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언론의 ‘시들지 않는 꽃’
  • 김재원 (美클리블랜드 주립대․언론학) ()
  • 승인 1991.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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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편지 등 임수경 관련보도 거의 매일 실어…CNN 텔레비전에도 공급

 盧泰愚 대통령이 소련방문을 마치고 귀국도상에 있을 때였다. 90년 12월16일 일요일 오후, CNN 텔레비전의 ‘국제보도’ 프로에서 코리아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한․소교류 이야기가 드디어 한번 취급되는가 여겼더니 화면에 나타나는 뉴스는 난데없이 북한방송이 공급한 서울의 임수경양 이야기였다.

 서울에서 막 끝난 남북총리회담 북측 수행기자들은 임양의 집을 ‘기습취재’해 특종을 거두고서는 그 여세를 몰아 이를 미국텔레비전에 들이밀어 다시 한번 특종효과를 보았다. 북측 기자들이 평양으로 돌아간 지불과 14일이 지난 때였으므로, 이는 북한에서 즐겨 쓰는 말로 ‘주체언론’이 ‘속도전’의 ‘일본새’를 보인 것이다.

 ‘국제보도’ 프로그램의 앵커 랠프 웬지가 이번 회담 역시 상호불신으로 성과가 없었다는 말을 한 뒤, 북한방송의 김호숙 기자는 약 2분간 영어로 이야기를 이었다. 화면에는 임양 부모가 기븐 표정으로 북측 기자들을 맞는 장면이 나왔고, 화장대 위에는 임양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북측 기자들은 취재노트에 무언가 부지런히 적고 있었다.

 임양 어머니는 딸의 어린 시절 사진을 흔들어보이면서 “수경이가 착한 아이였다”고 강조했다. 임양 아버지는 북측 기자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 그 술은 보통 술이 아니고 ‘통일주’라는 설명이었다. 뉴스는 북측 기자들이 어느 대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을 만나는 것으로 끝났다.

항소이유서는 ‘고전적 명작’
 이번 뉴스로 부각된 임수경양 사건은 실정법 위반의 차원을 넘어 갖가지 복합적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거기에는 정부의 ‘대화창구단일화’ 정책도 걸려 있고, 국내 대학생들의 정치활동도 관계가 있다. 또한 북한의 ‘통일문제는 전민족적 사업’이라는 정략도 연계돼 있다. 그러기에 정치적 케이스로 보이기도 하고, 그럴수록 양측의 홍보와 선정네 연결되기 마련이다.

 통일에 관련된 홍보와 선전의 차원에서 본다면 임수경양의 감옥살이는 북한의 정략을 돕는 것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북한이 임양을 어느 정도로 영웅시하는가는 북한의 언론에 역력하게 나타난다. 거의 매일 임양의 기사가 실리고 있다. 임양의 ‘항소리유서’는 ‘고전적 명작’ 취급을 받아 북한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실었다. 옥중에서 학우들에게 보낸 편지, 친구들이 쓴 편지도 계속 게재되고 있다. <로동신문>은 해외의 각종 단체․기관이 ‘임양석방운동’을 지지한다며 세계적 캠페인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기에 북한 당국은 ‘인민학교’에 다니는 어린이한테까지도 임수경을 ‘통일의 사절’임은 물론 ‘민족의 장한 딸’이며 ‘겨레의 가슴 속에서 향기를 뿌리는 통일의 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만나기만 하면 “수경이 누나를 언제 석방하나요”라고 묻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남측 기자들이 무어라고 설명했는지 궁금하다.

 북한은 “방북인사 석방문제는 남조선 내부에 국한되는 문제만이 아니라 민족의 지상과제인 나라의 통일문제와 직결돼 있는 매우 중대한 문제”(<통일신보> 11월3일자)로 보고 있다. “평양에 와 우리와 대화를 한 사람들을 계속 감옥에 가두어놓고 우리와 대화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것은 남조선 당국자들 자신으로서도 쑥스럽고 어색한 일”(<로동신문> 10월12일자)이라고 비꼬고 있다.

 9월7일자 <한겨레신문>에 이미 실린 임양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북측 기자들은 임양의 천진난만하고 자유분방한 태도를 부각시키면서 “수경이가 북반부에서 보낸 40여일 동안 우리 체제를 찬양하거나 남측의 체제를 헐뜯은 적이라고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라고 옹호하고 있다. 10월21일자<로동신문>은 더 나아가 “나이 어린 처녀가 하면 무엇을 하고, 통일운동을 하면 얼마나 크게 하겠는가.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 어린 것을 감옥에 계속 가두어두는가”라고 인정에 호소하는 글까지 싣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이 모스크바대학에서 임양에 관한 질문을 받고 “정부의 허가없는 외국여행”식의 답변을 한 것은 한국이 마치 여행의 자유도 없는 나라처럼 들리기만 했다. 더욱이 요즘처럼 남북왕래가 잦은 시기에 북한방문이 “실정법 위반”이라고 답변한 것 역시 설득력이 없다.

