파동이 진정은커녕 확산되는 과정과, 이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니 더 큰 안타까움이 든다.

 먼저 이번 김치 파동을 보건학 측면에서 분석해 보면,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나왔다는 것은 인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 요인'이 확인되었다는 뜻이다. 위험 요인은, 반드시 어떤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기생충 알이 실질적으로 질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기생충 알이 들어 있는 김치를 직접 먹어야만 한다. 

 그런데, 기생충 알이 검출된 김치 회사는 전체의 3.2%에 지나지 않았고, 연간 김치 생산량 측면에서 보면 이들 회사의 비중은 그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 설사 운이 나빠 기생충 알이 들어 있는 김치를 먹었다고 하자. 하지만 이 경우에도 기생충에 감염될 만큼 충분히 많은 기생충 알을 섭취해야 하고, 기생충 알이 인체의 소화 기관에 들어간 뒤 질병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강한 병원성을 지녀야 한다. 

 

 
기생충 알은 어느 정도 성숙한 자충포장란이 되어야 몸 속에서 부화하여 유충이 될 수 있는데, 이번에 발견된 기생충 알은 모두 인체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 미성숙 알이다. 또한 인간은 기생충과 오랜 세월을 함께 산 결과 그에 맞는 면역 체계를 발달시켜, 기생충 알을 먹어도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이를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김치 파동은 위험 요인(hazard)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인시켜 주었으나 그로 인한 위험도(risk)는 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 측면에서 볼 때 크게 문제될 것 없는 이번 일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우리의 사고 방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듯싶다. 우리는 각종 사회 현상에 대하여 '흑' 아니면 '백'이라는 이분법적 판단을 강요받아 왔다. '0' 아니면 '1' 같은 디지털식 계산에 익숙했지, '확률적' 접근은 그리 친숙하지 않다. 

조사 대상의 3.2%만 ‘부적합’

 그런데 이같은 논리를 안전성의 판단 기준으로도 자주 적용했다. 위험 요인이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에만 관심을 집중했지, 위험 요인의 실체나 그로 인한 피해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인체에 대한 위해는 단순히 위험 요인이 존재하느냐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방사능 물질이나 석면과 같이 한번 노출되면 암을 일으킬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는 것들은 검출 자체가 중요한데, 이번 기생충 알처럼 단순히 존재 여부보다 섭취 확률과 섭취량, 독성이 더 중요한 경우에도 같은 잣대로 재단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무수히 많은 위험 요인이 존재한다. '제로' 리스크를 달성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설사 가능하더라도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위험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정하고, 그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법으로 규제하면 된다. 이번 김치 파동은 ‘사실’을 고려할 때 정부가 이런 식으로 터뜨릴 것이 아니라, 평소에 모니터링 수준에서 관리해야 할 성질에 가깝다.

 정부는 한쪽 면만 보지 말고 사회 전체의 이익과 피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냉철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정부의 유해 식품 관리 체계가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계속된다면 유해성 시비 논란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지라면·쓰레기 만두소·김치 기생충 알말고도 얼마든지 많은 소재가 대기하고 있다. 

환경과 건강 Gazette www.enh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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