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 1백 개 이상 불법 제공 의혹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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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의대, 황우석 교수 팀에 제공…환자 동의 여부 확인 어려워

 
자궁근종 수술을 받으러 대학병원 산부인과에 갔다고 치자. 담당 의사가 자궁근종 수술을 하면서 당신의 난소 조직을 일부 떼어내 연구용으로 쓰고 싶다고 하면 당신은 동의하겠는가. 의사들은 그같은 제안을 받아들일 환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한다. 유희석 교수(아주대 산부인과)는 “조직의 일부를 떼어내 연구용으로 쓰겠다고 했을 때, 선뜻 동의하는 환자는 드물다. 난자를 제공하겠다고 나선 여성이 천명이 넘지만, 병원에서 실험이나 연구에 쓸 난자나 난소 조직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황우석 교수의 공동 연구팀이었던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의사들은 유독 맘 좋은 환자들만 만난 것이었을까. <시사저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양대 산부인과 황정혜 교수와 황윤영 교수는 2002년부터 2003년까지 100명이 넘는 환자의 난소를 황우석 교수팀에게 제공했다(제846호 <시사저널>이 보도한, 한양대가 2005년에 제공한 난자와는 다른 것이다). 두 교수는 모두 환자의 동의를 받아 제공했다고 말했다.

황윤영 교수는 <시사저널> 기자에게 본인이 황우석 교수팀에 제공한 난소는 20개가 안 되며, 모두 환자의 동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황윤영 교수보다 더 많은 난소 조직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 황정혜 교수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진료실로 찾아갔지만, 황교수는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한양대 한 조사위원은 "황교수가 한양대 조사위원회에서 황우석 교수팀에게 보낸 난소는 ‘모두 환자의 동의를 받아 보냈다'고 진술했다"라고 말했다.

황우석 교수팀은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 초창기에 난소 안에 든 미성숙 난자를 이용해 체세포 핵 이식을 시도했다. 성숙 난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의 몸에서 적출한 난소에서 미성숙 난자를 뽑아내면 난자 수급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메이저병원 권혁찬 원장은 “일반적으로 의사 입장에서는 기술만 있다면, 적출 난소에서 미성숙 난자를 뽑아내는 것이 과배란을 유도해 난자를 추출하는 것보다 부담이 덜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성숙 난자를 채취하려면 주사도 놓아야 하고 과배란증후군 같은 부작용도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개복 수술이든 복강경 수술이든 환자의 몸속에 ‘칼’을 댈 상황이라면 난소 조직으로부터 미성숙 난자를 뽑아내는 것이 번거롭지 않다는 것이다. 

황정혜 교수 “모두 환자 동의 받았다”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 초창기에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팀장이었던 류영준 연구원은 ‘치료 목적으로 적출된 인간 난소로부터 회수한 미성숙 난자의 인공 수정 및 체세포 핵이식에 활용’(2004년 2월)이라는 석사 논문을 썼다. 당시 지도 교수는 황우석·이병천·강성근 교수였다. 이때 황교수팀은 인간 난소를 이용한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집중 ‘연마’했던 것이다. 한양대의대 교수팀에서 황우석 교수팀에게 난소를 무더기로 제공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류연구원은 논문을 쓰기 위한 실험에 환자 1백14명의 난소를 사용했다.

 
이 실험에 활용한 난소 가운데  90% 이상은 난소 질환과 관련이 없는 환자의 것이다. 사용된 난소를 제공한 환자는 자궁근종(101명)·자궁선근종(4명)·양성난소종양(7명)·난소 파열에 의한 과다 출혈(1명)·기타 환자(1)뿐이었다. 심지어 20대, 30대 환자의 난소도 있다. 불필요한 난소를 적출했거나 환자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자궁근종 수술 시 난소를 함께 떼내야 할 경우도 있지만 환자가 젊은 경우에는 가급적 난소를 떼어내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또 드러낸 자궁과 함께 딸려온 난소라고 해도 연구용으로 쓰려면 환자에게 적법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만약 황우석 교수팀에 건넨 난소 가운데 단 하나라도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이 있다면, 담당 의사는 환자의 조직을 훔친 범죄자가 된다. 또 다른 산부인과 의사는 “만약 환자 몰래 환자의 난소를 떼어내서 연구용으로 제공했다면 의사라고 할 수도 없다. 돈 주고 난자를 사는 것보다 더 비양심적인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한양대 조사위 확인 미뤄

그런데도 이 문제를 조사하고 있는 한양대 진상조사위는 환자 동의를 받았다는 두 교수의 주장을 확인해보지 않고 있다. 한양대 조사위는 두 교수의 진술만 확보했을 뿐, 난소를 제공한 환자 의료 기록과 동의서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 한양대 조사위를 소집한 의과대학 정풍만 학장은 “담당 의사가 아니면 환자 기록을 마음대로 볼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환자의 동의를 받았다는 당사자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같은 동료끼리 검찰에서 수사하듯 취조하고 확인할 수는 없잖은가. 국가 기관에서 문제를 삼고 확인하라고 한다면 더 조사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본인들의 진술을 믿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양대 의대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같은 대학의 한 교수는 “동료 교수의 일인데 어떤 조사 위원이 총대를 메고 싶겠는가. 무사히 지나갈 수 있다면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 한양대 교수들의 생각인 것 같다. 서울대 조사위나 국가생명윤리위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한양대로서는 자체 징계만 하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양대 조사가 진작 끝났는데도 발표를 미루는 것은 서울대 조사위 발표를 본 뒤 수위를 조절할 생각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한양대 의대가 미적지근한 대응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의대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누군가 문제가 될 환자의 의료 기록을 고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의료 기록과 동의서가 조작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냥 덮고 갈 문제가 아니다. 의료 행위를 빙자해 환자의 신체 조직을 훔쳤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밝히려면 환자를 모두 불러 난소 제공에 동의했느냐고 일일이 확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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