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이 떠난 공백 메울 수 있을까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5.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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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박사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오던 국내 학계는 위기를 맞았다. 누가 황박사 뒤를 이을 것인가.
 
지난 6월7일, 황우석 교수(서울대 석좌교수)는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34회 관훈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참석자들 뇌리에 오랫동안 남을 만한 근사한 말을 남겼다. 배아 줄기세포의 실용화 시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줄기세포를 처음 배양한 것은 마라톤의 20km 지점, 줄기세포를 원하는 방향으로 분화시키는 연구는 25km 지점, 치료 과정 표준화는 30km 지점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후 실험이 충분히 재연되고 메커니즘이 정확히 밝혀지면 결승점에 이를 것이다. 우리의 연구는 전체 2막 중에서 1막이 내년 하반기쯤 끝날 것으로 본다. 내년 하반기에 2막이 시작되면 국민들이 중간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가 말한 1막은 배아 줄기세포 분화 과정 규명과 치료 과정 표준화이고, 2막은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시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장담과 달리 1막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대 뒤로 물러났다. 물론 그가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서 완전히 손을 떼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가 말한 것처럼 이제 그가 연출하고 그가 주연하는 연구 결과는 당분간 보기 힘들지 모른다. 

 11월24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후회, 사과, 속죄, 참담, 반성…’이라는 단어를 구사하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앞으로 배아 줄기세포 연구 책임은 자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떠맡게 된다고 말했다. 말미에는 ‘오늘부터 세계줄기세포허브(줄기세포허브) 소장 직을 비롯한 정부와 사회 각 단체의 모든 겸직을 사퇴’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그가 갖고 있었던 직함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정책전문위원, 일본 수의학회 학술위원, 대전시 과학사랑 홍보대사 등 모두 16개였다. 

그의 그같은 ‘용기와 결단’은 한국 줄기세포 연구의 물줄기와 목표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선 1막 후반부의 연출을 맡을 줄기세포허브의 새로운 소장을 발굴해야 한다. 현재 ‘황우석 사단’에는 국내 생명공학계에서 내로라 하는 교수·박사 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그 가운데 황교수와 비교적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온 서울대 수의학과 강성근·이병천 교수와 농업생명학부 이창규 교수가 눈에 띈다.

강성근·이병찬·이창규 교수 눈에 띄어

 강성근 교수는 황교수가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함께 다닌 연구자로서, 현재 줄기세포 분야를 맡고 있다. 반면 이창규 교수는 질병 동물 생산 및 이종간 장기 이식 분야를 책임지고 있다. 지난 8월, 복제 개 프로젝트를 완성해 눈길을 끈 이병천 교수는 황교수 사단의 ‘창단 멤버’로서, 황교수가 시험관 송아지(1993년)와 체세포 복제 송아지(영롱이, 1999년)를 탄생시킬 때 큰 몫을 담당했다. 현재는 줄기세포허브의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그 외에도 황우석 사단에는 안규리 교수(서울대병원·신장내과), 황정혜 교수(한양대병원·산부인과), 윤현수 교수(한양대 해부세포생물학실), 김종훈 교수(고려대·생명유전공학부) 등 쟁쟁한 연구자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 역시 국제적인 실력을 갖춘 의학자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배아 줄기세포 연구 초기에 큰 역할을 한 문신용 교수(서울대·산부인과)는 최근 황우석 사단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허브의 신임 소장을 뽑는다면 이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줄기세포 연구자들은 자기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제 생명과학계를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다행히 황교수가 뒤늦게나마 난자 관련 의혹을 모두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함으로써 발판은 마련되었다. 국민 대다수도 사과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으며, 인정으로 감싸는 것 같다. 

 그러나 생명 윤리 규범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국제 생명과학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일부 외신은 황교수의 사과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었지만, 외국의 생명공학계 반응은 전달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황교수가 줄기세포허브 소장 직을 사퇴함으로써 ‘알츠하이머와 당뇨병 치료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었던 줄기세포 연구 결과가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는 국내 연구진이 외국 연구소와 손잡고 일하거나, 외국 기업의 도움을 받고자 할 때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또 국내 연구진과 네트워크를 구성하려고 했던 연구자들이 제럴드 섀튼 교수처럼 등을 돌릴 가능성도 높다.

