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코원숭이는 어떻게 인간을 돕나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6.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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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신약·난치병 실험에 큰 도움…선진국, 확보 전쟁

 
영장류에게 인간과 같은 강력한 사촌이 있다는 것이 축복일까 재앙일까. 물론 재앙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이 탐욕스러운 사촌이 그들의 서식지인 숲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애완용으로, 식용으로 마구 잡아가는 바람에 영장류들은 점점 설 땅을 잃고 있다.

반면 인간에게 영장류의 존재는 분명 축복이다. 영장류의 행태에 대한 연구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면 기사 참조). 특히 최근에는 신약 개발과 난치병 치료를 위한 실험용 동물로 영장류가 각광을 받고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과 유전적으로 90% 이상 일치(침팬지는 98.77%)해 유사한 질환 모델을 갖고 있는 영장류를 잘 활용하면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내다본다. 미래 생명공학의 성패는 실험용 영장류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국제법상 야생 영장류는 국가 간 이동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영장류의 멸종과 인수(人獸)공통전염병이 세계적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또한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보노보, 긴팔 원숭이 같은 대형 유인원들은 국제조약상 멸종 위기 동물로 분류되어 실험 종료 후에도 도살을 하지 못하고 종신 사육하도록 되어 있다.

원숭이 마리당 4백만~5백만 원

그렇기 때문에 실험용 동물로는 필리핀,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원산인 13kg 이하의 마카카 원숭이가 주로 쓰인다(13kg 이상의 야생 원숭이는 힘이 너무 세서 사람이 통제하기 힘들다. 야생 침팬지는 이종 격투기 세계 챔피언 5명이 덤벼도 당해내지 못한다). 마카카 원숭이란 필리핀 원숭이(사이노몰거스), 히말라야 원숭이(레서스), 일본 원숭이, 피그테일 같은 아시아산 원숭이들을 통칭하는 말인데 실험용은 생일과 모체 확인이 가능한 인공 교배된 것이어야 한다.

 
이처럼 실험용 영장류의 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지금 영장류를 확보하기 위해 소리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전쟁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나라는 원숭이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다(상자 기사 참조). 2002년 한 해에 중국은 8천 마리, 베트남은 4천 마리, 모리셔스는 3천 마리, 인도네시아는 2천 마리의 원숭이를 수출했다. 중국은 국가가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 나가는 마릿수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어 각 나라는 중국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처지이다.

실험용 동물로서 영장류가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알려주는 사례가 있다. 1960년부터 1962년 중반까지 미국과 유럽에서는 탈리도마이드라는 독일산 임산부 최면제가 널리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약품이 가진 치명적인 부작용 탓에 양팔만 성장이 안 되는, 이른바 바다표범 베이비라는 장애아들이 양산되고 말았다. 쥐나 설치류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서는 부작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까닭이었다. 만약 당시 영장류로 실험을 했더라면 그 같은 비극은 미연에 막았을 것이다.

규모 큰 실험에 암수 원숭이 40마리 소요

영장류 연구자들을 벌써 3세대째 배출하고 있는 미국, 일본, 유럽에 비해 우리 나라의 영장류 확보와 연구는 매우 늦은 편이지만 성장 속도는 빠르다.  현재 가장 많은 실험용 영장류를 확보하고 있는 곳은 2002년부터 동물실험동을 운영해온 안전성평가연구소이다. 이곳은 지금 3백50마리 정도의 사이노몰거스 원숭이를 확보하고 있다.

 
사이노몰거스 원숭이는 말 그대로 귀하신 몸이다. 마리당 수입가가 4백만~5백만 원이다(영장류를 제외하곤 가장 비싼 실험 동물인 비글견은 마리당 1백20만원이다). 검역을 마치고 기생충과 균에 감염되지 않은 최적의 상태로 만들려면 또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철저히 위생 처리한 신선한 먹이만 제공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24시간 습도·온도·환기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이 귀하신 몸을 만나려면 사전에 건강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며 3개 게이트를 통과해야 한다. 우리 안의 기압이 외부보다 낮도록 음압시설을 해 우리 안의 공기가 절대로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인수공통전염병균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다. 몸무게가 5kg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힘이 세서 불의의 일격을 당할 수 있으므로 장갑을 세 켤레나 겹쳐 끼고 고글을 하는 등 중무장을 해야 한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기초 탐색 연구에 1~3년, 전 임상시험(안전성과 유효성 평가)에 3~5년, 임상시험에 4~7년이 걸리는데 영장류 실험이 필요한 것은 바로 전 임상시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쥐나 설치류로 실험하면 건당 3천 마리 정도가 들어가지만, 영장류로 하면 4~12마리 정도면 끝낼 수 있고 훨씬 유효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개코원숭이, 장기 이식 실험에 적합

