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폭풍 만난 한국경제
  • 조윤증 기자 ()
  • 승인 1991.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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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부진·물가불안 등 페만사태 영향 심각… 중동악재 제거되면 경제 전반에 활력

 섭씨 30~40도의 뜨거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의 사막 기지에서 지난주 미 해병장병들은 위문편지 등 개인 소지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출동준비에 대비한 것이다.

 사우디와 쿠웨이트의 국경에서 그리 멀지않은 주베일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현대건설의 근로자 1백60여명도 전정에 대비해 사우디 남쪽으로 피신할 준비를 서둘렀다. 이라크에 있는 한국 근로자들은 출국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공사발주 당국과 마지막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바그다드 시민들도 지진이 임박했음을 알아차린 동물들처럼 생필품 사재기에 바빴다. 청와대의 긴급 경제각료회의와 미 의회의 ‘선전포고’가 주말 톱뉴스를 장식했다. 페르시아만 사태의 불똥은 전세계로 튀어가고 있다.

 미국과 이라크 양국 외상회담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국제 주요 주식시장을 강타하면서 우리나라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국제원유 시세는 하루 등락폭으로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치솟았고, 서울 시내 주유소에서는 벌써부터 난방용 등유 사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동안 전쟁준비와 관련한 소식이 숨가쁘게 전해지는 가운데 주요 전쟁 당사국들은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시 미국대통령과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 어느 한쪽도 상대방을 충분히 위압하거나 설득하지 못했다.

 현재 많은 이들의 관심은 전쟁 발발 여부와 함께 이에 따른 국제유가 움직임 등 우리에게 끼칠 여파가 과연 얼마나 클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철군시한인 1월15일(한국은 16일)에 바로 전쟁이 터질 것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과 후세인 회담 역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따라서 유럽공동체와 유엔을 중심으로 펼쳐질 마지막 외교적 노력에 거는 실낱같은 기대가 수포로 돌아갈 경우 세계 석유의 보급창에 설치된 시한폭탄의 초침은 더욱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이미 부시는 의회의 무력 사용 승인을 얻어냄으로써 전쟁 수행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긴급 소집된 이라크 의회도 이에 질세라 “쿠웨이트에 대한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후세인의 입장을 만장일치로 지지했다. 이에 따라 세계의 이목은 지난 5개월간 교묘한 외교 전략을 펴왔던 후세인이 언제 그의 마지막 카드를 던질지에 집중되고 있다.

 이제까지의 사태 발전을 살펴보면, 강경일변도였던 미국 입장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연계시키는 케야르의 평화안을 묵인한 데에서 드러났듯이 다소 누그러졌다. ‘운명의 날’을 48시간 남겨둔 14일까지만 해도 후세인이 돌연 전략 요충지인 부비안섬과 와르바섬을 제외한 점령지역에서 부분 철수를 함으로써 서방의 예봉을 피할 가능성이 점쳐졌다.

“중동경기 당분간 끝났다”
 만약 후세인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한다면 국제유가(석유수출국기구 평균유가)는 단숨에 배럴당 15달러까지 하락한 뒤, 점차 21달러 내외에서 안정될 것으로 주요 예측기관은 전망하고 있다. 쌍용경제연구소의 국흥주 이사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경우만 보더라도 페만 사태는 주가지수를 약 1백포인트 이상 억누르고 있었다”라고 말하면서 최대의 악재로 떠오른 ‘중동요인’이 제거될 경우 동시화의 현상을 보이고 있는 주요 국제 주식시장의 주가는 단숨에 평균 30% 이상 폭등하는 등 경제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수출전선에 몰려든 먹구름은 쉽사리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동지역 섬유 수출의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동국무역 朴哉漢 차장은 “지난 8월 이후 반감하기 시작한 중동 경기는 지금은 약 25%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고 밝혔다. 그는 유가 인상과 생산비 상승에 따른 채산성 악화에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이라크 침공 당시 쿠웨이트 지사장으로 근무했던 박차장은 “이라크군이 철수하더라도 정치적 안정이 확보되지 않는 한 중동 장사는 한동안 주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의 페만 사태 발생 이후 국제 석유 수급은 사우디를 필두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의 증산 등에 힘입어 큰 차질이 없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석유 수출이 중단된 상태였지만 세계적으로 볼때 근본적으로 공급과잉 상태였다”라고 유공의 한 관계자는 분석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수입원유의 기준가인 두바이산 원유의 현물시장가격을 보면 최고수준을 보였던 지난해 10월의 배럴당 평균 31.52달러에서 12월에는 23.21달러로 떨어져 안정세를 찾고 있었다. 이는 페만 사태가 시작된 지난 8월의 25달러보다도 싼 가격이다.

