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으니…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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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극 들러리로 이용당한 KBS 피해자들 소송 제기

 
한남동 주택조합 사기 피해자들 가운데는 언론인이 적잖이 포함되어 있다. 김선용씨는 1993년한남동 단국대 부지에 무리한 조합 주택 건립 사업을 내걸면서 초기부터 유난히 언론사와 국정원(당시 안기부), 국방부 등 이른바 힘있는 기관 종사자들을 조합원으로 끌어들이려 시도해 이를 성사시켰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사업이 1979년에 서울시와 현대건설이 기자단에게 아파트를 무상으로 나눠주어 큰 사회적 파문이 일었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의 재판이 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기자가 이 사건을 입체 추적한 결과 김선용씨가 주도한 한남동 주택조합 사기 피해 조합원 가운데 언론인은 중앙 일간지와 방송사 등에 소속된 기자·PD·아나운서 등 약 51명이었다. 그 가운데 KBS의 기자·아나운서·PD가 17명으로 가장 많다. 조합원 모집 책임은 KBS 박 아무개 아나운서가 맡았다. 박씨는 당시 모집책이 되어 주로 후배 기자와 PD 등에게 조합 가입을 권유했는데 그의 권유로 조합원이 된 이들은 그동안 김선용씨의 사기 행각을 눈치채지 못한 채 적게는 2천만원부터 많게는 1억3천여만원에 이르기까지 조합 분담금을 꼬박꼬박 납부했다.

그러나 정작 언론 분야 모집 총책인 박아나운서는 지금까지 조합 분담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가 낸 돈은 조합 운영비 390만원이 전부. 초기부터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조합이었지만 그나마 조합원 자격조차 가질 수 없었던 박씨가 언론조합원 모집책을 맡아 사실상 특혜를 받은 것이다. 현재 주택조합 비상대책위원을 맡고 있는 박아나운서는 그동안 주요 조합 행사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중요한 조합 관련 서류에 자기 직인을 찍음으로써 책임자 역할을 해왔다.

 자기는 조합 분담금 한 푼 안 내고 후배 기자들에게는 돈을 밀어넣게 한 뒤 지금까지 조합 비상대책위원을 맡은 데 대해 박아나운서는 “나중에 아파트가 완공되면 이자까지 쳐서 내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혜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원래 언론인 조합 대표였던 같은 회사 이 아무개 PD로부터 부탁받고 후배들을 조합원에 끌어들였는데 그가 IMF 외환위기 당시 명예퇴직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언론인 대표를 물려받았다고 밝혔다.

한남동 주택조합측에 특혜성 조합원에 대해 묻자 처음에는 주택조합원 가운데 계약금도 안 낸 특혜성 조합원은 한 명도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기자가 근거를 들이대자 “확인해 보니 KBS 박아나운서 한 사람뿐이다. 당장 비대위 회의를 열어 그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겠다”라고 둘러댔다. 

피해 본 언론인들 신분 드러내기 꺼려

언론인 조합원 모집책으로서 지금까지 박아나운서가 조합에 냈다고 시인한 돈은 운영비 3백90만원. 이런 상황에서 김선용씨와 오원준씨가 주도한 초기 편법 주택조합원 모집 과정에서 일부 모집 대표들은 특별히 자금 지원까지 받았다고 한다. 한남동 주택조합장 오원준씨는 “언론과 국방부 모집책에게 용역비로 2억원가량 지급했다”라고 말했다. 최근 김선용을 구속한 뒤 오원준 조합장을 업무 방해 따위 혐의로 기소한 검찰도 수사 과정에서 이런 내용을 확인했다고 한다.

 당초 한남동 주택조합 사업이 김선용씨의 사기극으로 흐를 것이라는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박아나운서의 권유에 따라 조합원이 된 일부 KBS 기자들은 지난해 들어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했다. 이들은 단국대에 주택조합 사업 관련 질의서를 보낸  뒤 조합에는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영수증과 판결문 등 답변서를 받았다. 자기들이 김선용의 주택조합 사기극에 들러리로 이용당하고 내 집 마련 꿈마저 날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지난해 김선용이 주도한 한남동 주택조합 사기극의 실체적 진실을 맨 먼저 눈치챈 이는 1994년 인천 북구청 세무 비리 특종 보도와 1998년 씨랜드 참사 사건 최초 보도 등으로 사회의 부정 비리를 파헤치는 데 수완을 발휘한 바 있는 KBS 이 아무개 기자였다. 이기자는 “그동안 사회적 비리를 감시하던 기자 입장에서 졸지에 희대의 사기꾼에게 속아 1억3천만원을 날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수치스러워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선의의 조합원 피해자들에게 조합 사기의 진실을 알리고, 적어도 언론인 피해자들은 함께 만나 올바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판단해 피해 조합원을 찾는 신문 광고를 냈다”라고 밝혔다.

세 차례에 걸쳐 신문 광고가 나간 뒤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피해 조합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이들은 김선용이 주택조합 사업에 보호막으로 이용하기 위해 언론인 조합원 숫자를 과장했거나 있더라도 떳떳하게 나타날 수 없는 말 못할 사정을 지닌 조합원들만이 남아 있을 것으로 보고 KBS 피해 기자 7명이 주축이 되어 경찰에 진정서를 냈다. 그러나 이들을 처음 모집해 결과적으로 사기 피해를 불렀던 박아나운서는 이들이 고발하려는 조합장 편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이들이 낸 진정 사건은 서울·경기 등 경찰서 곳곳을 돌면서 낮잠을 잤다.

이렇게 KBS 기자 조합원들이 조합 사기 진실규명에 나서자 한남동 연합 주택조합측에서는 이들 조합원 7명을 제명하겠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KBS 인사 부서에 음해성 투서를 내고, 맞고소하는 작전으로 나왔다. 결국 최근 검찰이 김선용씨와 오원준 조합장을 단국대 이전 사업  비리와 관련해 수사한다는 소식을 들은 피해조합원들은 서울중앙지검 형사 1부에 정식 고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이 김선용씨를 전격 구속하기까지는 이들의 활약도 숨어 있었던 셈이다.

 이기자는 “현재 조합 대표들은 조합의 모든 불법 행위에 대표성이 있을 뿐 아니라 선량한 일반 조합원들을 미몽에 빠뜨려 아직도 한남동 에 아파트를 가질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 시점에서 조합 사기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용씨가 주도한 한남동 주택조합 사기 피해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광고를 낸 뒤 아직도 일반 시민들이 그에게 한남동 주택조합원 자격을 승계하는 조합원 딱지를 샀는데 괜찮겠느냐는 전화를 해온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한남동 주택조합 사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눈치챈 일부 조합원들이 돈을 받고 조합원 자격을 제3자에게 팔아넘기면서 곳곳에서 피해의 악순환 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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