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어두운 한국 미래학
  • 우정제 기자 ()
  • 승인 1991.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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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 학회 창립, 출발 빠른 편···장미빛 환상 심어 ‘현실도피’퍼뜨릴 위험

 미래학이란 무엇인가. 한국의 미래학은 세계의 미래학과 세계의 미래학은 지난 20여년간 무슨 그림을 그려왔으며 지금 어떤 그림을 그리려 하는가.

 구미에서 미래학이라 불릴 만한 본격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 기술혁명에 의한 정보화시대로의 진입은 미래사회 인류의 모습을 예측하려는 새로운 연구를 촉발앴다. 인간·자연·환경 등 미래에 대한 총체적 조망은 여러 학문간의 상호교류가 활발해진 20세기 전반의 흐름 속에서 싹텄다.

 따라서 “아직껏 이렇다할 패러다임(설명틀)을 정립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자연과 인간의 합일사상, 과학주의를 배격한 인본주의가 미래학의 철학적 배경이 되었다”고 최근 창간된 미래학 전문지 《포럼21》의 발행인 弘星鎭 교수(한양대 행정대학원)는 말한다. 그러나 과학주의를 배격하며 출발한 이 학문은 미래 예측을 위한 방대한 양의 자료 취합 및 분석이 정보혁명에 의해 가능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과학기술 발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럽쪽에선 환경파괴 등에 주목
  초기 미래 연구의 공통점은 학문적 성숙기에 접어든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다양한 인종과 사조가 혼재한 미국은 학문의 상호교류를 통한 공동 연구의 좋은 토양이 되었다. 다니엘 벨, 피터 드러커, 앨빈 토플러, 허만 칸 등은 60년대 미래학을 꽃피운 대표적 학자들로 우주과학 및 무기생산의 발달을 예측하는 랜드연구소와 더불어 미국쪽 미래 연구의 주축을 이룬다. 산업기술 발달에 의한 인류의 진보를 대체로 긍정하는 이들의 입장으 미국과 더불어 미래 연구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일본 학자들의 연구동향과 일치한다.

 반면 유럽쪽의 연구는 환경파괴와 인간성상실 등 산업기술의 진보가 초래할 부정적 영향에 주목해왔다. 68년 창립된 로마클럽은 그 대표적인 연구모임. 현재 회원은 40개국에서 약1백명이다. 국제적 성격의 비판적 지식인 운동체인 이 연구모임은 그간 활발한 연구활동을 펴왔는데, 그 중에서도 D.메도우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1972)는 고도성장시대인 70년대에 21세기 인구·경제발전의 제약에 의한 인류의 위기를 대담하게 경고함으로써 발표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후 각국 정부와 기업은 정책 수립 및 산업투자를 위한 필요성 때문에 앞다투어 미래 연구에 투자하게 되었다. 특히 요즘과 같은 세기말의 시대적 불안감 속에서 낙관과 비관이 엇갈린 미래상의 조망은 일반의 관심을 부쩍 고조시키고 있다.

 2~3년 전부터 국내서점가에는 ‘리해서’ 열풍이 일고 있다. 이같이 뒤늦은 일반인의 관심에 비해 우리나라의 미래 연구는 비교적 출발이 빨랐다. 아작 궁핍한 시기였던 68년 한국미래학회가 창립됐다. 당시 학회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전부총리 李-- 박사와 崔禎鎬 교수(연세대·언론학)이다. “발전도상의 우리 사회에서 미래지향적 사고를 일반화시키는 운동이 절실하다”는 데 뜻을 같이 한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중견 연구자 및 언론인, 기업인과 정부측 인사 등 35명이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다.

 창립 토기 한국미래학회가 관심을 기울인 연구는 △미래사회 건설과 학자의 역할을 논한 ‘국가와 학자’△60년대 본격화된 급속한 경제개발의 부작용을 환기한 ‘한국사회의 발전과 갈등’△기술 중심 사회에서 망각되는 인간의 문제를 다룬 ‘산업화와 인간’등의 주제였다. 최정호 교수는 이 가운데 특히 “산업간·지역간·계층간 격차에 주목한 ‘발전과 갈등’의 연구는 80년대 이후 사회문제로 부각된 도농간 노사간 1·2차산업간의 갈등을 한걸은 앞서 내다본 논의였다”고 술회했다.

 이들은 또 한국과학기술원(KIST)과의 공동작업인 〈서기 2000년의 한국에 관한 조사연구〉(1971)가 ‘델파이 기법’을 사용해 한국사회의 체겨적 발전모형을 제시한 우리나라 미래 연구의 효시였다고 자부하고 있다.

독재정권이 이용한 한국 미래학
 델파이 기법이란 현재의 자료를 참조하되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 어던 일이 일어날 개연성을 모으는 미래예측의 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발명·발견 등의 과학기술 발달이라든가 대기업의 장기적 시장변화, 국내외 정치의 예측에 흔히 사용된다.