 국제에너지연구소(IEA)의 최근 자료는 지난해 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의 하루 생산량은 평균 2천3백만배럴로 지난 10년 동안 최고치를 기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에너지연구소의 평가는 한마디로 페만 사태 이후 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이 이에 적적하게 대응, 모든 우려를 씻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록 和戰의 갈림길에서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이 자기 영토의 방어능력이 없는 페르시아 연안 국가들은 보호하기 위한 대대적인 파병이 없었던들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전쟁은 때때로 사태해결을 위한 뚜렷한 대안이 없을 때 발생한다. 따라서 극적인 돌팔구가 마련되지 못한 현지점에서 우리의 관심은 1월15일 자정 이후 초읽기에 들어갈 전쟁 개시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벌어질 것인가에 모아진다. 1,2차 석유위기 때의 유가폭등과 지금의 고유가는 여러 면에서 성격이 다르다. 과거의 석유위기는 공급 부족을 바탕으로 중동 산유국들이 가격상승을 주도한 데 비해 최근의 고유가는 소비국의 금수에 의해 초래되었고 심리 불안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2차 오일쇼크 때와는 사정 달라
 2차 오일쇼크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상황은 여러면에서 개선된 편이다. 페만 사태로 인해 경제 각 분야가 상당히 충격을 받기는 하겠지만 그동안 이루어진 원유 도입선 다변화, 해외유전개발, 유가완충자금 확보 등으로 당시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유 수입국측의 입장에서 볼 때 5개월 전과 현재 상황의 차이는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국한되었던 원유도입 차질이 이제는 페만 일대의 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 전체로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석유 전문가들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사우디의 유전파괴와 페르시아만 안쪽에 몰려 있는 정유 시설의 파손, 그리고 원유 보급로 차단에 따른 석유 위기를 먼저 꼽는다. 그러나 유전 자체의 대규모 파괴를 예건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전쟁 전의 각종 시나리오는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그 예측력의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국내외 전문가들이 내세운 가상 시나리오로 보면, 제한적인 군사충돌이 벌어져 유전의 피해 없이 후세인이 축출될 경우 전쟁 발발 직후 40달러 수준의 일시적인 폭등이 일어난 이후에 낮은 가격에서 안정을 되찾는다는 것이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田圭正 박사는 “확률로만 보면 현재 전쟁 가능성이 더 높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이 마련한 전쟁 발발 후의 시나리오는 제한적 군사충돌과 대규모 군사충돌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는 몇주 동안의 단기전 결과 다국적군이 승리하고 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군이 축출되어 유전피해가 없다면 개전 즉시 40달러까지 치솟은 유가는 20달러까지 떨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상은 대규모 충돌로 수개월 동안 전쟁이 계속되며 일부 중동 유전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40달러 이상 치솟은 유가는 유전 피해 복구에 필요한 기간인 6개월 동안 35달러 수준에서 유가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부. 에너지 소비 강력히 억제
 지난해 에너지경제연구원은 40달러 이상 치솟은 국제 유가가 수그러들지 않으면, 국내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도매물가는 20% 가까이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각국의 석유비축은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유가가 배럴당 52달러 수준을 1년간 유지하지 않는 한 2차 오일쇼크처럼 큰 피해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에너지 전문가들은 생각한다.

 정부의 시나리오는 ‘전쟁 1개월, 피해복구 5개월’을 가정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전쟁기간중에는 사우디·카타르 등지로부터의 원유수입 중단으로 전체의 57%인 하루 54만7천배럴의 도임 차질이 빚어지고 그 후 복구기간 중에는 28.3%인 27만4천배럴의 도입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각각 내다보았다.

 동력자원부는 현재 국내외 원유와 석유제품 등 석유비축량은 수송중인 것을 포함해 1억7백20만배럴로 올해 1일 평균 소비량 1백14만6천배럴을 기준으로 93일분에 해당한다는 계산이다. 페만 지역 이외에서의 원유도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1백80일을 버틸 수 있어 국내 석유수급에는 큰 차질이 없다고 말한다. 정부는 이와 함께 페만에서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 석유류 가격의 전면인상과 함께 유류배급제·제한송전 등 강력한 에너지 소비억제 정책을 시행할 방침이다.

 서울 신림3동 난곡주유소의 徐承孝씨는 “양국 외무장관 회담 결렬 이후 유모차나 지게까지 앞세우고 등유를 사려는 인파가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며 일반 가정의 난방용 등유사재기 열기를 전했다. 인천에서 올라오는 기름 수송 차량이 교통체증때문에 배달을 제때 못해 등유 공급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하루 평균 약 90드럼씩 팔리던 등유가 요즈음은 하루 1백드럼도 없어서 못판다. 그는 정부가 발표한 배급제가 효과적으로 시행되려면 철저한 사전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자부의 李東圭 석유국장은 “1개월 이상으로 장기화되면 전쟁이라는 경제외적 요인이 시장을 지배함으로써 불확실성과 투기가 극심해진다. 이때는 이미 현물시장에서도 기름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세계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 한국경제는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세계경제 숨통 죌 중동사태
 정부의 석유위기 대책은 단기적인 효과를 거둘테지만 수출부진과 물가불안 등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에 끼칠 영향은 훨씬 심각하다. 상공부는 전쟁이 10일 이내의 단기전으로 끝나더라도 전체 수출은 28억달러가 줄고 수입도 28억달러가 늘어 무역수지 적자는 추가로 56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보았다. 정부는 국내 원유도입 단가를 25달러로 가정하고 올해 경제 운용계획을 세웠지만 아직까지 그 계획에 대한 전반적인 수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페만 시태가 악화될 경우 무역에 미치는 타격은 물론 국내 물가상승 압력으로 올해 경제운용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페만 사태가 단기전으로 끝난다면 그 파장은 우려하는 만큼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두차례 오일쇼크 이후 석유수출국기구에 대한 세계경제의 의존도는 한때 떨어지다가 89년 이후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2000년도에 가면 세계의 중동 석유 의존도가 55% 수준으로 다시 높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여타지역의 원유 생산은 실질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천혜의 유전지대인 중동 산유국의 생산량은 더욱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 발발과 관련한 모든 시나리오가 단순한 가상으로 끝나더라도 중동지역의 비상사태는 언제든지 세계와 한국경제의 숨통을 죌 수 있으므로 그 시나리오의 효력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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