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황우석이 남긴것
  • 천정환(문화 평론가) ()
  • 승인 2006.01.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비평]

 

 
황우석 교수가 학자로서 윤리 의식이 아주 트릿한 인물이며, 또한 언론 플레이 같은 데 능수능란한 정치꾼 스타일의 인물임이 드러났음에도 아직 황우석 지지자들은 상당히 많다. 여론조사 결과 황교수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40%가 넘었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졌지만 상당수 ‘국민’에게 아직도 ‘황우석’은 영웅의 이름인 것이다. 왜 그럴까?

‘황빠 현상’ 안에도 계층적ㆍ세대적 차이가 엄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황우석이라는 잘못된 영웅은 오늘날 상당수의 ‘보통’ 한국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안타까운 열망과 어두운 마음이 만들어낸 환각임이 분명하다. ‘난치병 환자를 구한다’ ‘국익을 얻는다’ ‘세계적인 과학자’라는 미래형 ‘이미지’는 ‘논문을 조작했다’ ‘연구 윤리를 위배했다’는 사실의 기표보다 훨씬 강력했다(물론 더 이해하기도 쉽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황교수는 눈앞의 ‘성과’와 함께, 어느 정치인도 제시하지 못한 ‘희망적인’ 비전(수조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와 난치병 치료라는 결정적인 뻥튀기)도 제시했었다. 황교수가 열연했던 ‘먹여 살릴 능력 있고 강력한 아버지’ 같은 인물에게 우리는 기꺼이 자신의 주체성마저 양도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호주제는 폐지되었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아직 제 발로 선 ‘개인들’이 아닌지도 모른다.

많은 지식인과 진보주의자들은 황우석 사태에 나타난 ‘국민’의 애국주의에 대해 혐오감을 표시한다. 때로는 그것에 ‘파시즘’이라는 딱지까지 붙이며 매몰차게 공격하기도 했다. 과연 그놈의 애국주의에는 그런 면이 있다. 객관적인 진실과 양심적인 문제 제기를 일방적인 욕설로 매도하고 그야말로 ‘냄비 근성’으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꼴’을 보면 과연 혐오스럽고 머리털이 쭈뼛 서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황우석 교수가 ‘가난한 자들’과 장애인들의 영웅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은 제 발로 설 수 없고, ‘행복’하기는커녕 제 앞가림조차 해나가기 어렵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애국주의와 경제 제일주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약자들이 지르는 비명의 일종이다. IMF 이후 저성장ㆍ고실업 사회가 되면서 ‘국가’ 아닌 다른 믿을 대상도, 비빌 데도 당최 없는 것이다.

그래도 국가가 나서서 ‘인권위원회’도 만들고 ‘신용불량’도 해소해주고 탁아소도 지으려고 한다. 그런 대안마저 없거나 실패하면 사회적 약자들은 ‘자본’의 흡혈귀들과 강자들한테 그야말로 피를 빨리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가난한 애국자들은 ‘몸으로’ 느끼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국가’(때로는 가족)밖에 가진 것이 없다.

‘국민’들이 정치권과 대통령에 바라는 바가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라는 식의 열망밖에 가질 수 없고, 또 그러한 불안이 지속되는 한, ‘황우석스런’ 대한민국 영웅은 얼마든지 또 나타날 것이다. 이는 ‘청계천 효과’로 이명박의 인기가 상당히 오래갈 것이라는 것, 그리고 현재로는 김근태나 박근혜 같은 이가 ‘결정적인’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유감스럽게도 현대 국가는 그저 지배 계급의 도구이거나 ‘망상의 공동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통의 ‘공간’이자 공기(公器)이기도 하다. 거짓말 조작은 응징되어야 하지만, 민중의 ‘애국주의’는 보듬어 치유해야 할 상처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가 이런 각도에서 제기되지 않으면 ‘진보’의 무능이나 ‘고립’은 계속될 것이다. 예컨대 사태의 전 과정에서 민노당은 그야말로 일관되게,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고 정도(正道)를 지키며 ‘진보’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지만, 이것이 ‘진보’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산시키는 데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되었다.

참담하지만 21세기에도 ‘국가’나 ‘애국질’이 없어지거나 약해질 전망이 거의 없다. 필요한 것은 애국심 자체와 싸우기보다는, 애국심을 더 강고하게 하는 불안과 애국심에 편승해서 한몫 보려는 선동가들과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저 처절하게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농민들처럼, ‘국익’ 부스러기라도 얻기 위해서는 국가, 바로 그놈과 처절히 싸워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일일 것이다. ‘약자’들 편에 서서, ‘진보’를 위해서.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