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와 상상을 혼동하는 사회
  • 이형석 (<헤럴드경제> 기자) ()
  • 승인 2006.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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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영화적 재해석:<청연> <홀리데이>

 
지난해 초 거세게 불어 닥친 스크린발 이슈는 <그때 그 사람들>의 ‘박정희 명예 훼손’ 논쟁이었다. 그리고 올해 초 영화계에서는 때 아니게 ‘친일 논란’이 불거졌다. 조선 최초의 민간인 여류비행사 박경원의 삶을 다룬 <청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때 그 사람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유족들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보수 세력이었고, <청연>의 비상을 막은 것은 진보를 자처하는 한 인터넷 매체와 이에 동조한 네티즌들이었다. 일단 두 편의 영화로 인해 펼쳐진 논쟁이 한국 사회가 가진 ‘뇌 구조’의 단면이자 이데올로기의 압축된 지형도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때 그사람들>의 경우에는 우리 사회가 정치적 이슈들과 권력층의 사생활을 육담 섞인 술자리 안주로 끝없이 소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도 (봉건적인) 정치적 엄숙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이는 동일하게 10·26 사태를 다루었던 드라마 <제5공화국>초반부에 대한 시청자들과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관객들 간에 나타났던 반응에서도 그 차이가 잘 나타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에 따라 반응 달라져

역사적 사실에 대해 유사한 해석과 시각을 보였음에도 <제5공화국>과 <그때 그 사람들>을 결정적으로 가른 것은 어조의 차이였다. 만일 <그때 그사람들>이 조롱이나 야유, 풍자의 형식이 아니라, <제5공화국>처럼 표정을 정색하고 진지하게 비판적 어조를 띠고 있었다면 그토록 격렬한 비난과 논란에 휩싸였을까. ‘그들’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역사에 대한 이견과 비판적 재해석이 아니라 결국 한 인물로 상징되는 역사가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아니었을까.

<청연>에 대한 논란은 영화 주인공이 친일행위자였다는 사실에 대한 판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누가 제국주의의 치어걸을 미화하는가’라는 도발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는 영화가 언론에 공개되기도 전에 제기되었다. 영화는 그것이 실재 사실이든 가상이든 흔히 ‘극적인 삶’을 다룬다. 그래서 세기의 영웅이나 인류의 성인도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지만 희대의 살인마나 천하의 패륜아도 스크린에 담겨진다.

그렇다면 박경원이 친일행위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그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초대했다는 것만으로 영화를 비난하거나 심지어는 ‘불매 캠페인’까지 벌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의 행적에 대한 판단이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심미적·정치적 판단을 대체하는 것은 현실과 상상, 실제와 허구를 ‘혼동’하는 전통적인 방식 중 하나다.

‘친일’이라는 주제는 전통적으로 진보 성향의 주요 이슈 중 하나였고, 이념적 좌우를 가르는 담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청연>과 관련한 논란은 앞으로 이념적 담론이 기존의 노동과 복지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뿐 아니라 민족주의에 대한 태도에서도 갈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말로 하면, 민족주의로 뭉뚱그려졌던 다양한 경향들이 분화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함축했던 진보성은 그 생명력을 이미 다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 예술에는 더 많은 '자유' 필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논란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지강헌 사건을 스크린에 옮겨 최근 개봉한 <홀리데이>는 <청연>과는 반대였다. 영화사가 논란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제작사는 ‘범죄자 미화로 논란’이라는 보도 자료를 영화공개 전에 배포했으나 영화사의 기대와 달리 큰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지강헌(극중 지강혁으로 등장한다)을 부당한 권력에 의한 희생자로 묘사하면서 서울올림픽의 환호 속에 묻혔던 한국 사회의 그늘을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요약한다. 논쟁이 불발된 것은 영화의 메시지가 이제까지의 공식적인 해석(교과서조차도 제5공화국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과 다르지 않고, 민족주의와 같은 민감한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과 실화 바탕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롭 마샬 감독의 ‘게이샤의 추억’(2월 2일 국내 개봉 예정)이 논란거리가 되었다. 1972년 뮌헨올림픽 당시 검은 9월단 테러를 소재로 한 ‘뮌헨’은 팔레스타인의 테러 세력을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장쯔이가 주연한 ‘게이샤의 추억’도 중국 여배우가 게이샤로 등장했다는 이유와 일본 배우가 오히려 조연이고 일본 전통 문화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중·일 양국에서 싸잡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실화 바탕의 영화들이 일으켰던 여러 논란은 서구와는 다르게 아직도 국내에서는 실제 상황과 이것의 상상적 재현으로서의 영화 사이에 그 ‘거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한국 사회의 민감한 이슈를 다룰 경우에는 더더욱 실재와 상상간의 거리 두기가 어려워진다는 점도 드러난다. 그것이 좌든 우든 말이다. 영화와 현실을 착각하는 것은 비단 막가파식 모방 범죄자들뿐만은 아닌 듯하다.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대중 예술에는 더 많은 ‘자유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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