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영웅의 조건
  • 김은실(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
  • 승인 2005.11.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론]

 
지난 11월24일 황우석 교수는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연구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의 시인은 연구 성과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였고, 부인해온 이슈였다. 이 뉴스는 곧바로 CNN·BBC·AP를 비롯하여 세계 유수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졌고, ‘한국의 국민적 영웅’이 사과를 했다고 표현했다. 한국에서도 이 ‘사태’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가장 지배적인 언설은 황우석을 잘못으로부터 구하여 다시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황교수의 연구 성과와 연구 과정의 문제는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는 소수의 목소리도 있고, 그의 시인이 한국의 생명과학을 국제적인 장으로 가져가는데 거쳐야 할 수업 과정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배적 대응은 민족주의적인, 문화상대주의적인, ‘구국’의 언설이다. 특히 네티즌들은 황교수가 시인한 내용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래서 여전히 황교수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글들이 포탈 사이트 첫 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이 담론들은 황교수의 연구를 민족적인, 국가적인 개가라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그의 ‘영웅적’인 연구를 죽이는 발목 잡는 논쟁이라고 본다.  
 
물론 외국에서의 문제 제기에는 ‘한국의 과학자 황우석’에 대한 발목 잡기 식의 동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여러 곳에서 제기되었던 이 문제에 대해 황교수가 시인을 한 다음에 나오는 언설들이, 그의 잘못 인정을 원상태로 돌리는 것 혹은 국민적 지지로 그의 오류를 포용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황교수가 국제 무대에 재현되는 방식은 21세기적이고, 또 그가 세계의 생명과학자들과 함께 일하자고 청한 것 역시 글로벌한 현상이다. 다시 말해, 동시적인 그러나 공간적 차이가 그를 세계적인 학자로 떠오르게 한 것이다. 많은 사회에서 생명과학자들은 생명을 복제하고 싶은 욕망을 갖지만, 그 연구 욕망을 제한하는 여러 가지 윤리적·법적·정치적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황교수가 외국 과학자들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했을 때, 미국·캐나다·영국의 학자들이 관심을 가졌고, 같이 하고 싶어하는 학자가 많았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황교수는 자신의 연구소에서 배양된 줄기세포를 다른 국가의 과학자들에게 제공하면서 함께 일하기를 청했고, 그 결과를 공유하겠다고 했다. 그의 연구는 한국에 위치하지만 세계적인 것이고, 또 국제적인 지식 공동체 내에서 그 의미와 의의가 확보되는 것이다.
 
이렇게 ‘21세기적 지식인’의 모습으로 재현되었던 황교수가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패배라고 보는 발상은, 마치 올림픽 경기에서 자기 팀이 실책으로 점수를 잃은 것을 심판 잘못으로 따지는 패권주의적 민족주의의 출몰처럼 보인다. 일단, 황교수가 시인한 다음에는 다른 방식으로 논의 구조가 드러나야 한다. 이미 국제적으로 이름이 나있고, 많은 국제적인 언론들이 주시하는, 더욱이 많은 과학자들이 관심을 두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황우석에 대한 열광적·무조건적인 비호는, 오히려 그의 ‘영웅’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윤리와 관련하여 한국과 세계·서양과는 다르다는 문화상대주의 논의는, 상호 동의 가능한 기준을 만들면서 협력하고 경쟁하는 지구화 시대에 문제적인 발상이다. 여기서 이슈는 서양에서의 문제 제기는 서양 중심적이고 난자를 제공하는 우리 연구원의 행위는 ‘우리’문화에 맞는 행동 양식으로, 서양과 같이 논할 수 없는 특수한 것이라는 논리이다.
  
여성들의 ‘난자 기증’ 움직임, 황교수 감싸는 대항 담론 삼아서야

더욱이 이 문제의 가장 ‘한국적인’ 대응은 황교수의 연구를 지지하기 위해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들의 등장이다. 자발적 여성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황교수의 윤리적인 실책을 무마하는 대항 담론으로 제기되고 있다. 마치 IMF 위기라고 불렸던 1998년 2월부터 약 2개월간 범국민적으로 일었던 금 모으기 운동을 연상시킨다. 당시에 수백만명이 참가했고 많은 금을 모았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국가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외환위기가 무엇인지를 교육하는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문가들은 금모으기 운동이 외환위기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것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고 평가한다.  
 
황우석의 연구를 돕기 위해 많은 여성이 참여하여 불임이나 불치병에 대한 치유책을 찾는 데 기여하겠다는 마음은 소중하다. 그러나 이 현상이 마치 금 모으기와 같은 구국의 마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문제적이다. 언론이나 황박사 연구팀은 여성들의 난자 제공을 여성의 처지에서 보는 윤리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난자 채취가 갖는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정보와 지식, 목적을 홍보해야 한다. 난자 채취가 어떠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지, 이제까지 난자 채취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의 예는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지, 만약 자발적으로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에게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인지, 난자 매매나 유통이 왜 문제인지 등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황우석이 ‘진정 21세기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기준에 맞는 윤리 감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생명과학을 주요 국가 의제로 삼고 싶다면, 윤리의 정치적·국제적 의미를 숙고해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