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이 강탈해간 유엔을 빼앗아 오자”
  • 뉴욕 유엔본부 정화상 기자 ()
  • 승인 2000.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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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나라 종교 시민단체 지도자 유엔 총회장에서 미국 성토대회

유엔을 바꾸자 지난 8월18일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 회의장에서는 유엔 설립후 최초로 비정부기구가 주최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새 천년 벽두에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은 오늘날 강대국과 시장에 강탈당했다라고 개탄한 후 열리게 된 이번 행사는 국제 비정부기구들이 유엔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직접 뛰어들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유엔의 새로운 도약을 주제로 내걸고 이번 회의를 주최한 곳은 세계 초종교 초국가 연합(IIFWP 회장 곽정환)이었다. 마카림 위비소노 유엔경제사회이사회 의장이 대회를 진행하고 세계 100여 나라 3백여 종교 시민 대표자들과 1백4개국 유엔 주제 대사들이 참여한 이 회의에서는 유엔이 처한 위기와 그 것을 극복할 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일 벌어졌다.

때마침 9월 세계 1백50여 나라 정상이 유엔본부에 모일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보낼 권고안을 토의하고 채택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발제자로 참석한 세계 각국의 전 현직 지도자들은 오늘날 유엔이 위기에 처한 원인과 그 극복 방안에 대해 다양한 대안을 쏟아냈다.

유엔이 제구실을 못한다고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은 오스카 아리아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1987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었다. 그는 전세계 절대 빈곤 인구가 5년 전 1억명에서 올해는 1억2천만명으로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또 지구촌 정보화 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계에는 10억명이 문맹 생활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무지 기아 질병 등 심각한 문제가 개도국에 창궐하고 있는데도 유엔을 지배하는 강대국은 이 문제를 외면하고 오로지 자국의 군사 방어  체제 증강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세계의 모든 사람을 문맹에서 구출하기 위해 유엔개발계획(UPND)이 산출한 경비는 6백억 달러인데 유엔은 이 돈을 모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이 돈은 미국이 5년 동안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를 구축하는 데 쓰는 바용과 같은 액수이다. 미사일과 책 중에 어느 것이 더 번영되고 평화로운 21세기 지구촌을 약속하겠는가 라고 절규했다. 인류를 빈곤에서 구출하는 길은 땅도 자본도 아니라 바로 교육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국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리아스는 제 3의 길을 제안했다. 현재 세계의 양대 경제 체제인 자유시장 경제 체제와 통제경제 체제가 모두 전지구적인 빈곤을 제거할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제 3의 길에 대해 특별히 가난한 나라라도 자본과 신용을 제공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즉 가난한 나라의 교육받은 계층들에 기회를 열어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자기를 포함해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 18명이 모여 이 문제를 공감하고 협력해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18명 제 3의 길 제안
아프리카 의회 의장을 지낸 카운다 전 잠비아 대통령은 새로운 세기에는 아프리카가 처해 있는 심각한 문제를 유엔이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아프리카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로 사회 혼란 빈곤 범죄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을 꼽았다. 이 대륙에는 자원이 많이 있는데도 빈곤이 계속된다는 점을 들어 그동안 유엔 기구가 아프리카에서 펴온 정책이 실효성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아프리카를 정의로운 세계에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선진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유엔을 통해 행동함으로써 유엔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총리를 지낸 히스는 유엔 창설 때부터 지금까지 자기가 겪은 경험을 중심으로 유엔의 위기를 진단했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와 만나 협상 하면서 유엔 창설에 개입한 그는 유엔이 당초 목표와는 달리 세계의 항구적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 어렵게 출발했다고 회고했다. 유엔의 약점이 극적으로 드러난계기를 한국전쟁으로 꼽은 그는 이후 사태 전개에 대해 유엔은 무기력해졌고 미국과 소련의 영향 아래있는 국가에서만 평화가 보장되었다라고 말했다. 양대 강대국이 유엔을 자국의 지배력 확산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소련이 붕괴한 후에도 유엔이 제구실을 못하고 세계에 평화가 찾아 오지 않는 이유를 한마디로 미국의 착각에서 찾았다. 미국은 아직도 자기가 세계 유일 강대국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유엔을 자기의 지배 아래 두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보스니아 내전을 꼽았다. 미국은 자국만의 이익을 위해 자기네 판단에 따라 이 지역에 파병하면서 유엔을 끌어들이려 했다는 것이다. 전쟁후 미국은 뒷정리도 하지 않은 채 이 지역에서 빠져 나와 지금 그 일을 유엔이 떠맡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 결과 유엔의 영향력은 점점 줄고 대신 전 세계에 확산되는 비정부기구(NGO)들이 유엔의 역할을 대신하는 시대르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이 21세기 세계평화의 중심축에 서기 위해 미국은 세계가 5대 강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지칭한 5대 강국은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일본 중국이다. 그는 미국이 유럽에서 저지른 최대 실책으로 소련 붕괴 이후 나토를 동유럽 각국까지 확대한 점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은 나토를 확대한 명분으로 러시아 돕기를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러시아를 자기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뜨리고 말았다는 진단이다.

