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광고계까지 지배하나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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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모델로 가장 위력적인 스타는 누구일까. 최근 <시사저널>은 브랜드38연구소와 그 주인공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가수 이효리가 근소한 차이로 전지현을 앞섰다.

 
지난 2월 말 증권가에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광동제약 주가가 갑자기 꿈틀거렸던 것이다. 현재 광동제약을 먹여 살리는 효자 상품은 ‘비타500’이다. 이 회사 전체 매출액의 60%가량을 이 상품이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2월은 전통적인 음료 시장 비수기. 주변을 훑어보아도 별다른 호재가 없었던 시기에 이 회사 주가가 오름세를 탄 것이다.

결론은 광고. 이 회사는 2월25일을 기점으로 가수 이효리를 내세운 새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냈다. 주가가 움직인 것은 이날부터였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이름하여 ‘이효리 주가’였다. 


스타가 갖는 브랜드 파워는 광고주들에게 초미의 관심 대상이다. 스타를 잘 활용한 광고 하나만으로도 ‘대박 신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광고학계에 따르면 한국은 스타를 등장시킨 광고에 대한 선호도가 유독 높은 나라로 분류된다.   

물론 스타를 기용했다고 모든 광고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수억 내지 수십억 원을 들여 스타급 모델을 쓰고도 재미를 보지 못한 기업 또한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광고 모델로 가장 위력적인 스타는 누구일까? 이런 스타를 제대로 활용해 광고 효과를 120% 달성한 광고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브랜드38연구소(소장 박문기)’가 최근 그 해답을 내놓았다.

카리스마와 인간미 조화

브랜드38연구소는 2003년부터 반기별 소비자 조사를 통해 스타를 활용한 광고 효과를 측정해 왔다. 조사는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다. 1차는 일반 소비자에게 ‘텔레비전 광고에 가장 적합한 스타’가 누구인지를 묻는 조사이고, 2차는 이들 스타가 출연한 텔레비전 광고의 효과지수(일명 ‘스타 마케팅 지수’)를 측정하는 조사이다. 

이 회사의 2006년 상반기 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효리의 약진이다. 지난 3월2~8일 서울·경기에 거주하는 15세 이상 남녀 1천2백35명을 상대로 한 1차 면접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텔레비전 광고에 가장 적합한 스타’로 이효리(3.97%)를 꼽았다(단수 응답). 이는 영화배우 전지현(3.89%)을 근소하게 앞선 수치이다.

조사가 시작된 2003년 이래 전지현은 여섯 차례 조사에서 네 차례나 1위를 차지하며 ‘CF계의 여왕’임을 뽐내 왔다(나머지 두 번은 탤런트 겸 영화배우 이영애였다). 그러나 2003년 10월 19%, 2004년 11월 9.3%, 2005년 3월 8.7%, 2005년 11월 6.7%로 지목률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조만간 순위가 바뀔 것으로 예측되었다고 연구소측은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 모두 ‘섹시함’을 주요 코드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 응답자들 또한 두 사람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로 ‘섹시한’(이효리 14.7%, 전지현 11.25%)과 ‘매력적인’(이효리 9.0%, 전지현 9.58%)을 꼽았다(표 참조).

그런데도 전지현이 이효리에게 밀린 것은 목표 이미지(PI:Personal Identity) 설정에서 뒤졌기 때문이라고 박문기 소장은 분석했다. 똑같이 섹시함을 내세웠으되, 소비자들은 패션과 노래·율동을 통해 ‘유행을 선도하는 리더’로서의 목표 이미지를 부각시킨 이효리에게서 더 강하게 섹시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애니콜 광고 시리즈를 제작해 온 제일기획 박용진 국장 또한 “트렌드를 선도하는 패션 리더로서의 이미지와 카리스마”를 이효리의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섹시함을 내세운 여자 스타는 널려 있지만 이효리를 대체할 만한 카리스마를 갖춘 여자 스타는 드물다고 그는 평가했다.

무대 위에서의 섹시함과는 대조적으로 각종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드러나는 이효리의 소박한 인간미 또한 대중의 호감도를 상승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이효리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로 ‘섹시한’ ‘매력적인’ 외에 꼽은 것은 ‘열정적인(7.8%)’ ‘털털한(6.12%)’ ‘명랑한(5.7%)’ 순이었다.

