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욕정이 고이는 권력의 그늘
  • 김형석 (월간 <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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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키원드] 절대 군주의 광기:<왕의 남자>

 
수많은 관객들이 2005년 최고의 영화로 꼽고 있는 <왕의 남자>를 보는 법은 네 가지다. 먼저 장생(감우성)의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는 광대의 삶에 대한 운명적 스토리다. 공길(이준기)에게는 엇갈린 비극의 멜로드라마이며, 장녹수(강성연)에겐 ‘미친 왕’에 대한 기묘한 모성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연산군에게 <왕의 남자>는 어떤 영화일까? 아마도 왕이라는 권력자가 지닌 광기의 근원을 찾아가는 스릴러가 아닐까 싶다.

연산이 보여주는 퇴행적 행동과 무자비한 살육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정신분석학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좋다. 어미 잃은 자식이 자신의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벌이는 난장판. 이것은 왕이라는 존재가 지닌 광기의 근원이, ‘궁궐’이라는 금기와 음모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슬픈 가족사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왕의 남자’가 된 장생과 공길은, 그 슬픔을 환기시킨 ‘치명적 광대’였던 셈이다.

우리에게 연산의 광기가 있다면, 서양에는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수많은 ‘신경쇠약 직전의 왕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 <리어왕>과 <맥베스>가 대표적이다. 여러 감독들에 의해 영화화했는데, 가장 광기 어린 영화는 로만 폴란스키가 만든 <맥베스>일 것이다. 마녀의 예언에 현혹되어 국왕 던컨을 살해하고 왕의 자리에 오른 맥베스. 던컨의 자손이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의 자리에 오른다는 예언이 있자, 그는 살육을 계속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폴란스키가 보여주는 피의 향연이다. 그는 암시적이지 않다. 모든 죽음은 직접적으로 시각화하며, 마녀의 예언이라는 ‘불길한 운명’을 좇는 왕의 광기를 극대화한다.

'왕의 광기'는 언제나 유혈 낭자

폴란스키의 직접화법엔 처절한 이유가 있었다.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은 임신 8개월이었던 폴란스키의 아내를 처참히 살해했다. 이후 유럽으로 떠나 선택한 영화가 <맥베스>. 맥베스에게 가족들이 살해된 맥더프는 이렇게 말한다. “내 아내 또한 죽었구나. 내 아이들은 어디 갔느냐. 모두 죽은 것이냐?” 그는 바로 이 장면을 위해 <맥베스>를 선택했고, 진실로 광기 어린 자는 맥베스가 아니라 폴란스키였다.

‘왕의 광기’라는 테마가 항상 유혈낭자극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조지왕의 광기>의 영국왕 조지 3세의 광기는 너무나 긴 세월 동안 권력이 준 일탈이다. 60년 동안 재위에 있었던 조지 3세.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노망이 시작된다. 잠옷 바람으로 뛰어다니고, 하녀의 방에서 오줌을 갈기는 왕. 명줄 긴 아버지 때문에 황태자만 수십 년이었던 웨일즈 왕자의 눈엔 갑자기 생기가 돌고, 서서히 음모는 시작된다. 맥락상 ‘조지왕의 치매’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듯하다.

조지왕 정도면 ‘기행’ 수준으로 볼 수 있겠지만 <칼리큘라>에 이르면 이건 조금 심하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피를 손에 묻힌 칼리큘라. 왕이 되고도 그의 숙청은 계속되고, 그 한편엔 질펀한 파티가 있다. 온갖 성도착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자신의 누이와도 관계를 맺는 그의 광기는 ‘영원한 흥분 지속’을 위해 달렸다.

'왕의 광기'와 대척점에 있는 '대통령의 욕정'

‘왕의 광기’는 오히려 왕정이 거의 사라진 ‘대통령의 시대’에 더욱 두드러진다는 느낌이다. 재미있는 건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에 가지는 관심이다. <왝 더 독>은 백악관에 견학 온 걸스카우트 학생을 성추행한 대통령의 추문을 감추기 위해, 정치 거간꾼들이 벌이는 거대한 쇼다. <앱솔루트 파워>의 대통령은 불륜을 저지르고 여자를 살해한다. 지퍼게이트 시대에 이 정도 영화가 나오는 건 애교 수준 아닐까?

반면 <못말리는 람보>와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의 대통령은 멍청하기 이를 데 없고, <데이브>와 <닉슨>과 <긴급명령>의 대통령은 부패했으며, <화성침공>과 <대통령의 위기>와 <사선에서>의 최고 통치자들은 무능함을 넘어서 아예 테러 대상이다(하지만 직접 악당들을 때려잡는 <에어 포스 원>의 해리슨 포드가 차라리 더 광기 어려 보이기도 한다). 최근 조금씩 과거의 위정자들을 다루기 시작한 한국 영화가 묘사하는 대통령들은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너무 밋밋해 보인다. <그때 그 사람들> 정도가, 황음을 즐기다 총에 맞아 비명횡사하는 절대권력자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어떤 대통령도 <화씨 9/11>에 직접 출연하는 조지 부시를 따라가기는 힘들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테러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앉아 눈만 껌벅이던 그의 얼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미치지 않고서야, 지구촌을 들쑤셔 그렇게 파병을 요구하고, 도대체 대의명분을 알 수 없는 전쟁을 그렇게 저지를 수 있을까? 권력이 있는 곳엔 항상 광기가 있고, 개인적 원한이든 권력 다툼이든 전쟁이든, 그곳엔 언제나 피 냄새가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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