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냉정 사이 ‘암초’에 걸린 황우석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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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적 관심과 한국민의 열광을 동시에 얻었던 ‘황우석 사단’이 동업자 새튼 교수의 결별 선언으로 어려운 순간을 맞았다.

 
‘바이오 강대국의 꿈’은 물거품이 되는가. 지난 2년 동안 국민적 찬사와 기대를 한 몸에 받아온 세계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선두 주자 황우석 교수가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그의 연구를 도왔던 미즈메디 병원 노성일 이사장이 경찰의 난자 불법 매매 수사 과정에서 불법 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나 의혹의 불똥이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정체로까지 튀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황교수 사단과 공동 연구에 참여해 1년 이상 호흡을 맞추어온 미국 피츠버그 의대 제럴드 섀튼 교수가 11월12일 느닷없이 황교수와 결별하겠다고 선언했다.

피트버그 의과대학 홍보팀을 통해 내놓은 새튼 교수의 다음과 같은 결별 사유는 난자 제공 과정에 관한 신뢰 문제로 드러났다.
“유감스럽게도 난자 제공 과정을 둘러싸고 황우석 교수의 허위 진술이 있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정보를 11월11일 접수했다. 정보의 특성상 비밀이 보장돼야 한다. 대학 및 규제 기관 관계자들과 이 정보를 논의한 결과 황우석 교수와 공동 연구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여성 연구원으로부터 난자를 얻는 과정에서 윤리적 원칙을 위배한 데 대한 우려와 황우석 교수가 신뢰를 어긴 것이 이런 결별 결정을 내리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섀튼 교수는 정보 출처에 대한 비밀 유지를 들어 어떤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태 발생 직후 경위 파악에 나섰던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국내 방송사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진이 황우석 연구팀의 난자 채취에 대한 부정적 정보를 입수한 뒤 새튼 교수에게 확인 취재한 과정이 결과적으로 정보를 제공한 계기가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경위야 어쨌든 섀튼 교수의 돌발 선언이 남긴 충격과 파장은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섀튼은 황우석 연구팀에게 단순한 연구협력자 수준이 아니다. 지난 6월7일 관훈클럽 주최 내외신 기자 초청 토론회에서 황우석 교수가 밝힌 섀튼 교수의 비중과 위상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당시 황교수는 “섀튼 교수는 우리 공동 연구팀의 절반보다 더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라고 평했다. 황교수는 그 이유를 “<사이언스>에 논문을 낼 무렵 유수한 국제 저널에서 기고 저널 선택 기준을 물어왔고, <사이언스>에 맛보기로 (섀튼 교수와 공동으로 이름을 올린) 논문을 보여주자 특별대우를 하겠다는 답변이 왔다”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그동안 황우석 팀이 연구 결과를 국제 과학계에서 인정받기까지는 섀튼의 이름값이 크게 작용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섀튼 교수의 결별 선언은 한국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앞날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운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사태 전개를 두고 그동안 ‘황우석 신드롬’에 취해 있던 국내 언론과 일반 국민은 말 그대로 충격과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혼란은 황우석 사단의 연구에 주목해온 국내외줄기세포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황우석 교수와 나란히 배아 줄기세포를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고위급 과학훈장을 받았지만 지금은 사실상 갈라선 서울대 의대 문신용 교수는 “나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답답하지만 언론이 어떻게든 황우석 연구팀을 보호해달라”고 말했다. 

 
섀튼 교수의 결별 선언에 대한 국내의 반응은 크게 두 갈래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섀튼이 이미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노하우를 빼낸 뒤여서 성과를 가로채기 위해 독자적인 길을 선택했으리라는 논조를 보였다. 국내 과학계 일각에서는 한국적 특수성을 들어 미국의 잣대와 기준을 적용하지 말라고 요구하자는 주장도 내놓았다. 사태 직후 황우석 연구팀이 보인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규리 교수는 언론을 상대로 “만약 실험실 연구원이 난자를 기증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정서와 미국 정서를 같은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 한국과 미국이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섀튼이 우리나라를 매도하는데 우리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황교수 입만 쳐다보는 지원군 ‘황금박쥐’

두 가지 반응 모두 줄기세포 연구의 앞날에 닥친 위기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그러나 차제에 한국 정부와 과학계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식품안전국(FDA) 연구원을 거쳐 현재 피츠버그 의대 교수로 있는 이형기 박사는 11월17일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기고문을 올렸다.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과거 10여 년간 진행해온 범세계적 조화 및 일치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병원에서 실시되는 임상 연구도 모두 동일한 윤리적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선 지 오래다.

