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보면 코소보 미래가 보인가?
  • 프랑크푸르트 허광 통신원 ()
  • 승인 200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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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측, 국제임시행정부 임기 무기한 연장… 자치 정부 설 자리 잃어

나토군이 코소보에 주둔할 때 서방측이 한 말이 있다. ‘민족 분쟁을 해결하고 안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역의 안정은 소수 민족이 ‘정치적 주권’을 누려야 가능하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토가 코소보에 주둔하는 법적 근거가 되었던 유엔의 결의조차 무시되는 판에 이런 약속은 공수표가 아닐까. 미트로비차 지역을 마지막으로 세르비아계가 모두 추방되면 코소보의 민족 분쟁은 비록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해결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 후 이 지역의 안정과 소수 민족의 주권은 보장될까? 나토군이 주둔하고 있는 보스니아에서 지난 4년 동안 벌어진 사태는 이런 의문을 푸는 데 좋은 실마리가 된다.

나토가 보스니아에 주둔하게 된 법적 근거는 1995년 11월 조인된 데이턴 평화조약이다. 데이턴 조약은 3년 간에 걸친 보스니아 내전에 종지부를 찍고 이 지역의 평화를 회복할 임무를 국제기구에 맡겼다. 데이턴 조약에 따르면 이 기구(국제임시행정부)의 임기는 1년이며, 보스니아의 자치 정부를 구성하는 선거가 끝나면 해체된다. 그러나 그 임기는 1996년 9월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보스니아의 안정을 확고하게 유지한다’는 구실에 따라 2년으로, 그 후 1997년 12월에는 다시 무기한으로 연장되었다.

서방 정책 거스르는 정치인 ‘무조건 해임’
문제는 국제임시행정부가 데이턴 조약과는 무관하게 임기 연장을 되풀이하면서 그 본래 기능에도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그 결과 서방측은 어느 누구에도 구속되지 않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국제임시행정부 핵심 부서인 ‘최고 대표자 회의’는 보스니아 선거가 끝나자 임기를 1년 연장하면서 일종의 ‘정책 제안 기구’로 탈바꿈했다. 이들이 제안한 정책은 서방측 정부가 심의하고 마지막에 보스니아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그러나 보스니아 정치인들은 서방측의 ‘정책’을 거부할 경우 갖가지 압력을 받았다. 해외 여행에 문제가 생기고 지역구에서 경제적 불이익을 받는 등 불이익을 따랐다. 1997년 12월, 최고대표자회의는 임기를 무기한으로 바꾸면서 새 권한을 추가했다. 서방의 정책을 거스르는 보스니아 정치인은 임기에 상관없이 해임한다는 것이다. 서방측은 그때까지 보스니아 정부가 갖고 있던 권한, 즉 서방측 정책에 대한 동의권도 박탈했다.

그 결과 보스니아에서 자치 정부가 설 자리는 점차 좁아졌다. 서방측의 보스니아 내정 개입이 이처럼 확대되고 있는데도 그 실상은 대부분 베일에 가려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세르비아계 지역에서 벌어진 사태이다. 이곳에서는 1997년 7월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없이 의회가 해산되었고, 1999년 3월 나토의 유고 공습을 앞두고는 대통령이 해임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사태를 보면 나토군의 보스니아 주둔은 서방의 정치 개입이 지속되는 한 필수이다. 데이턴 조약에 따라 1996년 12월까지 주둔했던 나토군은 1997년에 18개월, 1년 후에는 무기한 주둔하는 것으로 임기를 바꾸면서 경제․정치 분야 쪽으로도 활동 범위를 넓혔다.

서방측은 보스니아 정치인들의 정치 의식 수준이 낮아서 유권자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ht한다고 본다. 보스니아 주민들 또한 내전에서 얻은 심리적 상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 정상으로 정치적 판단을 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방의 책임이 강조될수록 보스니아 주민의 자치 공간이 무시된다면 이 지역의 안정 또한 멀어질 뿐이다.

서방측이 보스니아에서 1년이라는 과도기 임시 행정 기구를 무기한․무제한 권력으로 탈바꿈시킨 반면 나토군의 코소보 주둔에는 처음부터 기한 제한이 없다. 코소보를 통제하려는 서방측의 의지는 그만큼 확고하다. 코소보의 미래는 보스니아의 정세 변화와도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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