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 박홍규(영남대 교수, 법학) ()
  • 승인 2005.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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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우리의 자살률은 세계적으로 높지만 지난, 1학기 중간고사 때 전국 고등학교에서 학생 11명이 자살한 것은 충격이었다.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것이 우리의 술과 담배 소비량 그리고 사고사율이다. 이런 현상과 최근 문제된 교사평가제, 노사관계 로드맵, 교육과 학문과 예술의 위기, 헌법 논쟁, 사법권, 검찰권, 뉴 라이트, 외국인 문제, 그리고 프랑스의 이주민 폭동 등은 관련이 없을까?

자살률, 술 담배로 인한 암 사망률, 산업재해 사망률도 세계적으로 높지만, 교통사고로 죽는 농부를 포함해 길에서 죽는 사람과 동물도 부쩍 늘어 생명보다도 속도가 중요하게 되었음을 시골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나는 절감한다. 아마도 우리는 차를 가장 거칠고 빨리 모는 민족이리라. 항상 바쁘고 안절부절못하며 감정적이고 공격적이고 활동적이고 목소리가 크고 손동작도 크다. 외국에서 우리 나라는 ‘코리아’가 아닌 ‘빨리빨리’ 나라로 통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몹시 불안하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도, 가정도, 학교도, 직장도, 나라도 불안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모든 것이 획일적으로 통일되고 모든 것이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아이를 자유롭게 내버려두기보다 철저히 보살펴 출세 정형으로 만드는 것이 부모와 선생의 도리가 되었다. 학교에서도 선생은 모든 답을 아는 전문가여야 하고, 정답 외기보다 자기 사고를 중시하여 항상 문제를 던지고 시험이 아니라 글쓰기를 요구하는 나 같은 교수는 실력 없는 자로 매도된다.

불안한 국가에서는 진보 정당마저도 보수적

학계나 예술계나 출판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현실 문제를 다루거나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는 비판적인 저술이나 작품은 멸시되고, 복잡한 문제를 일상적 용어로 쉽게 설명한 책은 기피된다. 추상적인 외국의 거대 이론이 선호되고, 길고 난해한 프랑스나 독일의 학문이나 예술을 좋아하여 그것들을 모방함으로써 그 권위를 구축한다. 사회심리학에 의하면 프랑스나 독일은 불안 정도가 높은 나라이다. 반면 불안 정도가 낮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나온 경험주의는 우리 나라에서 기피되는 경향이 있다.

직장에서도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항상 바빠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쁜 것이 인생이고 시간은 곧 돈이니 그렇게 하도록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 나라만큼 노동법이 자주 바뀌고 복잡한 나라도 없으리라. 불안한 나라에서는 노사관계를 통제하는 법을 많이 만들고, 법에 대한 과도한 욕구로 인해 일관성과 실효성이 없는 역기능적인 법을 자주 제정하지만, 사실상 법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반면 덜 불안한 나라에서는 법을 두려워하여 꼭 필요한 경우에만 만들고, 법을 더 잘 지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우리는 노사의 갈등 자체를 부인하고, 파업 같은 행동에 대해 국가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도리어 과격한 분쟁의 악순환을 초래하기 쉽다.

이는 법 일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불안한 나라에서는 엄격한 법률을 많이 제정하는 경향이 있고, 대단히 어려운 암기 시험을 통과한 법률가의 전문적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며, 반면 시민의 힘이나 참여가 소극적이고 시민적 요구는 법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매도된다. 그러나 가령 독일에서는 고위 공무원의 65%가 법대 출신이고, 영국에서는 단지 3%에 불과하나, 독일에서보다 영국에서 정치가나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더욱 낮다.

불안한 나라에서는 법률가 중심의 보수적 정당은 물론 진보적 정당조차 보수적이며 ‘법과 질서’에 대한 요구가 강하다. 그래서 정당 안에 극단적 소수파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으나, 그것을 억압할 가능성은 더욱 높다. 특히 경제성장을 빨리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그렇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불안한 사회에서는 낮고 약하고 가난하고 더럽고 위험하고 소수인 것에 대한 분류가 엄격하고 절대적이어서 ‘다른 것은 무엇이나 위험하다’는 절대주의, 획일주의, 통일주의, 관리주의, 차별주의, 배척주의, 용공주의, 맹목적 애국주의, 외국인 공포증 등이 강한 반면, 상대주의, 평등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등은 더욱 약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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