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업에 적대감 없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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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인터뷰] 조영황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헌법에 있는 국가의 의무다.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서 이 시대 최고의 가치이자 화두다. 모든 국가기관은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조영황 위원장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인권론’을 펼쳤다. 변화한 시대를 읽지 못하고 아직도 옛 생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무언의 항변과 안타까움 같은 것들이 그의 말 속에 녹아 있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편안한 상태에서 인터뷰에 응한 조위원장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인권위 위원장실에서 1시간 20분 동안 유려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말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는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 5단체가 인권위가 확정한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sㆍNAP) 권고안을 비판한 데 대해 “기본적으로 인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잘못 알고 있다”라고 강력하게 반박했다.

인권위가 뉴스에 오르내리는 일이 많아졌다.
우리는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 같은데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해가 부족한 데서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만 해도 그렇다. 병역 기피 현상이 염려스럽지만 외국의 경우를 보면 대체 복무제가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우리 국민만 악용하리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대체 복무를 인정하자는 것이 결코 엉뚱한 주장이 아니다.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 권고안(권고안)을 만든 배경은 무엇인가.
NAP는 국가 전반의 인권 정책과 제도를 점검하고 개선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다. 정부가 2007년부터 5년간 집중할 인권 분야에 대한 계획이 집대성되어 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다. 인권위는 지난 3년간 권고안을 만드는 데 노력해 왔다. 정부가 관련 부처와 협의를 거쳐 확정하면 앞으로 국가 정책이 인권 측면에서도 검토될 것이다.

경제 5단체장이 성명서를 내는 등 재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인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잘못 알고 있다. 권고안은 인권 정책을 세울 때 이러이러한 것을 수립했으면 좋겠다고 정부에 권고한 것이다. 인권위는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들이 많다. 재계에서 인권위 구성을 바꾸라고 하는데 그럴 방법도 없다. 전원 위원들은 임기가 보장되어 있고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이 선출한다. 일방적으로 구성한 것이 아니다.

재계는 권고안 가운데 직권중재 폐지안,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 원칙 등을 들어 이상론에 불과하며 산업 현장에 갈등과 혼란을 부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경제적으로 이만큼 성장했으면 인권 문제도 같이 가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품위를 갖춘다. 사회적인 약자들과 같이 가야지 잘사는 쪽만 생각한다면 올바른 사회가 아니다. 인권위 권고는 유엔이 정한 노동 인권 기준을 참작한 것이다. 단순히 인권위가 왜 노동 문제에 간섭하느냐 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업에 전혀 적대감이 없다. 당장 하라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5년 동안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권고한 것이다.

인권위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결과 어긋나는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각 기관마다 권한이 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은 법률을 해석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인권위는 미래 지향적이다. 헌법에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으면 고치라고 권고할 수 있는 기관이 인권위다.

권고안과 관련해 재계 대표자들과 만날 생각은 없나.
우리도 미흡한 점이 있었다. 재계에 인권위 구성과 역할에 대해 설명했어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이해를 구하는 입장에서 만날 수는 있지만 언쟁을 벌일 생각은 없다. 정부에 권고한 것이기 때문에 재계는 우리의 언쟁 대상이 아니다. 기회가 있으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이다.

정부도 인권위 권고안을 선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2007년부터 5년간 이행하지 못할 만한 사항은 없다. 권고안을 정부가 존중해야 한다. 권고안이기 때문에 그대로 채택할 의무는 없지만 존중할 것으로 본다.

인권위는 그동안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법에는 인권위 관할이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 내에 있는 외국인에게 적용한다고 되어 있다. 헌법은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 전체로 본다.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여기기는 그렇다. 하지만 법 효력이 미친다고 보기도 어렵다. 특수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남북을 오갈 때도 비자를 발급하지 않고 출입증으로 대신하지 않나. 북한 당국에 대해 우리가 직접 어떤 권고를 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 정부에 대해 권고하는 것은 가능하다. 지금 논의 중에 있는데 그런 얘기가 나오고 있다. 멀지 않은 시기에 인권위 의견이 정리되어 나올 것이다.

북으로 간 비전향 장기수들이 인권 피해를 당했다며 정부를 고소했다.
적십자사를 통해 고소장을 접수했다. 하지만 우리가 다루기는 어렵다. 필요할 때는 1년 이상 된 사건이라도 조사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납북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권위가 인권 침해를 막으려고 ‘인간 배아 복제 특별연구팀’을 만들었다가 흐지부지된 이유가 무엇인가.
황우석 교수 사건을 인권위가 직접 다루거나 논의한 적은 없다. 특별팀을 만들었을 때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았을 때였다. 황교수 문제가 터지기 전에도 생명 윤리 문제와 관련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사건이 터졌다. 정부 생명윤리위원회에서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를 (인권위가) 다뤄야 할 긴박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앞으로 차분하게 생명 윤리 문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권고’에 그치는 인권위 권한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권고를 넘어서면 기관의 성격이 달라진다. 사법기관이나 행정기관이 된다. 권고를 할 때는 광범위한 권고가 가능한데, 강제력이 부여되면 범위가 좁아진다. 사법 체계가 바뀌는 등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권고를 받아들여야 하다는 준강제 조항 정도는 만들 필요가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나 감사원처럼 인권위도 헌법상 독립 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필수적이다. 개헌이 사회적인 화두가 되면 그런 의견을 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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