 
물론 큰 실험의 경우는 비슷한 연령대의 암수 원숭이가 각각 20마리씩 들어가기도 하는데 비용은 15억원을 넘어간다. 연구자들은 먹는 것, 자는 시간 등을 일일이 통제하기 힘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보다 영장류를 이용한 실험 데이터가 더욱 믿을 만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임상 전 단계에서 영장류로 실험을 하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서 위험 요소를 대폭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정부가 투자한 국책 연구소인 안전성평가연구소는 동물 독성 실험 사업을 시작한 지 몇 년 안되었으나 전세계의 유명 제약회사들로부터 ‘아시아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1998년 아시아 최초로 국제실험동물관리인증협회(AAALAC)로부터 인증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사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극성스럽기로 소문난 동물보호협회의 견제를 받아야 하는 미국이나 유럽의 영장류 실험실보다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 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영장류 실험 주문이 늘자 안전성평가연구소는 베트남 현지에 영장류 실험실을 짓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한상섭 소장이 베트남을 방문해 그곳 정부 관계자들과 협의를 가졌다. 한소장은 베트남 현지에 실험 시설을 지으면 실험 비용을 5~10배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베트남 현지의 원숭이 마리당 가격은 50만~60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국내외 영장류 실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g에 수억원에 달하는 생물학적 제재는 영장류로 실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kg에 달하는 비글견 같은 것으로 실험했다간 비용도 감당하기 힘들고 유효한 데이터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황우석 교수가 성공했다, 못했다 말이 많은 줄기세포 치료제나 세포 치료제도 임상실험을 거치기 전에 반드시 영장류 실험을 해보아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게 된다.

“영장류 확보, 줄기세포 연구만큼 중요”

안전성평가연구소의 한상섭 소장은 “지금 선진국들은 원숭이만 보면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싹쓸이하고 본다. 그것은 국가가 무조건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도 원숭이 자원 확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안전성평가연구소가 영장류 독성 실험의 상업화에 치중하는 반면 지난해 6월 문을 연 국가영장류센터는 전반적인 영장류 연구를 위한 인프라를 확립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이노몰거스, 레서스, 아프리카 녹색 원숭이 등 영장류 74마리를 확보했다. 이 밖에 개코원숭이(바분), 일본 원숭이, 비단원숭이(커먼 마모셋)를 도입 중이며, 2010년에는 침팬지도 들여올 예정이다. 마리당 3천만원에 달하는 침팬지 무리를 들여와 충북 오창과학단지에 위치한 국가영장류센터 뒷산에서 사육하게 되면 영장류의 행태 연구와 독성 실험을 함께 할 수 있는, 영장류 연구소로서 완벽한 꼴을 갖추게 된다.

국가영장류센터가 다양한 종류의 영장류를 들여오려는 데는 까닭이 있다. 레서스나 사이노몰거스 같은 마카카 원숭이는 기초 의학과 독성 실험에 적합하며, 아프리카 녹색 원숭이는 백신 연구와 생산에 필수적이고, 개코 원숭이는 바이오 장기 이식 실험에 필요하고, 최근 이용이 급증하는 마모셋 원숭이는 대량 번식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침팬지나 오랑우탄, 고릴라 같은 대형 유인원은 B형 간염, 소아마비, 말라리아 연구에 적합하다.

국가영장류센터는 황우석 교수 덕을 보기도 했지만 황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피해도 많이 보았다. 황우석 교수나 안규리 교수가 국가영장류센터에서 줄기세포 치료와 관련한 영장류 실험을 금세라도 진행할 것처럼 언론에 밝히는 바람에 유명세를 탔지만 나중에 간단한 실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신뢰성에 먹칠만 했다.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나 바이오 장기 이식 같은 것이 금방이라도 이루어질 것처럼 얘기하는 바람에 생명공학이나 영장류 연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줄기세포에 의한 난치병 치료나 장기 이식이 10년이나 20년 안에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믿지 못한다. 어쩌면 1백년이 지나도 이루어지기 힘들지도 모른다. 지금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나가는 게 중요하다.”  국가영장류센터 장규태 소장의 말이다.

지난 1월17일 제2회 영장류연구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영장류연구회장 권명상 교수(강원대 수의학과)의 견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우리의 영장류 독성 실험이나 백신 연구는 세계가 놀랄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다. 물론 바이오 장기 이식이나 줄기세포 연구도 포기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은 될 수 있는 한 기본에 충실할 때이다. 영장류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실험 데이터를 착실히 축적해야 한다”라는 것이 권교수의 생각이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 비해 턱없이 늦게 출발했지만 전반적인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을 등에 업은 한국은 영장류 연구의 앞날은 밝다는 것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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