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는 독서 혐오의 원흉
  • 박홍규(영남대 교수, 법학) ()
  • 승인 2006.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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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한국인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뉴스가 새해 벽두를 장식했다. 어쩌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인데, 이를 크게 보도한 언론은 하나같이 예나 다름없이 고답적으로 국민을 꾸짖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언론이 독서에 대해 보여주는 적극성에 비하면 우리 언론은 독서에 대해 너무나도 소극적이지 않은가?

이는 외국 언론의 서평란이 우리의 그것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월등 우수하다는 것에서만이 아니다. 언론 자체가 대단히 편협하여 다양한 사고를 형성하는 데 바탕이 되는 다양한 기사 읽기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는 최근의 황우석 교수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 정치적 쟁점을 둘러싼 언론의 보도 태도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책이든 신문·잡지든 그 내용이 교조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말초주의적이어서 언제나 대중의 흥미만을 자극하는 경우, 그 사회의 읽고 생각하는 문화는 수준이 저하하고 타락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독서 기피 경향이 인터넷이나 소비문화 때문이라고들 하나, 그 전부터도 우리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가령 흔히들 책과 함께 산다고 하는 나 같은 교수도 그렇다. 물론 교수의 연구실이나 집에는 책이 많으나, 그 대부분은 기증받은 전공 분야의 교과서나 잡지이다. 요컨대 직업적인 이유 외에 교수들은 책을 사지도 읽지도 않는다.

그런 교수에게 배우는 대학생 중에는 교과서조차 사지 않고 취직에 필요한 문제집 정도만 사는 경우가 많다. 초·중·고 학생은 교과서 구입이 강요되므로 교과서라도 사고, 수험 주니를 위해 참고서까지 사지만, 아마 대학처럼 자유롭게 한다면 마찬가지로 그것조차 사지 않을지 모른다. 여하튼 초·중·고교 학생들은 교과서 이외의 책은 읽지 못하거나 읽을 수가 없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오면 책읽기와 철저히 무관한 군대를 거쳐 오직 취직 공부에 몰두하기 때문에 취직을 위한 문제집 외에 역시 다른 책을 읽지 못하거나 읽지 않는다.

그 뒤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신문·잡지를 포함하여 가구당 책값에 투자하는 비용이 한 달에 1만원 정도로, 교과서나 취직 준비서나 이른바 베스트셀러라는 가벼운 실용서 이외의 책을 살 수 없다. 그러니 인문사회과학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국정 교과서 제도 폐지해야

대학에서 학생들은 곧잘 초·중·고교 시절 교과서로 배운 내용이나 일반 여론과는 수업 내용이 다르다고 반발한다. 교과서와 주류 언론 때문에 청소년의 사고는 철저히 단세포로 경직된다. 학생들은 물론 교수나 언론인이 리포트·논문·기사를 표절하는 버릇에 젖어 있음은 윤리의 마비 이전에 교과서적 단세포 사고를 절대시하는 신앙에 젖어 표절이 왜 문제가 되는지도 모르는 탓인지 모른다.

이제 교과서나 주류 언론은 국민에게 강요되는 유일한 지식의 근원이자 권위이고 권력이 되었다. 우리 나라에 특유한 국정 검인정 교과서 제도는 역시 우리 나라에 특유한 입시 제도와 함께 획일적인 인간을 만드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한다. 권력이 창조하는 지식을 상징하는 교과서는 절대적인 권위로 국민의 지성을 결정하고 관리하며 규제한다.

대학은 물론 초·중·고교 시절에 고전을 비롯하여 다양한 책을 읽고 생각하며 토론하는 교육으로 바뀌지 않으면 우리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 습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책 읽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다양성과 민주성에 관련되는 문제이다. 사고의 다양성과 민주성이 없는 곳에 독서 혐오의 문제는 끝없이 악순환한다. 사고의 다양성과 민주성을 부정하는 일부 언론도 마치 교과서와 같은 절대적 권위의 괴물이 되어 국민의 판단력을 획일적으로 몰아가는 원흉일지 모른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국가인권정책 기본 계획을 두고 말이 많다. 흔히 말하는 국제 기준에 비추어 인권의 최소한을 밝힌 것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밖에도 여러 가지를 주장해왔는데, 그 중에서도 참된 교육을 받을 인권의 내용으로 국정 교과서 제도를 폐지하고 다양한 책읽기를 하자는 주장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다양성을 핵심으로 한다는, 이른바 21세기 인간상에 맞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사고의 다양성과 민주성을 위해서도 책읽기가 어려서부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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