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 보수의 틀 완전히 벗겠다”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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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단 하병옥단장 인터뷰

 
 “민단이 살 길은 변화와 개혁뿐이다”. 60만 재일동포 사회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함께 양대 구심축을 이루고 있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하병옥 신임 단장(70)의 일성이다. 오랫동안 민단 지부장·의장·고문 등을 두루 거친 그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모국 투자 유치와 제주도 실버타운 건립 등에 기여한 공로로 1994년에는 한국언론인협회가 수여하는 자랑스런 한국인상 조국봉사 부문을 수여하기도 했다. 최근 민단 중앙대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뒤 ‘민단 개혁 로드맵’을 들고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내한한 하병옥 단장을 만나보았다.

변화와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단장에 당선되었는데 가장 역점을 둔 개혁 방향은 무엇입니까 .
지금까지 민단은 보수적이고 수구적이며 구태의연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솔직히 관료주의·형식주의·권위주의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타파하자는 개혁 구호를 내걸고 당선되었습니다. 취임 후 대대적인 조직 쇄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민단도 조국의 정부 못지 않게 개혁하고 바꿔나갈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전제로 동포 사회의 화합에 나서겠습니다.

화합을 위해 조총련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재일동포 사회는 하나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조총련과의 화합이 말로는 쉬워도 실제로는 어려웠습니다. 조국이 북한과 대화할 때 될 듯하면서도 잘 안 풀리는 것처럼 민단과 조총련도 비슷했습니다. 나는 그 원인이 민단 내부에 있었다고 봅니다. 민단은 오랫동안 조총련의 이념을 존중해주지 않았습니다. 앉아서 말로만 만나자고 해놓고 찾아오지 않는다고 상대 탓을 했습니다. 나는 단장에 당선된 후 제 발로 조총련 사무실에 찾아가겠다고 선언하고 그쪽에도 알린 뒤 지금 물밑 작업 중입니다.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하기 위해서라면 조건 없이 찾아가 절을 열 번이라도 하려고 합니다.

6·15 남북정상회담 후 일본의 지방에서는 민단과 조총련 지부 조직이 자주 화합 행사를 가졌지만 중앙 단위에서는 아직껏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는데요.
작년 6·15 공동 행사에 민단이 불참한 것은 민단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적극 나서서 선두에 섰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내가 집행부를 맡은 이상 앞으로는 모든 게 달라질 것입니다. 올해는 민단에서 먼저 공동 행사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현재 양쪽이 만나 행사 방법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8·15 광복을 기해 민단과 조총련, 기타 일본 사회의 모든 교포 단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성대한 화합의 모습을 한민족 전체에 보여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려운 시절 민단이 모국에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교포 단체이기도 하지만 군사독재에 협력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 비판이 나올 만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조국도 어려운 시대를 딛고 민주화가 전개되었듯이 민단도 그런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8년 전 조국이 IMF(외환위기) 체제로 고통받을 때 저는 민단 의장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와 재일 동포가 어떻게 도울지 조사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모국투자촉진위원회’를 꾸리고 위원장을 맡아 교포 상공인들로부터 5백억 엔(당시 한화 7천5백억원)을 모아 보냈습니다. 아직 완전한 변화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한국 국민도 ‘일본에는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민단이라는 조직이 있어서 조총련과 화합에 나서고 있다’는 인식을 가져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재일동포의 숙원 사업인 참정권 확보에 적극 대처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던데요.
재일동포는 역사적으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눌러앉았다가 세대가 흐르면서 일본이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사람들입니다. 1세만 해도 모국이 통일되면 가겠다고 임시로 체류한다는 뜻이 강했고, 그래서 민단도 거류민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흘러 영주하는 동포가 대부분입니다. 아직까지 일본 정부에서는 재일동포에게 참정권을 비롯해 여러 가지 권익에서 설움과 푸대접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먼저 지방 참정권 확보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지방 단위에서 정계와 시민단체를 상대로 참정권 확보 운동을 편 결과 그들 가운데 50% 정도는 우리의 요구를 지지하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조총련에서는 재일동포 참정권 확보에 부정적인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설득할 계획입니까.
그동안 조총련계 동포는 북한 공민이라는 자부심을 내걸고 살았기에 명분상 일본 참정권 확보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민단이건 조총련이건 3, 4세대까지 내려가면서 일본에 영주하는 실정이므로 현실적으로 참정권 확보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총련 안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에 사는 우리 후손들이 일본정부로부터 사람 대접 받고 잘 살도록 하는 것도 공동 숙제 아니겠습니까.

