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쪼갠 6억원 누가누가 받았나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6.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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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각 자문사 엘리어트 홀딩스, 50여 계좌로 송금

 
“다른 방법은 없었다. 당시 외환은행 상황은 아주 심각했다.” 2003년 9월,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던 당시를 회고하는 당사자들의 발언이다. 정책적 판단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주위에서도 ‘이미 끝난 일’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국회 재경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문서 검증을 끝내고 감사원에 조사를 맡기는 그 즈음에도 감사원이 새로 밝혀낼 것이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여전했다. 하지만 검찰이 론스타코리아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외환은행 매각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른바 ‘외환은행 매각 3인방’으로 불리는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김석동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 그리고 이강원 당시 외환은행장이 그들이다. 

  현재 ‘론스타’를 헤집고 있는 곳은 무려 세 곳이다. 국세청, 감사원, 검찰. 이유도 다양하다. 탈세 및 외화 밀반출 혐의에, 과연 외환은행 매입 자격이 있었느냐까지. 전문가들은 탈세나 외화 밀반출 등에 대한 조사는 얼마나 꼼꼼하게 달라붙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리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본 안건, 즉 ‘과연 사모펀드에 불과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살 자격이 있었느냐’에 대한 검증이다.

엘리어트 홀딩스 대표는 외환은행 출신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대한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2004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투기자본감시센터(이하 감시센터)가, 법원에 금융감독위원회가 론스타의 주식 초과 취득을 승인한 것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내면서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했다. 그로부터 1년 뒤 감시센터는 아예 관련자 19명을 무더기로 고발하며 강공을 이어갔다. 

  매각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위원 9명과 김진표 재경부 장관 겸 부총리, 변양호 국장, 김석동 국장, 외환은행 경영진과 론스타 관계자를 ‘공무 집행 방해’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감시센터측은 외환은행을 부실 은행으로 만들기 위해 금융 당국이 자료를 조작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피고발인들이 엄청난 규모의 뇌물을 수수하거나 이익 제공을 약속받지 않았는지 의심스럽다는 의견까지 덧붙였다. 현재 감시센터는 이 사안을 ‘론스타 게이트’라고 부르고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핵폭풍이 될 ‘의문의 팩스 다섯 장’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이후 상황이 급반전했다. 외환은행을 부실 위험이 있는 은행으로 간주하게 만든 ‘BIS 비율 6.2%’의 근거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처음 금감위는 외환은행으로부터 자료를 받고, 자체 추계를 통해 외환은행의 BIS(자기자본비율)를 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새 ‘자체 추계’가 외환은행으로부터 받은 팩스 내용을 그대로 원용한 것으로, 이윽고 문서 검증 결과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감사원과 검찰은, 외환은행 실무자까지 줄줄이 출국 금지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팩스 문서의 비밀’을 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감사원은 동시에 외환은행의 BIS 비율 재산정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재산정을 한다고 해서 의미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매각의 근거가 되었던 것은 미래 시점의 추정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정치가 아닌 당시 BIS 비율이 문제라면, 당국이 이미 자료를 갖고 있다. 의문의 팩스가 금감원에 도착한 것은 2003년 7월21일. 금감원은 7월에 시중 은행 일곱 곳을 대상으로 BIS 비율을 점검한 뒤 은행의 자체 보고와 상이한 대목을 적발하고 시정 조처를 취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은 BIS 비율을 8.55%로 보고했지만, 금감원은 8.48%로 바로잡았었다. 

검찰 계좌 추적에 나서

  최근 가장 유의미한 진전은 외환은행 매각 자문사가 받은 수수료의 행방을 둘러싸고 의문점이 포착된 것이다. 검찰은 지난 4월7일 “감사원으로부터 외환은행의 매각 자문사가 받은 수수료 가운데 일부가 잘게 쪼개져 50여 개 계좌로 빠져 나간 것과 관련해 계좌 추적을 요청받아 작업 중이다”라고 공식 확인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ㅇ자문사는, (주)엘리어트 홀딩스라는 소규모 컨설팅 회사이다. 당시 매각 자문에 응했던 곳은 모건 스탠리였다.  모건 스탠리의 신재하 전무는 안팎의 각종 공식·비공식 회의에 참석하며 밀착 조언한 반면(신재하 전무는 당시 재경부 국장이었던 변양호씨와 함께 현재 ‘토종 펀드’론을 주창하는 ‘보고펀드’를 이끌고 있다), 엘리어트 홀딩스의 활동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외환은행 내부 문건을 찾아보면 의혹이 더욱 커진다. 외환은행 자료에 따르면 엘리어트 홀딩스의 대표이사 박순풍은 외환은행에 근무했고, 재직 중 M&A 팀장이었다. 외환은행측은 ‘엘리어트 홀딩스의 인적 자원이 우수하다’면서도 ‘단, 이 회사의 대외적인 실적이 일천한 바, 아래 과제를 수행하게 해 자문사로서의 능력을 검증하는 절차를 거쳤다. 이후 외자 유치에 관한 자문 계약은, 내용 누출 가능성이 있어 구두 합의 아래 정식 재계약 체결 없이 업무를 진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대표 박순풍씨는 외환은행에서 퇴직한 후 벤체게이트기술투자 대표로 재직했으며 2001년 3월 엘리어트 홀딩스를 설립해 지금까지 대표 이사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일단 외환은행 내부 자료에 따르면 엘리어트 홀딩스의 역할은 모건 스탠리와 같다. 자문 계약은 매각 협상 막바지인 2003년 8월에 동시에 체결했으나 모건 스탠리는 3월로, 엘리어트 홀딩스는 5월로 소급 적용했다. 

 
  하지만 5월이라면 이미 모건 스탠리 주도로 론스타와 매각 협상이 긴밀하게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다(2002년 12월13일 론스타와 비밀 유지 협약을 맺었고, 2003년 1월 최초 제안서를 접수했다. 이어 5월7일까지 외환은행 실사가 진행되었다). 5월부터 활동한 엘리어트 홀딩스는  외환은행에서 자문료로 12억원을 받았다. 그리고 자문료 12억 원 가운데 6억원이 잘게 쪼개져 50개 계좌로 입금된 것이다. 

  모건 스탠리가 받은 수수료 50억원에 비하면 적지만, 활동 내역에 비추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그와 같은 자문 계약이 단순히 외환은행 출신인 박대표에 대한 배려인지 아니면 모종의 창구로 활용되었는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이 사안을 지켜보아온 국회 관계자는 “감사원이 이미 혐의를 갖고 들여다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어트 홀딩스가 송금했다는 50개에 이르는 계좌의 주인은 누구일까. 이 궁금증을 풀어내는 일은 검찰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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