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와 그의 대단한 친구들
  • 천정환(문화 평론가) ()
  • 승인 2005.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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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여기 대한민국 한 중년 사내가 있다. 사내의 인생은, 아니 인맥은 정말 끝내준다. 작년 이맘때 사내는 한때 마약중독자였던 전 대통령의 아들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했다. 장가간 이의 누나가 사내를 “우리나라의 보배 중의 보배”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내는 한나라당 김의원에게 1백만 원의 후원금을 낸 적이 있다. 사내는 순전히 국회의원들 40명으로만 짜여진 후원회도 갖고 있다. 후원회장은 열린우리당 의원이다.(그 회원들은 사내가 얼마나 부러웠을까?) 사내는 근자에 크게 ‘뽀록’이 나기 전까지는 정보통신부 장관과 일주일에 한 번씩 밥을 같이 먹었다. 

사내의 고향에서 ‘국민중심당’이란 당을 주도하는 충남 도지사도 그의 친구다. 쯤이야, 경기도 지사는 사내가 거짓말쟁이라는 혐의를 받자 “그를 해치려는 자들을 용서 없이 격리시켜야” 한다며 ‘쌩오바’할 정도로 우정이 뜨겁고, 지금 제일 잘 나가는 대권주자인 서울시장도 사내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저런, 알고 보니 사내는 국무총리와 동기동창이라 밀어주고 끌어주는 사이다.(서울대 나온 그들은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는 성현의 말씀을 기꺼이 실천하고야마는 그런 종류의 인물이다.) 가히 점입가경. 오옷, 세상에나, 유력한 대권주자인 통일부 장관은 사내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이”라 고백했다.

도대체 어떻게 살면 저런 대단한 인물들과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는가. 김 구 선생도 이영애님도 아닌데 어떻게 정동영, 이해찬,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심대평, 진대제, 김덕룡 씨가 모두 좋아하고 존경하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사내가 이순신 장군님과 비슷하다는 말도 나왔던 건가. 이런 인맥을 가진 대한민국 사내의 삶은 정상인가. 그리고 그 친구들은 진짜 친구들인가.(물론 세상살이란 복잡해서 내가 좋아하는 그 친구의 친구가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놈이었더라는 경우도 있겠다.)

‘그들도 우리처럼’ 아무것도 몰랐다니…

잘 나가던 사내의 인생이 오늘 이렇게 순식간에 망가진 것은 ‘인위적 실수’를 하여 세상을 속이려 한 제 탓이 가장 크리라. 아주 안타깝다. 그러면 사내를 형이라 부르고 보배로 여기고, 존경하다 못해 심지어 사랑까지 해버린, 정씨 이씨 박씨 이씨 손씨 심씨 진씨 김씨 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아아, 배신당한 순정한 사랑이여, 초당파적 우정이여. 그리고 그놈의 애국심이여.

한데 그 친구분들이 누군가. 머리가 아주 똑똑하고 제 잇속차리기라면 대한민국 5천만 겨레 전체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지지 않아야 할 그런 분들이 아니신가. 그런 그들이 속았다면 <시사저널> 독자님과 나 같은 무지렁이가 속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저 대단한 친구들의 관점에서는 그것은 ‘속는 것’에 분류되는 일 자체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니까 사내가 결코 가서 안 되는 길로 가며 세상을 속이게 된 데에는 바로 사내의 화려찬란한 친구들 탓이 있다. 그 친구들이야말로 대한민국 사내 황씨가 벌인 엄청난 스캔들의 공동정범들이다. 황씨만 죽일 놈이라 하지 말고 친구들도 깊이 반성해야 한다. 황씨는 대한민국이 만든 아저씨다.

황씨의 초당파적인, 복잡하고 끈적끈적한 교우관계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권력이 만들어지고 돈이 움직이는가를 보여준다. 총액 7백억원이라 하던가. 아직 대한민국에는 헐렁헐렁한 구석이 참 많다. ‘과학기술’이 바로 그런 구석인 줄은 전혀 몰랐다. 그러고 보니 한 분 빠뜨렸다. 황씨를 가차 없이 밀어주기로 앞장서서 결심했던 또 한 분의 아저씨, ‘노이장님’. 그의 ‘선택과 집중’은 완전 ‘삑사리’였다. 박보좌관을 비롯한 청와대 스태프들의 정보력ㆍ판단력은 정말 한심하다. ‘그들도 우리처럼’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니 겁까지 덜컥 난다. <PD수첩> 이전에는 말짱 속아버렸다는 말인가. 과기부라는 데는 왜 있는 건가. 정말 몰라서 묻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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