일본에 대해 국제 사회에서 경제 강국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그는 이어서 중국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태도가 21세기 세계평화에 위협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12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 유엔에서 해야 할 역할을 도외시한 채 미국은 중국에게 서방과 같은 민주주의를 실시 하도록 요구하는 데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기원전 2세기부터 서방과 비교하기 어려운 역사적 전통을 유지해 왔고 유권자가 12억이나 되는 중국이 서방과 똑같은 선거제도를 채택할 수 있겠느냐며 미국의 중국 정책은 무리라고 꼬집었다. 또 서방이 중국에 민폐(위안화) 평가 절하를 요구하는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외화를 1천4백50억 달러 보유한 중국이 자국민의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는 위안화 평가 절하를 단행할 리 만무하며 이런 입장을 고수하는 중국이 옳고 정당하다고 두둔했다. 결국 미국은 중국과 진정한 협력 관계를 맺어 중국이 유엔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중국 몰아붙이기 세계 평화 위협
미국이 국가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유엔을 잘못 이끌고 있다는 비판이 줄을 잇자 로버트 돌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나섰다. 그는 첫마디에 이런 분위기 때문에 미국 의회는 유엔에 돈을 너무 낭비한다며 지원 예산을 줄이기로 했다라고 농담을 던진 후 정색하고 곧장 힘 있는 유엔을 강조했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내전 등에 미국이 어정쩡하게 대응하다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면서 처음부터 적극적인 개입 정책을 폈어야 발칸 반도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이를 위해 유엔이 정치 군사적으로 강하게 일어서야 21세기 자유와 평화의 기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 그는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테러리즘 종식에 유엔 회원국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은 지구촌에 안정과 평화를 이룩할 책임이 있으므로 해당국의 요청이 없어도 유엔의 필요에 의해 개입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지전에서 미국과 유엔이 범한 가장 큰 실수를 개입 기회를 놓친 것 이라고 꼽았다. 가령 유고 내전과 보스니아 내전 때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해도 외면하다가 발칸반도 사태가 악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내 여론조사에서 파병에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자 개입을 주저했다고 비판했다. 지도자는 여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밀고나갈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은근히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 힘 있는 미국과 유엔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를 겸임하고 있는 율리 보론트소프 유엔사무부총장은 러시아 우주인의 말을 빌려 지구촌의 평화를 강조했다. 우주 공간에서 돌아온 우주인들은 지구가 매우 아름다운 푸른색의 한 동네로 보이는데 내려오면 세계 각국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미 소 핵무기 감축 협상에 참여한 경험을 들어 이데올로기가 평화의 걸림돌이다. 어떤 분쟁에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면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조차 외면하고 무엇이 문제인지조차도 잊어버린 채 무조건 당신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식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국가 이익 또는 긴급 안보 이익이라는 표현도 대부분 이데올로기 대립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종교적 극단주의도 국제 분쟁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라고 지적하며 불행히도 대부분의 지구촌 분쟁 지역에는 이데올로기 신봉자와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지도적 위치에 있다고 개탄했다. 따라서 21세기에는 국제 분쟁 해소를 위해 세계 각국의 종교 지도자들이 초종교적인 입장에서 적극 나서고 유엔도 그들의 활동 영역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자기가 현재 유엔 안보리로부터 위임받은 임무 한 가지를 들어 종교인들의 협조를 호소했다. 걸프전 초기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공격 때 행방불명된 후 아직까지 생사 확인이 안된 쿠웨이트 병사가 6백5명이라는 것이다. 율리 사무부총장은 유엔 안보리가 그에게 그들의 생사를 확인 하라는 임무를 맡겼다고 말했다. 나는 이라크의 이슬람 지도자들에게 협조를 얻으면 인도적 해결이 가능하리라 믿었는데 어려웠다. 다른 문제는 다 협조가 되어도 이 문제만은 곤란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이라크 쪽에서도 1천1백명이 행방불명 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로 그 문제는 내 임무 밖이지만 둘 다 해결되도록 10년 넘게 뛰어왔어도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활동을 통해 종교가 국제 분쟁 해소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는 그는 21세기에는 모든 종교가 서로 협조해 분쟁 해결에 적극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마지막에 주제 발표자로 행사를 주관한 세계초종교국가연합 창시자 문선명 목사가 나섰다. 그는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진전될 기대가 한층 높아졌다고 강조한 후 이 문제에 유엔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10여년 전부터 평양을 오가며 북한 지도자들과 회담해온 경험을 들어 한반도 문제 해결이 세계평화 해결의 중심축이라고 강조했다. 유엔 태동기에 강대국 들이 한반도에 38도선을 확정했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통합 유엔이 무산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점을 들어 참된 의미의 냉전 종식과 세계 평화의 출발점은 한반도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한반도 평화 지대 구축에 유엔이 나서도록하기 위해 즉석에서 휴전선 근처에 자기가 보유한 땅과 브라질에 조성해둔 땅 36억평을 유엔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땅으로 유엔이 기금을 조성해 155마일 휴전선을 유엔 감시 아래 평화지구로 만드는 사업에 써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는 남북한 정부에도 이같은 제안을 이미 전달했다고 밝혔다. 문목사는 이어서 21세기 세계평화를 정치 지도자들의 손에만 맡겨 둘 수 없다며 유엔 대사에 각국의 초종교 초국적 대사 제도를 두자고 제안했다. 각국 정부 대사들은 유엔에서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려고만 하므로  전지국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종교인들과 비정부기구 (NGO)대표들이 유엔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날 회의장에서는 유엔 주재 이영철 북한 대사가 참석해 문목사의 제안을 유심히 경청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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