그런 의미에서 황교수와 루게릭 병 치료 연구를 하기로 함께 한 이안 윌머트 교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가 섀튼처럼 황교수 사단과 결별을 선언하면 그만큼 충격이 더 커질 수도 있다. 따라서 그같은 ‘피해’를 줄이려면 지금부터라도 줄기세포 연구를 좀더 짜임새 있게, 엄격한 윤리 의식에 따라 진행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앞길이 험난해 보인다. 그동안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많이 기댔던 터라, 그가 빠지면서 공백이 너무 큰 것이다. 게다가 생명공학 연구자들의 생명 윤리 의식도 희미한 상태이다. 11월25일 동아일보는 국내 생명공학 연구자 9백69명을 설문 조사한 자료를 발표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편중

그 자료에 따르면, 이번 ‘난자 논란’의 불씨가 된 ‘헬싱키 선언’에 대해 ‘들은 적이 있고, 내용도 잘 안다’고 응답한 연구자는 1백50명에 불과했다. 반면 아예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응답한 연구자는 4백49명이나 되었다.        

 이 참에 말 많은 줄기세포허브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름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연구자도 있다. 그들은 줄기세포허브가 황우석 사단으로만 구성되었다는 이유로 ‘세계복제배아줄기세포허브’로 바꾸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다른 많은 배아 줄기세포 연구자와 성체줄기세포 연구자가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줄기세포허브가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의 중심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 현재 뚜렷한 성과를 나타내는 줄기세포는 배아 줄기세포가 아니다. 훨씬 먼저 연구가 시작된 성체 줄기세포이다.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서는 지금 신경세포·심장근육세포·피부세포 등을 인체에 임상 시험하고 있다. 또 분화하는 기술도 배아 줄기세포보다 몇 걸음 앞서 있다(그림 참조).

 
그런데도 정부는 이상하다 싶을 만큼 배아 줄기세포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있다. 한 연구자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아직 기초 단계이다. 언제 그것이 인체에 이식되어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런데 벌써 환자를 모집하고 있으니, 앞서가도 너무 앞서간다”라고 말했다.

황교수 사단에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실 배아 줄기세포에 큰돈을 쏟아 붓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만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연구비 비중에서 배아 줄기세포가 차지하는 비율이 문제다.

2005년에 미국은 줄기세포 연구에 5억5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그 가운데 배아 줄기세포에 투자되는 금액은 2천4백만 달러. 전체 연구비의 5%도 안된다. 유럽연합도 비슷하다. 전체 투자비가 1억7천만 달러인데, 그 가운데 배아 줄기세포 연구 자금은 65만 달러(0.38%)밖에 안된다.

 반면 한국은 2005년에 줄기세포 연구에 4백41억6천만원을 투자(도표 참조)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들어가는 금액이 1백30억원이 넘는다. 전체 줄기세포 연구비의 30% 가까이 되는 것이다.

한 연구자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정부가 황우석 교수를 지나치게 띄우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나라에서 큰일을 벌이려면 스타가 필요하다. 줄기세포 연구도 중요한 국책 사업 가운데 하나인데, 그 사업을 키우는 데  황우석 교수만큼 도움이 되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황교수 사단에 돈이 몰리게 된 것 같다.”

황교수의 백의종군으로 인해, 한국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당분간 어려움에 빠질지 모른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투명한 연구, 윤리적인 연구를 위한 좋은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황교수가 배양한 복제 배아 줄기세포와 환자 체세포를 이용해 배양한 ‘맞춤 줄기세포’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앞선 생명과학 기술이기 때문이다.

도움 말:김현수 박사(파미셀 대표이사), 박세필 박사(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장), 오일환 교수(가톨릭 의대 세포치료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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