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고개 너머 닭개장
  • 성석제(소설가) ()
  • 승인 2006.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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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틀리는 음식이 있다. 요즘에는 종이에 인쇄된 식단은 그런 대로 정확해졌는데 음식점 벽이나 유리 출입문에 사람의 손으로 씌어진 식단은 상대적으로 오류가 많다. 뽁음(볶음), 비빕밥(비빔밥) 같은 것이 단순한 혼동에서 그런 것이라면 떡볶이가 ‘떡복기’ ‘떡복이’ ‘떡뽁이’로 변형되고 찌개가 ‘찌게’로 쓰여 있을 확률은 상당히 높다. 육개장도 ‘육계장’으로 쓴 것을 자주 본다. 워낙 자주 보게 되니 나 자신도 어느 때는 헛갈리고 어느 때는 헷갈리며 때로 섞갈린다.

‘육계장’이 있으려면 ‘계장’이 먼저 있어야 한다. ‘육’과 ‘계장’은 분리되는 거니까. ‘육+계장’에서 육은 우리나라에서는 소를 뜻한다. 중국에서는 ‘육’ 하면 돼지이고 소는 우육(牛肉)이라고 쓴다. 계장은 무엇인가. 과장과 평사원 사이에 있는 직급? 그래서 직장인들이 육개장보다는 ‘육계장’을 즐겨 먹는가? 계장을 씹고 갈아마시고 삼키기 위해서? 그건 음식과 별개의 문제이고 음식의 ‘계장’은 ‘개장’으로 쓰는 게 맞다. 게장도 있으니까 계장, 개장, 게장들은 좁은 터에서 비슷한 얼굴로 혼동하기 쉽게도 생겼다. 

개장 역시 분리된다. ‘개+장’으로. 개는 말 그대로 개다. 병술년의 술(戌)에 해당하고 견(犬), 구(狗), 멍멍이로 표기하며 사냥터에서 토끼가 죽으면 솥에 들어앉게 되는 그 개를 말한다. 장은 간장, 된장 할 때의 그 장(醬)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장국이다.

육개장과 개장국과 닭개장의 촌수 관계

개장국은 된장을 푼 국물에 초벌 삶은 개고기를 넣고 끓인 뒤 마늘·생강·파·고춧가루 등으로 양념을 하여 푹 곤 것이다. 고기가 흐물흐물하게 익었을 때 건져서 뼈를 발라 내고, 고기를 적당히 찢어서 일부는 국에 넣고 일부는 갖은 양념을 하여 버무려 국물 위에 얹거나 마른고기로 먹는다. 여름철 보신용으로 많이 먹었고 이에 따라 ‘보신탕’이라는, 음식으로서 영광된 명칭이 붙었다.

특히 더위가 가장 심한 삼복에 먹는 풍습이 있어서 ‘복날 개 패듯 한다’는 말을 낳기도 했다. 일부 지방에서는 개를 잡아서 먹는다고 하지 않고 ‘개를 한다’고도 하고 줄여서 ‘개 한다’고도 표현한다. 이를테면 처삼촌이 조카사위에게 ‘자네 개 허는가?’ 하는 게 용례가 되겠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개를 먹는 나라라는 ‘악명’을 떨쳐내기 위해 대대적인 단속이 있었다. 백성들이 재래의 음식을 숨어서 먹으며 영양을 섭취한다고 해서 ‘영양탕’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육개장은 개장국을 꺼리는 사람들을 위해 쇠고기로 개장국처럼 끓이는 국이다. 육개장에 쓰이는 고기는 결대로 찢어지는 양지머리가 좋지만 사태 부위도 쓴다. 양지머리·양·곱창이 주요 재료이고 큼직하게 잘라서 찢은 대파가 들어간다. 토란대·숙주나물·고사리 같은 야채류는 물론이고 고춧가루를 참기름에 개어 만든 고추기름·마늘·간장·참기름·후추가 들어가고 고추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육개장과 개장국의 요리 과정 중 공통점은 고기를 삶아서 익었을 때 건져 뼈를 발라내고, 적당히 결대로 찢어서 놓았다가 나중에 국이 끓었을 때 넣어서 더 끓여서 먹는다는 부분이다. 

