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DJ ‘교시’ 따라 ‘몸 만들기’ 구슬땀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5.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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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의 통합보다 내부 추스르기에 주력…김 전 대통령, ‘호남+개혁세력’ 분열하자 적극 나서

 
보다 못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나섰다. 김 전대통령은 11월8일 동교동을 찾은 열린우리당 비상 지도부에 그간의 침묵을 깨고 정치적 함의가 짙은 멘트를 날렸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지 모르지만 나는 여러분을 내 정치적 계승자라고 생각한다” “여당 지지도가 최저인 것은 전통적 지지표의 이탈이 근본적이다. 전통적 지지표 복원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한다.”

누가 들어도 열린우리당에 힘을 실어주는 말이다. 게다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을 놓고 찬반 양론이 분분한 상황에서, 통합 쪽에 무게를 싣는 발언이기도 하다. 이 발언이 알려진 후 민주당측은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려 했지만, 내심 곤혹스런 표정이다.

그런데 환호작약하며 통합론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반응이 의외로 차분하다. 누구보다 김 전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했을 정세균 의장은 오히려 통합에 유보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동교동 방문 이후 가진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통합론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며 현단계에서의 통합론에 부정적인 말까지 내비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당 기획위원장에 임명된  민병두 의원은 난데없이 영남 민주화 세력과의 연대를 들고 나왔다. 노동·시민세력, 전통적 재야민주화 세력과의 연대를 먼저 만들어내야 민주당이나 중부권 신당을 견인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민주당과의 통합론에 제동을 걸고 나선 데에도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교시’가 작용했다는 것이 여권 핵심 인사들의 전언이다. 이 날 동교동에 동행했던 여당 인사들에 따르면, DJ는 크게 두 가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하나는, 민주당에 통합하자고 쫓아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한 의원은 DJ가 “과반에서 몇 석 빠지는 거대 정당은 나도 이끌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의석을 가진 정당이 왜 이것밖에 못하나. 열린우리당이 잘하면 민주당을 비롯한 민주평화개혁 세력은 자연스레 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 열린우리당이 먼저 중심을 잡으라”는 요지의 충고를 했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여권이 정말 홍보를 못 한다는 점이다. ‘방폐장’ 문제를 예로 든 DJ는 “이전 정부가 몇십 년 걸려도 못했던 일을 결국 해낸 것 아니냐. 그런데도 그런 일조차 하나도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이 정부가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 이를 잘 알리는 기술이 없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전병헌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이 열심히 국민을 설득해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했다”라고 한 대목은 이런 맥락이다.

요컨대, 이번 여당 지도부와의 만남에서 김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중심을 잡고 전통적 지지 세력을 복원하라. 그러려면 괜히 내부에서 싸우지 말고 그동안 참여정부가 한 일을 제대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라는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이처럼 DJ까지 나선 것은 ‘호남+개혁세력’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지지층의 분열을 더 이상 두고볼 수는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것이 DJ 주변의 해석이다. 동교동 출신인 한 전직 의원은 “민주평화개혁 세력이 다음번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지난 10년 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10·26 재선거 이후 열린우리당 안에서 통합론이 거세게 인 것도 전통적 지지 세력이 분열되어 있는 한 내년 지방 선거는 물론 2007년 대선에서도 패배가 뻔하다는 점이 현장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분간 여당은 민주당에 구애하기보다 여당 내부를 추스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또 ‘호남표 결집’이라는 지역색이 강한 표현보다 ‘민주평화개혁 세력 단결’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애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당 안팎의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통합의 구심점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한화갑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민주당이 여전히 통합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어 통합론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 관건은 결국 호남 민심이 얼마나 김 전 대통령의 발언에 동조하느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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