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틈새 메우기 ‘세금 전쟁’ 카운트다운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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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5월 지방선거 이후 ‘조세 개혁안’ 제시할 듯

 

노무현 대통령이 캐나다 멀로니 총리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두 달 전부터 시장에는 온갖 억측이 나돌았다. 멀로니 총리는 임기 중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증세(增稅) 정책을 밀어붙였다가 자신이 이끌던 보수당을 의석 1백69석인 집권 여당에서 2석의 초미니 정당으로 몰락시킨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가 캐나다를 재정 파탄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점을 노대통령이 높이 평가하자 시장은 혹시나 대통령이 이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이런 의심은 대통령 신년 연설을 이틀 앞둔 1월16일 한겨레 신문이 ‘신년 연설의 핵심은 조세 개혁’이라고 보도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이 신문은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19.5%인 조세 부담률을 중·장기적으로 30∼40%대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시장은 발칵 뒤집혔다. 곧바로 증권가에는 “대통령이 구체적인 조세 개혁 방안으로 주식 양도 차익에 과세하는 방침을 언급할 것이다”라는 괴소문이 나돌았다. 

다음날인 17~18일 주가는 60포인트 가까이 폭락했다. 청와대와 한덕수 부총리가 직접 나서 관련 내용을 부인해도 소용없었다. 물론 주가가 폭락한 데는 국제 유가 급등, 외국 증시 하락 같은 해외발 악재가 맹위를 떨쳤지만, 주식 양도 차익 과세 같은 세금 관련 루머가 엎친 데 덮친 격의 상황을 빚어낸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본즉 신년 연설 내용은 추상적이었다. 노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라는 원론적인 내용을 되풀이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의 공언대로 조세 개혁은 ‘조’자도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세 개혁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멘트’는 적지 않았다. 대통령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며, 예산 절약과 구조 조정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노대통령은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의 재정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7.3%로 다른 선진국(미국 36%, 일본 37%, 영국 44%, 스웨덴 57%)에 비해 작다는 설명도 따라붙었다. 이런 대통령의 언급은 ‘역시 세금밖에 없는데’라는 관측을 무성하게 했다.

경제계는 이미 세금 혁명 시작됐다며 긴장

물론 청와대의 설명은 이것이 곧 조세 개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멀루니 총리는 메타포(은유)였을 뿐이다. 재정 확충이 시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 한 일방적으로 조세 개혁을 밀어붙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당분간 조세 저항을 무릅쓰면서까지 세율을 인상하거나 세목을 신설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단 세원을 확대하는 작업은 가일층 강도 높게 진행될 전망이다. 8·31 후속 입법에 근거한 부동산 정책을 필두로 정부가 지난 연말부터 쏟아내는 각종 세금 정책에 경제계는 이미 “세금 혁명이 시작되었다”라며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국세청은 지난달 고소득·전문직 자영업자 4백22명에 대한 표본 세무 조사를 벌인 데 이어, 대통령 신년 연설 다음날인 19일 대기업 1백16곳에 대한 표본 세무 조사에 전격 착수하며 ‘탈세와의 전면전’을 예고했다.

이와 더불어 국세청은 △소득이 적다는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았던 과세 미달자(현재 50% 수준)를 새로운 과세원으로 끌어들이고 △과세 근거가 되는 장부나 증빙 등을 갖춘 기장 사업자 비율을 높여 나가며 △현금 영수증 제도를 더 발전시켜 거래를 투명화하는 방식 등으로 과세 인프라도 대폭 확충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선거 의식한 여당, 다른 길 걸을 수도

정부·여당 입장에서 보자면 여기까지는 ‘꿩 먹고 알 먹고’이다. 세원 확대를 꾀하는 이들 정책 상당수가 탈세·탈루를 일삼는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 만큼 세수 확충과 동시에 여론의 지지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멀리 보면 셈법이 달라진다. 신년 연설 다음날인 1월19일 청와대는 지난 연말부터 예고했던 양극화의 ‘근본적인 해결책’ 제시 시점을 뒤로 늦추겠다고 밝혔다. 그 시점은 5월 지방선거 이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이때가 되면 당정이 다른 길을 갈 공산이 크다고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전망했다. 일단 열린우리당은 대선을 의식해 증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대통령은 임기에 구애받지 않고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은 반드시 하겠다”라는 입장이다.

비록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5월 이후면 대통령도 ‘설득할 만큼 했다’는 명분을 어느 정도 쌓을 수 있다. 따라서 이때쯤이면 대통령 탈당설이 다시 불거지면서 조세 개혁이 본격적인 사회적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보았다. 진짜 ‘세금 전쟁’은 이때부터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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