재일동포 가운데 40세 미만 신세대가 60% 이상이어서 민단은 이들을 포용하기는 너무 고령화된 조직이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젊은 세대 동포는 매년 1만명 정도가 일본 국적을 얻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현실적인 이유로 귀화는 할지라도 한민족이라는 긍지를 버린 것은 아닙니다. 민단과 조총련은 똑같이 지금까지 귀화 동포를 멸시했습니다. 저는 근대화한 민단, 글로벌화한 민단의 기치를 내걸고 당선한 만큼 민단의 헌법이라 할 규약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서 가입 자격에 귀화자도 넣도록 바꾸겠습니다. 모든 민단 사업도 젊은 층을 상대로 벌여나가기로 했습니다. 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조센징으로 천대받던 시절과 지금은 다릅니다. 일본의 한류 열풍도 우리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민단이 그동안 후세대를 상대로 한글과 민족 교육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본국의 유명 사립대학 분교를 일본에 반드시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유명 사립대학 일본 분교 유치는 재일동포사회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모두 배운 3, 4세는 일본의 교포 기업체에 곧바로 취업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도 많이 지원할 것입니다. 현재 연세대와 고려대를 상대로 접촉을 하고 있는데 민족 교육에는 민간 차원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솔직히 이번에 재일동포 사회에서 나를 단장으로 뽑아준 것도 ‘이 사람의 추진력이라면 가능하겠다’ 싶은 기대가 컸기 때문입니다.

민단과 조총련 외에도 최근 동포 사회에 ‘평화통일연합’이라는 조직이 생겨 양 단체의 화합운동을 펼치던데요.
그분들도 만나보았더니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지원 아래 일본 사회에서 남북 통일운동을 위한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화합은 체제나 이념·종교·성별을 초월하자는 뜻이므로 평화통일연합의 주장도 존중하고 민단의 모든 행사에 초청할 것입니다. 그 구성원들이 대부분 과거 민단 출신이기에 우리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과거 민단에 속해 있다가 내부 민주화를 요구하며 반대해 나간 한민통이라는 조직은 어떻게 보십니까.
그분들이 이탈할 당시 민단에 잘못이 있었습니다. 같은 민단인데 품지 못하고 배척하다가 지금까지 어긋나고 차질이 생긴 것이기에 민단의 업보입니다. 나는 앞으로 그분들과 손잡고 민단을 이끌 것입니다. 그분들이 꾸린 조직체도 그대로 인정한 상태로 민단에 모셔와서 적극 뜻을 펴게끔 하겠습니다.

4월11일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는데 어떤 요청을 하실 생각입니까.
1977년부터 민단에 동포 청소년 교육 지원, 민족 사업 및 금융기관 설립 지원 등의 명목으로 본국 정부에서 매년 일본돈 10억 엔씩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6억 엔으로 줄었습니다. 본국에서도 재일동포 문제를 각별히 애정을 갖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해외 동포들은 자발적 이민이 주류이지만 재일동포는 역사적으로 강제 징용·징집된 사람들이 광복 후 조국에 가고 싶어도 돌아갈 바탕이 안 되었기에 그대로 눌러살게 되었던 것 아닙니까. 민단도 동포들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교포 상공인과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싱크탱크를 만들어 매년 10억 엔 이상을 자력으로 조달할 사업체를 꾸릴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 과정까지는 본국 정부에서도 지원금을 최소한 과거 수준까지는 회복시켜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광복 후 도일하신 것으로 아는데 그동안 일본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오셨나요.
1954년 고향 진주에서 고교를 마친 후 일본에 유학해 외교관이 되겠다는 뜻을 품었습니다. 졸업 후 재일 동포를 상대로 한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가 민단 일을 보게 되었지요. 5남매가 장학금을 받아가며 착실히 자라주어 현재 3명이 의사로 있는데 자녀들을 위해 도쿄에 종합병원을 2개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재 2천억원을 털어 제주도에 실버타운 부지를 마련하고 건립하던 중 민단 단장이 되었는데 임기를 마치면 실버타운 사업을 재개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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