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깨뜨릴 수 있는 ‘뇌관’ 건드리다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5.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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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기간당원제 개폐·유지 놓고 계파간 격돌…갈등의 골 갈수록 깊어져
 
10·26 재·보선 참패로 불거진 열린우리당 안 계파 갈등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문희상 체제 진퇴 문제를 놓고 벌어진 1라운드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쏟아져 친노·반노 대립으로 비쳤다. 하지만 1라운드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정동영·김근태 계보이든 유시민 의원이 속한 참정연이든 ‘지금 이 상태에서 더 싸우면 공멸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정세균 당의장도 지난 11월1일에 열린 비상집행위 첫 회의에서 ‘공동 운명체’임을 강조하며 비생산적 논쟁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1라운드 내홍이 비교적 일찍 사그라졌지만 이는 봉합에 가깝다. 분당까지 거론될 정도로 폭발성 있는 ‘2라운드 뇌관’이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2라운드의 핵심 쟁점은 기간당원제이다. 당내 문제라는 특성상 기간당원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는 있지만, 당에서는 개정·폐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안이다. 앞으로 공직·당직 후보를 선출하는 ‘게임의 룰’이 되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에 따라 향후 당내 지분과 이해득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참정연, 기간당원제 유지 강력 지지

현재 열린우리당 당헌에 따르면, 기간당원이 되려면 6개월 이상 당비(한 달에 2천원 이상)를 납부하고, 중앙위원이나 시·도당이 인정한 당원 연수나 당 행사에 매년 1회 이상 참여해야 한다. 그런 기간당원이 공직·당직 선출권과 출마 자격을 갖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동안 기간당원제에 대한 평가가 극단으로 엇갈려 왔다. 기간당원의 자격 요건을 완화하고 권한을 축소하자는 쪽은 기간당원제가 당심(黨心)과 민심(民心)을 분리하게 만들어 선거전에서 걸림돌이 되는 등 폐해가 너무 크다고 주장한다. 기간당원에게 공직 후보 선출권이 있다 보니 후보가 되려는 사람은 민심과 상관없이 기간당원을 늘리는 데만 주력하게 되고, 경쟁력 있는 후보가 출마하려고 해도 기간당원에게만 피선거권이 있다 보니 상당한 제약이 된다는 것이다. 염동연 의원은 “기간당원제가 당비를 대납하는 종이 당원을 양산해 당을 타락시키고, 과열 경선으로 당을 분열시키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간당원제 유지에 비판적인 한 의원실 관계자는 “현규정에서는 올해 8월 말까지 입당한 기간당원까지만 내년 지방 선거 후보 경선에서 선거권·피선거권을 가진다. 당 지지도가 떨어진 지금 오히려 더 당 지지세를 확장하려 노력해야 하는데, 지금 당헌·당규로는 아무리 기간당원을 늘린다 해도 소용이 없다”라고 말했다.

또 기간당원제 개폐론자들에 따르면, 지역 여건에 따라 기간당원제 요건이 현실적 장애가 되기도 한다. 영남권에 기반을 둔 한 의원은 “영남에서는 입당을 설득하는 것만도 어렵다. 당비를 계좌 이체 등을 이용해 납부하게 하고 1년에 한번씩 연수를 받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반면 기간당원제를 현행대로 유지하라는 쪽에서는 이와는 사뭇 다른 평가를 내린다. 주로 참정연측이 기간당원제 유지를 강하게 주장하는데, 이들이 보기에 기간당원제는 열린우리당의 창당 정신과 맞닿아 있다. 1인 보스 중심의 과거 정당과 결별하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내세운 정당 개혁의 요체가 기간당원제를 통한 상향식 공천제 도입이었기 때문에, 최근 잇따르고 있는 개·폐 주장은 창당 정신을 훼손하고 ‘도로 민주당’을 하자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기간당원제가 공직 후보 피선거권을 지나치게 제약해 선거 승리에 제약이 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이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참정연 관계자는 “현재 당헌상 30%까지 전략 공천을 할 수 있고, 국민경선 방식도 가능하다.  기간당원제가 선거 패배의 주원인이라고 모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늘상 지적되곤 하는 ‘종이 당원’ 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적반하장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종이 당원을 끌어들여 조직 선거를 한 쪽이 이제 와서 ‘종이 당원’ 문제를 지적한다”라고 반박했다.

참정연측은 현재 당 주류 쪽이 기간당원제를 문제 삼는 것은 결국 제왕적 공천권을 부활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여기고 있다. 김희숙 참정연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그동안 끊임없이 기간당원제가 논란이 되었지만 문제를 제기한 쪽이 원하는 결론이 아니면 다시 원점에서 논의가 반복된다. 기간당원 제도의 보완점과 대책에 대해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다. 이제는 기간당원제도를 하고 싶은지 하기 싫은지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비상집행위 권한 놓고도 기세 싸움

이런 논리 싸움 이면에는 결국 계파간 이해득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유력 대선 주자인 두 장관측은 앞으로 당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기간당원들이 공천 등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현제도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정동영 계보나 김근태 계보에 비해 소수파인 개혁당계는 자발적이고 충성도 높은 기간당원들을 배경 삼아 지분을 획득해 당에서 목소리를 높여 왔기 때문에 기간당원제 유지에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기간당원제와 관련해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비상집행위원회의 권한을 두고서도 벌써부터 기세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비상집행위는 내년 초 열릴 조기 전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도 새로 구성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다. 전병헌 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제2 창당을 기획하는 만큼 당헌·당규 개정도 지도부 업무에 포함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광철 참정연 대표는 "단순히 집행을 하는 성격에 그쳐야 할 비상집행위가 과대망상을 하고 있다. 중앙위 해체는 중앙위 의결을 거쳐야 할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기간당원제 폐지는 중앙위 의결을 거쳐야 하는 사안인데, 집행위가 참정연 등이 당헌 개정 저지선(중앙위원 3분의 1)을 확보하고 있는 현 중앙위를 무력화하려 한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의원·중앙위원 연석회의에 참석했던 한 당직자는 “서로 상대편에 대한 불신이 크고, 감정의 골도 깊어 보였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라고 걱정했다. 이처럼 기간당원제는 내년 초 전당대회를 앞두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구원투수로 나선 ‘정세균 호’가 이 해묵은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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