육개장은 개장국과 달리 대다수 사람이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음식이다.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고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다. 이러다 보니 라면이며 인스턴트 식품들에까지 이름이 ‘징용’되면서 육개장은 값싸고 흔해 빠진 음식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작 재료를 제대로 갖추고 육개장을 잘 만드는 식당은 많지 않다. 육개장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쇠고기장국밥과 비슷한 것이 많고, 덮어놓고 색깔만 벌겋고 맵게만 한 것이 적지 않다.

내 경험으로는 그래도 정통 육개장에 근접한 것을 먹을 확률이 높은 곳은 병원 근처의 식당이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지인에게 병 문안을 갔다가 나왔을 때, 식사를 못한 다른 위문객과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서 고르는 식단이 대개는 육개장이었고 그게 그런 대로 괜찮은 맛이었다. 일부러 먹으러 갈 정도는 되지 않았지만.

언제부터인가 병원의 영안실에 가면 육개장이 나오는 게 상례가 되었다. 육개장이 술국으로도 적당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벌건 국물이며 매운 맛이 왁자지껄한 세속을 곧바로 상징하는 것 같다. 이승과 저승이 문턱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혼재하는 영안실에서 육개장은 이승의 강력한 기호이다.

닭개장은 개장국에서 한 걸음 나아간 육개장에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간 ‘개장’이다. 닭을 먼저 삶아서 건져 뼈를 바른 뒤 살을 결대로 찢어놓았다가, 닭 삶은 육수에 양념과 나물을 넣어서 끓인 국물에 닭고기를 나중에 넣어서 더 끓여서 먹는 게 앞의 두 ‘개장’과 겹치는 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개·소·닭 세 동물의 ‘개장’이 좁은 나라에서 비슷한 얼굴로 각자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형국인데 그 중에서 닭개장은 닭의 개체 수에 비해 그리 흔하지 않은 음식이다. 

육개장·닭개장이 잔칫집 음식으로 각광 받은 까닭

개장국이든 육개장이든 닭개장이든 오래도록 끓여야 진짜 맛이 우러나온다. 육개장은 나물과 양, 곱창 같은 내장을 오래도록 고으다시피 끓이고 닭개장은 닭 육수에 뼈를 넣고 나물과 양념을 한 뒤 몇 시간이고 끓인다. 식으면 다시 덥혀서 먹어도 상관없다. 잔치집에서는 띄엄띄엄 오는 손님에게 두고두고 대접할 수 있는 것이 육개장·닭개장이다. 고기가 모자라면 더 삶아서 찢어넣고 나물이 모자라면 더 데쳐서 넣고 물이 모자라면 또 더 넣고.... (예수가 행한)오병이어의 기적은 아니지만 가마솥 아래 연기가 피어오르는 한 손님 대접 걱정은 없었다.

10여년 전, 고향에 혼자 살고 있는 친구의 어머니가 칠순 잔치를 하게 되었다. 서울로 나와 산 지 20년이 넘은 아들이 마찬가지로 서울에 사는 고향 친구들에게 청첩을 돌렸다. 청첩장을 보니 첩첩산골 꼬불꼬불 돌아가는 길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데 동네로 넘어가는 여우고개인지 아리랑고개인지 하는 길은 아직 포장도 되지 않았다니 오라는 것인지 오지 말라는 것인지 알쏭달쏭했다.

그 알쏭달쏭함을 풀기 위해 만난 친구들은 튀김닭에 맥주를 마시며 장시간 의논 끝에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진의를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대표로 전화를 한 친구가 다짜고짜 “잔치에 닭개장 나오느냐”라고 물었다. 아들은 좀 미안했는지 “글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러자 대표 친구가 “에이, 닭개장 안 하마 우리는 아무도 안 가여!” 하고 오랜만에 듣는 진한 사투리로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우리가 한 횃대에 앉은 닭처럼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면전에서 보기라도 한듯 다급하게 “닭개장 하겠다. 집에 있는 닭을 다 잡아서 밤새도록 끓여서라도 대접한다”라고 약속했다. 우리는 당장 그 자리에서 모두 그 잔치에 가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하루 종일 눈길을 뚫고 가서 닭개장 한 그릇을 먹고 다시 한밤중까지 운전하고 돌아온 친구들은 그 후에도 두고 두고 그 닭개장의 맛을 이야기했다. 가끔 꿈에서도 닭개장 먹는 꿈을 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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