카리스마와 인간미가 뒷받침된 이런 이미지 덕에 이효리는 ‘댄스 그룹 출신 반짝 스타’라는 우려를 딛고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브랜드38연구소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3년간 이효리가 상위권에 꾸준히 포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별다른 가수 활동이 없었던 지난해에도 이효리는 ‘애니모션’ 광고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20위권 안쪽을 유지했다.

 새 앨범 타이틀 곡인 <겟차> 때문에 벌어진 최근 표절 시비 또한 광고 모델로서 이효리의 위상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광고업계는 보고 있다. 어차피 일반 대중에게 이효리는 가수라기보다 ‘종합 엔터테이너’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지현의 힘’도 여전히 위력 발휘

이에 반해 전지현은 텔레비전이나 언론 인터뷰에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조사에서 ‘섹시한’ ‘매력적인’ 외에 전지현의 하위 이미지로 꼽힌 것은 ‘예쁜(9.58%)’ ‘여성스러운(5.83%)’ ‘깨끗한(4.58%)’ 등이었다. '털털한’ ‘명랑한’처럼 이효리의 외향적인 이미지와는 대조되는 항목들이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향성을 띤 이런 신비주의 마케팅의 효용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전지현이 최근 출연한 영화들의 잇단 흥행 부진은 그녀의 입지를 더욱 좁혀놓았다.

그렇다 해도 ‘전지현의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지현이 몇 년째 하향세라고는 하지만 현재 이효리와 전지현의 지목률 격차는 0.08% 포인트밖에 안된다. 한 사람이 절대 우위에 있기보다 사실상 두 사람이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남양유업은 차 음료인 ‘17차’ 광고 모델로 전지현을 기용한 뒤 음료 매출이 다섯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전지현 효과’가 건재함을 입증한 셈이다. 

 
올해 초 전속 모델을 전지현에서 이효리로 교체한 지오다노 또한 두 사람을 대체재라기보다 보완재라고 평가했다. 신세대 감성을 흡입할 만한 당대 최고의 스타를 발탁하는 데 발군의 감각을 보여온 이 업체가 간판급 모델을 바꾼 것은 그 자체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이번 조사에서 1~4위를 차지한 이효리 전지현 장동건 이준기는 이 업체의 전·현직 광고 모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광고 모델을 교체한 것은 광고 효과가 떨어져서라기보다 ‘섹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전지현)’에서 ‘섹시하면서도 자유스러운 이미지(이효리)’로 새롭게 소비자에게 다가갈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지오다노측은 밝혔다.

이효리 잘못 활용하면 예외 없이 실패

이효리든 전지현이든 두 사람에게 소비자들의 선호가 몇 년째 집중되는 것은, 그만큼 두 사람의 매력이 강렬해서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광고 모델층이 그만큼 얇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제일기획 박용진 국장은 말했다.

스타는 많아도 ‘빅 모델’은 많지 않다는 광고계의 푸념은 그래서 나온다. 스타 자신이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 좋은 광고 모델의 기본 요건인데, 이를 충족시키는 빅 모델은 드물다.

이 때문에 한두 스타에 광고가 몰리면서 광고주들이 돈은 돈대로 쓰고 광고 효과는 제대로 얻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박문기 소장은 지적했다(딸린 기사 참조). 한 예로 선호도 1위인 이효리를 내세웠다고 모든 광고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박소장은 이효리의 감성적 측면보다 이성적 측면을 강조한 광고의 경우 거의 예외없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침대 과학을 역설한 한 가구 광고, ‘똑부러진 효리’를 내세운 한 인터넷 쇼핑몰 광고 등이 대표적이다.  

‘섹시함’을 과도하게 부풀린 광고도 실패하기 십상이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이효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퇴폐적인(2.45%)’을 꼽았다. 반대로 건강한 섹시미를 강조할 경우 광고 효과는 상승한다. 

광동제약 유대선 차장은 “광고 대행사에서 이효리를 처음 추천했을 때만 해도 이효리의 지나치게 섹시한 이미지가 우리와는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의견이 사내에 강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이효리의 건강미와 생기 넘치는 젊음을 부각하는 쪽으로 승부수를 띄웠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스타가 모든 것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라고 박문기 소장은 말했다. 그보다는 광고주 스스로가 자기 상품의 브랜드 정체성에 맞게 스타를 활용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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