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철학 오프사이드
  • 정윤수 ()
  • 승인 2006.04.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줄 한 줄 더듬어 읽던 <양철북>을 영화로 보았을 때 더러는 실망하고 더러는 충격적이었다. 주인공 가족들이 해변에서 청어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 영화의 한 장면은 나치즘의 불구적 알레고리로서 충격적이었다. 그 전에도 즐길 형편은 아니었지만 그 뒤로 나는 누가 발라 주기 전에는 생선을 잘 먹지 못한다.

바로 그 작가, 귄터 그라스가 한국에 온 적이 있다. 2002년 월드컵 개막식 때이다. 그가 개막식 축시를 읽었다. 축시라고 하면 인류애·평화·열정·우애 같은 언어들이 아무런 연관도 없이 어미와 조사를 따라 무질서하게 출몰하는, 형편없이 긴 시들만 접해왔던 나에게는 그가 4년 전 개막식에서 낭송했던 시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의 아포리즘은 축구의 미학을 집약하였으며 휘슬이 울리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시지프스와 같은 운명을 짚었으며 무엇보다 축구장에 모인 수만 관중에게 숨가쁜 열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짧은 지면이지만 그의 시 역시 아주 짧기 때문에 인용하기로 한다.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 그때 사람들은 관중석이 꽉 차 있는 것을 보았다 /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 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 오프사이드.”

자, 이제부터 축구를 성찰해야 할 순간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