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국방장관 누구 말을 믿을까
  • 김승웅 편집국장대리 ()
  • 승인 1991.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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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파병에 대한 견해에 ‘묘한’ 차이
 정부는 결국 ‘파병’의 길을 택했다. 軍의료지원단의 선발대원 26명이 14일 낮 대한항공 점보전세기편으로 페르시아만의 연안 사우디령 알누아이리 小邑을 향해 떠난 것이다.
 상황은 이제 페르시아만 파병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질 체계를 넘어버렸다. 이날의 파병을 단순한 ‘의료지원’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실제의 ‘전투병력 파병’의 시작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로 확대돼 있는 상황이다.

 파병은 일단 기정사실이 돼버렸고, 한국은 알게 모르게 이미 페르시아만의 드센 파고에 몸이 실린 상태가 된 것이다.

 이날 김포공항을 떠난 26명의 의료선발대가 당초 예정일인 15일을 하루 앞당겨 부랴부랴 출병을 서두른 것 하나만으로 미뤄봐도 페만의 격랑과 파고를 가늠할 수 있다.
 15일은 페만에 포진한 미국선도의 다국적 화기가 이라크를 향해 불을 토할 수 있도록 유엔 안보리가 의결·승인한, 한마디로 ‘공격을 허용한’ 일자다.

 또 한국의료진의 파병이 국회의 허가를 얻었느냐 아니냐는 동의시비도 따지고보면 한국의 국내문제에 불과할 뿐, 국제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하등의 요인이 못되고 있는 시점이다. 미국 또는 다국적군의 입장에서 따질때는 반격개시 일자인 15일 현재 한국군이 특정지점 특정위치에 제대로 포진했느냐 아니냐만이 관심사항일 뿐이다. 이 날자를 어길 경우 한국은 파병은 파병대로 해놓고도 쥐꼬리만한 생색도 내지 못할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의료선발요원의 명칭을 놓고 굳이 사전답사를 위한 ‘현지조사단’이라든가, ‘軍’자를 뺀 ‘의료지원단’임을 고집하는 정부측의 억지는 이미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번 현지조사단의 조사보고를 토대로 본대 1백54명의 의료진이 국회의 동의를 얻는 즉시 2월1일을 기해 출병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국내여론을 감안한 한갓 ‘내치용’ 수순에 불과할 뿐, 페르시아만 파병은 이미 14일자로 일단 단행된 것으로 봐야 한다.

 앞으로가 문제다. 되풀이되는 얘기지만 지금 상황에 와서 파병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건 정말 의미가 없다. 안보나 통상으로나 또는 과거의 정분으로 보아 우리에겐 현재 파병을 선도해온 미국의 요구나 입김을 물리칠만한 힘이 없다. 그건 마치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물을 역류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로, 특히 미측의 통상개방압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고 우리의 對蘇경제지원을 놓고 미국 조야에서 “누구한테서 벌어, 누구한테 뿌리느냐!”는 원색적인 불만이 터져나오는 지금의 시점에서 그 물길을 역류시킨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있다면 밑으로 흐르는 물길을 순리로 이끌어 자칫 불필요한 범람이나 침수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물꼬를 터주는 일 뿐이다.

 범람이 우려되는 첫 물목이 집권정부의 정직성 여부다. 盧泰愚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의료진 아닌 전투병력의 페만파병은 절대 없을 것이라 장담했다. 이 회견이 있고 나서 채 사흘이 못돼 李鍾九 국방장관의 묘한 발언이 터져나왔다.

 “전투병력을 파견하지 않는 것이 국가에 손실이라고 판단되면 이를 검토할 수 있다”는 어렵고도 묘한 발언이다. 이를 찬찬히 풀어 해석하면 “전투병력 파견이 국가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면 이를 검토하겠다”, 다시 말해 실전병력의 파병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같은 내용을 놓고 대통령과 장관의 발언이 다를 경우 국민은 누구의 발언을 믿어야 하는가.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왜 의견을 달리하는가, 또 가뜩이나 6공정부의 도덕성과 정직성이 문제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는 왜 자초해서 도덕성과 정직성을 시험받을 채비를 서두르는가 하는 점이다. 귀추가 너무도 뻔한 문제를 놓고 불필요한 ‘발언의 덫’을 놓아, 정부 스스로가 이 덫에 걸리고 채이는 愚를 왜 범하고 있는냐는 점이다.

  월남파병의 경험을 악몽으로 간직하는 국민여론, 그리고 이번 파병과정에서 드러난 노대통령·이국방간의 엇갈린 시각과 답변은 국회의 사전동의를 거른 파병이라는 비판과 함께 오는 24일 열리는 임시국회를 파행국회로 몰고갈 공산이 짙다.

  그리고 자칫 페르시아만 개전이 몰고올 불길한 결과, 예컨대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에너지수급에 차질이 빚어진다거나 또는 한국군이 입게 될 엄청난 타격여하에 따라서는 30년만에 부활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예 뿌리채 뒤집힐 우려마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가지 다행스런 일은 이번 파병에 대한 정부측의 복안과 대책이 너무도 치밀하다는 점이다. 이번 파병으로 정부는 약 13억달러 정도의 물질적 손해를 입게 된다. 현재 이라크에 투입되어 일하다 철수하는 국내 여러 건설업체가 결국 날리고 말 10억달러 수준의 미수금과 미국 및 다국적군에 지급해야 될 2억2천만달러의 분담금, 그리고 1백54명의 한국군 의료진한테 봉급명목으로 지급할 경비 등이다.

 그러나 이라크로부터의 미수금 10억달러는 파병을 하건 안하건 간에 이미 ‘날린’ 돈이라는 것이 외교실무당국자들의 솔직한 계산이다. 우리가 이번 파병에 앞서, 유엔결의에 따라 對이라크 경제제재 조처에 동참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돈의 포기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파병을 택했다는 논리다. 또 여기에는 오일 쇼크가 되풀이될 경우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로부터 과거 6·25 때 우리가 ‘참전 16개국’한테 느꼈음직한 호의를 얻어내, 향후 유류공급선을 확보하는 데 있어 우대를 받겠다는 계산도 깔고 있다.

 문제가 된다면 추가파병의 운을 뗀 이국방의 발언인데, 이에 대해 한 외교실무자가 내리는 진단은 역시 치밀한 분석에서 비롯된 성싶다. “대통령의 의견이 절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이국방의 의견도 아니고, 軍일부의 의견이 국장장관의 입을 통해 전달됐을 뿐이다.”
 미진한 것은, 노태우 대통령이 지난 14일 의료진 선발대의 출국에 앞서 임시 국회를 앞당겨 소집, 국회의 동의절차를 제대로 밟아 파병했더라면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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