만일 이 전제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세계의 유수한 의학 잡지들은 더 이상 우리 손으로 실시한 임상 연구 결과를 실어 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한국적 특수성을 강조하면 당장 배포는 편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전략적 실패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이번 논란을 명확하게 해명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5천년 민족사에서 드물게 찾아온 바이오 강국의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사태를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교수의 주장은 한국과 미국 과학계의 중간 매개자 처지에 서있는 재미 의학자의 충정을 담은 고언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와 과학계 모두 귀담아 들을 만하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정부와 대부분의 언론은 장래에 기대되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 성과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연구 과정이 성공하게끔 암초를 제거해 주려는 노력은 소홀히 했다. 황교수팀의 연구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국가 차원의 국책 사업으로 보고 적극 개입했다. 그 중심에는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박기영 대통령 과학보좌관, 그리고 진대제 정통부장관이 서 있다. 이들은 황우석 교수와 함께 각자의 성을 따서 ‘황금박쥐’라고 불린다. 네 사람은 매달 한 차례씩 만나 과학 기술의 미래와 황우석 교수 연구팀 지원 방안을 논의한다. 그 중에서도 박기영 보좌관은 국내 과학계에서 황우석 교수를 후원하는 선봉장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2백65억원을 황우석 사단에 지원하기로 한 일이라든지, 황우석 기념 우표를 발행하고 황교수에게 최고과학자라는 이름을 부여한 과정에서도 박보좌관의 역할이 컸다. 두 사람의 친분 관계는 2004년 <사이언스>에 제출한 논문에 박기영 보좌관이 황교수 및 섀튼 박사 등과 공동 저자로 들어가 있을 정도로 각별하다. 박보좌관은 당시 논문에 이름이 오른 데 대해 연구에 참여해 기여한 내용은 없지만 윤리적 측면에서 자문에 응하고 검토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시의 논문 연구 과정에 대한 윤리 시비로 섀튼 박사가 결별하는 사건이 터지자 박보좌관은 현재 난처한 처지가 되었다. 최근 사태에 대해 그는 난자 채취 과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며 사실상 팔짱을 낀 채 황우석 교수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황교수에게 연구비를 몰아준 과기부나 생명윤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복지부도 문제가 불거지자 황교수의 입만 바라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는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역할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생명윤리법이 제정된 때는 2003년 12월이었지만 1년간 유예기간을 거친 뒤 올해 1월부터 발효되었다. 국내에서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 공여 과정의 문제점은 지난해에 발생한 일이어서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이는 국제 사회에서 통할 수 없는, 순전히 우리만의 잣대일 뿐이다. 노대통령 탄핵 당시 변호사로 참여해 이름을 날린 양삼승 변호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생명윤리위원회는 현재 황우석 사단이 맞고 있는 후폭풍에 대응할 대책과 계획을 내놓고 점검해야 할 기관이다. 그러나 1년의 유예기간까지 두고 출범한 이 위원회는 올해 7월에 들어 첫 회의를 열고 전문위원도 최근에야 구성한 상태여서 이번 사태를 놓고 제대로 된 방패막이 기능을 못한 채 황교수의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

정부 기관·관계자들 ‘안일한 사고’로 원인 제공

 결국 현재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처한 위기는 줄기세포 연구에 닥칠 국제적 도전을 제대로 인식하고 빈틈 없는 보호 방안을 마련했어야 할 책임 있는 정부 기관과 관계자들이 안일하게 사태를 판단하고 대응한 데서 비롯된 면도 크다.  만일 황우석 교수가 난자 제공 과정과 기존 해명에 부적절한 대목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한다면 국가 시스템 전체가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딱한 상황이다. 세계 과학계의 권위지 가운데 하나인 <네이쳐>는 벌써부터 한국 정부를 공격하고 나섰다.  11월17일자로 발간된 이 잡지 438호 사설은 ‘한국의 규제 기구여, 제발 일어서라’는 제목을 달고 황우석 교수의 연구 과정을 한국 정부가 철저히 조사하라고 주장했다.

또 황교수와 박기영 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의 특수관계를 언급하며 박보좌관은 조사 주체에서 반드시 빠져야 한다는 대담한 주문까지 내놓았다.
 언론 역시 그동안 황우석 사단이 역풍에 휘말리지 않도록 감시 견제하는 균형 잡힌 보도를 외면했다. 황교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좇아 무조건 영웅적으로만 묘사했지 그의 연구가 국제 사회에서 부닥칠 윤리 시비와 같은 장애물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순전히 국익에 반하는 불순한 목소리로 취급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동안 줄기세포 연구의 문제점을 점검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앞장서 주장하다가 여론의 공격에 시달려온 민주노동당 한재각 정책연구원은 이런 사회 현상을 가히 ‘황우석 매카시즘’이라고 개탄했다.

 
정부와 언론이 황우석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지나치리만치 균형 감각을 상실한 결과 국민은 마치 아무 탈 없이 연구가 성공해 가까운 장래에 당장 난치병을 완치하는 세상이 기약된 것처럼 맹신하고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황교수 자신도 지난해 6월 한 토론회 석상에서 이런 맹목적인 국내의 기대와 분위기를 연극에 비유하며 부담스럽다는 심경을 토로할 정도였다.  “대개 연극은 4막이라고 한다. 3막 정도 지나면 관객은 대개 의미를 알고서 4막이 끝나면 아낌없는 갈채를 보낼 준비를 한다. 우리 연구는 내년 후반기쯤 2막이 시작될 것이며, 그때 국민들이 중간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미 1막부터 터져나온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는 불길한 사태를 예고했고, 이는 급기야 국제 사회의 질시와 윤리 시비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황우석 연구에 대해 제기되는 국내외 의혹에 대해 지금까지 모두가 침묵을 지킨 것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관심을 갖고 지난해 한양대 기관심사위원회(IRB)에 황교수가 난자를 확보한 과정의 윤리 문제를 검토하는 기관으로서 회의록을 제출해 달라고 인권위 차원에서 공문을 보냈지만 한양대 IRB측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또 생명윤리학회도 국제 과학계가 끊임없이 제기하는 난자 공여 과정의 윤리 시비에 투명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러나 황교수가 당시 난자 확보 과정에 전혀 윤리적·법적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해 그대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불거지면서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가 진정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돌다리도 두드리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국생명윤리학회의 한 관계자는 “황우석 교수가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니 차분하게 기다려 봐야겠지만 정부가 1년 반 전에만 황교수 연구에 닥칠 문제를 다각도로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해줬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후폭풍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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