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 가득한 ‘특종 제조창’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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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경인일보, 전통·취재력 앞세워 정상 고수…후발 경기일보도 ‘약진’

 
한국기자협회는 매달 ‘이 달의 기자상’을 수여한다. 기자의 꿈인 ‘특종’을 기리기 위해 1990년 10월부터 시상했다. 역대 최다 수상자는 동아일보 양기대 전 기자였다. 지금 열린우리당 광명시 당원협의회장인 그는, 현역 시절 아홉 차례나 수상하며 ‘특종 제조기’로 불렸다.

깨질 것 같지 않았던 이 기록이 최근 깨졌다. 기록을 깬 주인공은 경인일보 왕정식 기자이다. 그는 올해 들어 이 달의 기자상을 두 번이나 거머쥐며, 통산 열 번째 기자상을 받았다.

그런데 경인일보에는 왕기자뿐 아니라 특종 기자들이 여럿 있다. 경인일보 기자들은 올해에만 여섯 차례나 기자상 시상대에 올랐다. ‘보상 노린 무허가 건물 난립-생떼공화국’(2월), ‘어느 청각장애인의 죽음’(3월), ‘땅값 부추기는 기획부동산’(3월), ‘경기북부 미군 철수 특별기획-떠나는 자, 남는 자’(7월), ‘마법의 특구, 골프장’ (9월), ‘갑을방적 우즈벡 법인 강탈 파문’(10월)이 경인일보가 쏟아낸 특종들이다. 

이런 특종의 힘을 높이 평가한 것인지, 경기도 전문가들은 가장 영향력 있는 지역 언론으로 경인일보(42.2%)를 첫손에 꼽았다.

여중생 장갑차 사망 사건 등 잇달아 터뜨려

영향력 있는 언론을 묻는 조사는 이번에도 두 가지로 나누어 진행했다. 중앙 언론사를 포함한 경우와 지역 언론사로 한정한 경우이다. 조사의 공정성을 위해 객관식 설문을 제시하지 않고 주관식으로 물었고, 전문가들에게 각각 세 군데를 답하라고 했다.

중앙 언론사까지 포함한 경우, 조선일보(54.4%)가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꼽혔다.  KBS(47%) 중앙일보(27.4%) MBC(27.2%) 동아일보(25.6%)가 뒤를 이었다. 지역 언론으로 한정한 경우에는, 지역 언론계를 양분하며 경쟁 관계인 경인일보(42.2%)와 경기일보(39.8%)가 두각을 나타냈다. 경기방송(12.4%) 중부일보(11.4%) 경기신문(3.6%)이 뒤를 이었다.

영향력 있는 지역 매체로 꼽힌 경인일보는 1960년 창간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이다. 경인일보는 오랜 역사만큼 전통적으로 특종에 강하다. 1995년 인천 북구청 세무 비리 사건, 1996년 부천 세무 비리, 1999년 안산중앙병원 관장약 파동,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보도가 세상을 뒤흔들었던 이 신문사의 특종들이다. 모두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기사를 좀 쓰려면 대개 3년차부터는 기자상을 받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편집국에 퍼져 있다고 한다. 최다 기자상 수상의 주인공인 왕정식 기자는 특종 비결을 끈기 있는 취재에서 찾는다.

“경인일보 기자들은 수습 때부터 끈기 있게 취재하는 것을  훈련 받는다. 술자리 대화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1999년 왕정식 기자가 한국기자상을 받았던 안산중앙병원 관장약 파동 사건은 한 시민이 술자리에서 들은 내용을 한 시민이 제보한 것이 단서였다.

인터넷 매체가 등장하면서 특종 경쟁도 치열해졌다. 개념도 바뀌어 속보성 특종은 점차 지면에서 사라지고 온라인 매체 몫이 되었다. 이런 바뀐 환경에 경인일보는 온고지신의 자세로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그 핵심은 심층 기사 강화이다. 송광석 편집국장은 “평범한 문제도 새롭고 다차원적으로 접근해 심층 기사를 만들어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골프장 문제를 농지와 비교한 ‘마법의 특구 골프장’ 보도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언론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투기를 부채질하는 부동산 업자 문제를 보도할 때도 경인일보 취재 방식은 달랐다. 3년차 이윤희 기자가 1주일 동안 직접 기획 부동산 업체에 취업해, 실상과 피해사례, 그리고 대책까지 심층 보도했다.

이렇게 양질의 뉴스를 생산하지만, 경인일보의 시름은 깊다. 지역 매체라는 한계 때문이다. 다른 어느 지방보다 경기 지역은 중앙 언론사의 영향력이 크다. 이번 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중앙 언론사를 포함하면 경인일보(3.9%)나 경기일보(3.0%) 등 지역 신문의 영향력은 중앙 언론보다 크게 뒤진다. 신문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송광석 편집국장은 “독자인 도민들 자체가 지역 정체성이 엷다”라고 진단했다. 다른 지역처럼 지방색을 강화하는 전략으로는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이 송국장의 판단이다. 그래서 내건 슬로건이 ‘동네 뉴스에서부터 국제 뉴스까지’이다. 이 슬로건을 내걸고 경인일보는 2006년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경인일보에 이어 영향력 있는 매체로 뽑힌 경기일보(39.8%)는 1988년 창간했다. 경인일보에 비해 후발 주자이지만, 틈새 시장을 파고들며 지역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일보 박흥석 편집국장은 “우리는 지역밀착형으로 승부를 건다”라고 말했다. 철저한 지방화로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경인일보와 달리 지역색 강화로 중앙지와 승부를 걸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마이너리티 문제를 보도할 때는 국제적 시각으로 접근한다. 지난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을 연작 보도했다. 국내 현실뿐 아니라, 독일 현지 취재를 통해 유럽의 사례까지 보도했다. 1997년부터 월드비전과 함께 세계의 굶주린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사랑의 빵 나누기’ 행사를 벌이고 있는데,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매년 케냐·소말리아·에티오피아· 모잠비크 등을 현지 취재해 보도하고 있다.

언론인 영향력은 경기일보 사장이 1위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에는 신창기 경기일보 사장이 꼽혔다. 신대표는 기자 출신이다. 평기자에서부터 사장까지 오르면서, 지역 현안을 꿰뚫고 있다. 지금도 지역을 돌아다니면 옛 취재원들은 그를 ‘신차장’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기동취재반장이다. 그는 현역 시절의 왕성한 취재력을 지금도 발휘하고 있으면서도 지난 7년 동안 ‘인화 경영’을 모토 삼아  경기일보를 이끌고 있다.

신창기 대표에 이어 우제찬 경인일보 대표가 영향력 있는 언론인에 뽑혔다. 신문 시장을 양분하듯, 영향력 있는 언론인도 두 회사가 양분했다. 두 대표에 이어 송광석 경인일보 편집국장(3.2%)· 박흥석 경기일보 편집국장(2.2%)이 영향력 있는 언론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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