 북한 당국은 ‘조국해방 45돌’을 맞아 임양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했으며, 김일성종합대학은 10월12일 열린 제43회 졸업식에서 명예학생으로 등록된 임수경양에게 졸업증을 수여했다. 박관오 총장이 수여하고 외국 졸업증은 명예졸업증이 아닌 정규졸업증이므로 임양은 김일성종합대학의 정식 졸업생이 된 셈이다.

 <조선중앙통신>은 10월13일 이 기사를 보도하면서 “림수경학우가 옥중에서 쓴 항소리유서는 통일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굽히지 않고 꽃다운 청춘을 바쳐가며 굴함없이 싸우고 있는 그의 통일신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서 “항소리유서가 그의 졸업론문으로 대학국가시험위원회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썼다. 이 기사는 김일성종합대학의 금년도 졸업생이 몇 명이나 되는지도 밝힐 겨를이 엇이 처음부터 임수경양 이야기로 시작하여 끝을 맺었다.

 학사행정을 해본 사람이라면 김일성종합대학이 임양의 졸업사정을 처리한 과정에 묘미를 느낄 것이다. 대학에서는 학점 하나, 학위 하나가 어설프게 나가는 법이 없는데, 임양의 항소이유서를 졸업논문으로 삼고 이를 대학국가시험위원회가 심사했다고 하니 그것이 과연 적법한 행정행위인가. 이런 것을 볼 대 북한의 술수가 한 수 높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습취재’운운은 자가당착
 서울에서 벌어진 북측 기자들의 취재행위를 두고 서울의 주요 언론기관들이 드러낸 태도 역시 모순이다. 언론자유가 있다는 나라에서 ‘기습취재’ ‘무단취재’라는 말 자체가 자가당착이다. “취재보다는 정치행위를 했다”는 불평 역시 북한 언론은 ‘사상적 무기’라는 정의를 무시한 일방적인 생각이다 ‘초청자측의 안내와 질서에 따른다’는 합의사항을 위반했다는 것도 그렇다. 북측 기자들이 남측 누구의 안내를 받았다고 밝혔고, 파출소장의 도움까지 받았다고 하니 그 이상 무슨 질서를 지키란 말인가.

 일이 그렇게 됐으면 북측 대표단에 경고와 항의를 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바라던 곳에 가서 취재를 완수한 것’에 축하를 보내고, 다음에 남측 기자들이 평양에 가면 그와 같은 취재를 할 것이라고 예고를 던져주었더라면 훨씬 여유가 있어 보이고 멋이 있었을 것이다.

 남북간 회의나 교류가 있을 때마다 수행하는 것이 언론기관이다. 그 많은 취재진이 북한을 방문하고서도 그곳을 방문했기에 가능한 심층보도를 어느 정도  했는지 되새겨야 한다. 북한의 기자들이나 안내원들과 시비조의 말싸움을 하는데 그친 보도가 너무 많지 않았을까. 아니면 1988년 9월부터 시행한다고 돼 있는 “북한 및 공산권 국가에 관한 보도요강”만 탓할 일일까.

 북한측으로 볼 때 이번 취재는 9월 이래 1차총리회담 때부터 벼르던 일이다. “결심한 일은 끝까지 해낸다”는 그들의 ‘혁명적 구호’를 ‘다그쳐’ 완수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임수경양의 부모가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므로 그 부모를 만나는 것이 남한측의 법으로 봐도 위법이 아니라는 이론까지 가지고 있다.

 회담 기간 내내 남측 언론이 문제가 있을 때마다 “경쟁언론의 속성을 모르는 탓”이라고 말한 것이 서울의 언론기관이었다. 다음 평양방문 때에는 그러한 경쟁언론의 진가를 발휘해 생기있는 현장취재를 할 차례이다.

 ‘기습취재’라면 사실은 <중앙일보> 시카고지사 이찬삼 국장이 전례를 남겼다. 이기자는 지난 8월 한달 동안 북한 전역을 누비면서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남의 집에 불쑥불쑥 들어가 북한 인민의 일상적인 생활상을 보려고 했다. 어느 젊은 여성에게 “통일된 조국의 첫 대통령은 누가 돼야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인즉, “지야, 그걸 질문이라고 하십네까. 우리 수령님은 어릴 적부터 조국을 위해 일하셨는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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