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무죄, 포스터는 유죄
  • 신기남 (변호사) ()
  • 승인 1991.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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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윤리위’ 심의 거쳤어도 음화제조 및 반포죄 성립
 성개방 풍조를 타고 각종 대중매체가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것이 인간성의 해방이냐, 아니면 방종이냐 하는 논란이 있지만 청소년에게 해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틀림없다. 형법에는 음란한 문서나 도화를 제작·발포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문서나 도화의 음란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법관은 자신의 가치관뿐만 아니라 사회의 의식수준과 여론을 두루 참작하여 구체적 판결을 내린다. 개방과 절제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법원이 취한 태도는 무엇일가.

 지난 70년 대법원은 음란성의 기준을 ‘보는 사람의 성욕을 과도하게 자극하여 흥분시키고, 보통 사람의 성적 정서와 선량한 사회풍속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때’라고 설정해 놓았다. 그 후 이 기준은 금과옥조처럼 각 판결이 인용돼왔다. 그러나 구체적 적용은 시대적 산물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법원은 70년 《세계평화집》에도 나오는 저명한 누드 그림은 성냥갑에 옮겨 판매한 행위에 대해서까지 음화제작 및 반포죄를 적용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75년 소설《반노》에 대하여는 음란성이 없다 하여 획기적으로 무죄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법원도 상당한 정도의 개방성을 띠지 않겠느냐 하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다. 과연 그러한지 최근의 판례를 한번 보자.

 영화 <사방지>는 兩性을 타고 난 여자인 사방지가 사대부 가문의 청상과부와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하다가 탄로가 나고 결국 함께 情死한다는 줄거리다. 이영화의 포스터와 스틸사진을 제작·반포한 영화사의 책임자가 음화제조 및 반포죄로 기소됐다. 포스터와 스틸사진의 음란성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법정에서 전개되었다. 제1심 법원인 서울형사지방법원 단독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판결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방지>는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내 여러 영화관에서 상영됐고, 문제의 포스터와 스틸사진은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편집한 것에 불과하다. 둘째 도화(그림)내용 중에서 여성간 애무장면이 있기는 하나 성교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거나 성기들에 의하여 음란성을 고의로 과장한 장면이 없다. 따라서 이 정도로는 우리 사회의 통상적 성인의 성용을 과도하게 자극하거나 성적 정서를 해칠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90년 4월에 내려진 제2심 판결에 대하여 검사가 상고해 무대는 최종심인 대법원으로 옮겨졌다. 대법원은 90년 10월 제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부로 환송하여 다시 심리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음란성이 있으므로 음화제조 및 반포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하급심은 다시 심리하여 유죄판결을 내려야만 한다. 대법원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화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고 해도 포스터나 스틸사진은 영화관용이 아니라 선전용으로 널리 배포된 것이다. 둘째 상반신을 드러낸 여자들이 서로 껴안은 채 애무를 하고 있고, 성적도취에 빠진 득한 여의 표정이 노골적으로 묘사돼 성교장면을 연상케 하는 등 그 내용이 예술적 측면이 아닌 선정적 측면만 강조하였다. 셋째 포스터에 써넣은 문구가 그림을 더욱 선정적으로 돋보이게 하고 있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건전한 성풍속을 해치는 음화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개방의 물결을 따르지 않고 제동을 걸었다. 이것도 무턱댄 개방풍조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필요성이 절감되고 있는 90년대의 시대적 산물이라고 해야 할 것 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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