 “유럽의 미래 연구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식의 개인적 상상력, 혹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비판함으로써 미래를 정립하는 ‘미래지향적 역사학’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반면 미국·일본·한국의 연구는 외삽법(外揷法)과 델파이 기법이 주류를 이룬다”고 창립회원 -泰-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도시정책학)는 설명한다.

 외삽법은 미래 연구에서 사용되는 유일한 과학적 방법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온 추세를 다시 미래로 연장하는 이 방법은 경제성장과 인구증가 추세 등의 예측에 전형적으로 사용된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국민총생산 성장률이 10%였으므로 2000년의 우리 국민소득은 얼마, 같은 기간 서울시 인구 증가율이 연평균 5%였으므로 인구는 얼마”하는 식의 추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방법에 의하면 미래는 ‘장미빛 미래상’을 주입해온 관제 미래학의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외삽법 연구의 대표적 학자는 암울한 유신독재하의 한국을 드나들며 집권층의 홍보역을 한 허만 칸이다. “한국은 머지않아 제2의 일본인 된다”는 식의 장밋빛 환상을 국민에게 홍보하기 위해 정부는 그의 초정강연을 마련했고, 당시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해 박자를 맞추었다. ‘90년대의 한국’등 ‘대망의 연대론’을 편 한국개발 연구원(KDI)과 함께 유정희 역시 3공 관변 연구의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신 이후의 관변 미래 연구는 이후 민간의 미래 연구를 위축시키며 5공으로까지 이어진다. 3공 시절 남해안 해수오염을 연구, 발전에 따른 폐해를 지적한 부산수산대 모교수가 학술지의 배포를 금지당하고 수사기관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뒤 해직된 사례는 관변 미래예측의 허상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참다운 미래학은 최선의 현재학”
 이렇게 볼 때 결국 한국의 미래학은 유신이래의 관변 연구와 경직된 정치상황 속에서 초반의 열기를 잃고 학술적 침체에 빠졌던 민간 연구의 두갈래 큰 흐름으로 파악된다. 그간의 침체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지난 1~2년 사이 소장학자들을 대거 영입, 현재1백20명의 회원으로 연구진용을 재정비한 한국미래학회는 그간의 연구 성격을 어떻게 자평하고 있을까.
 이한빈 회장은 첫마디부터 미국식 미래학을 타기한 ‘한국적’ 연구였다고 강조한다. “하만 칸이나 앨빈 토플러식의 ‘PR끼’가 다분한 미국식 미래학을 거부하고 한국 현실에 발 붙인 연구를 하려고 애써왔다”는 것이다. 연구방법상으로는 “델파이 기법을 출발점으로 하되 철학적이고 사회변동론적인 사변을 매우 중시해욌다”고 밝힌다. 그는 또, “차다운 미래학은 최선의 현재학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미래상’을 예상된 시간내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실개혁을 의식한 연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로부터의 출발을 강조한다 해도 ‘바람직한 미래상’의 설정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많은 이들이 쉽게 납득을 하지 못한다. 이들은 “이상향을 먼저 설정하고 이상향의 가치를 강조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현실외면·현실도피·무비판적 시각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냐”며 미래학을 향해 보다 근본적인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례로 통일한국의 미래상을 그린다 치자. 이때 ‘분단’이란 결정적 변수를 미래예측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이며 구체적으로 어떤가치들을 설정할 것인가 묻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한빈 회장은 “분단상황이 미래예측의 ‘결정적’ 변수라는 인식 자체에 이미 오류가 있다. 분단이 주요 변수이긴 하지만 한국의 미래를 설명할 99%의 원인으로 생각한다면 입론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같은 답변은 한국 미래 연구자들의 현실인식이 진보학계쪽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올바른 역사의식 없으면 한낱 숫자놀음
 6공의 미래학을 대표하는 21세기위원회도 역시 비계량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연구를 표방하고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로 94년까지의 한시조직으로 운영되는 이 위원회는 지금 2020년의 이상적 좌표를 그리고 있다. 통일·국가위상분과위의 안청시 위원장(서울대·정치학)은 “목표연도까지의 통일을 목표로 △민주화 정착△내치 및 외교의 통일지향적 구상△국제질서 변화 예측을 통한 한국의 위상 정립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미래학회와는 별개로 한국미래연구학회도 87년 미래 연구를 표방하고 나섰다. 한국미래연구학회 회장 전득주 교수(숭실대·정치학)는 현재 이 모임이 전국 45개 대학에 본회를 결성, 학계·종교계를 비롯 4백40여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미래협의체의 회원단체인 이 모임은 그간 “북한의 주체사상을 수용하는 주사파를 포함해 특정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대학 발전’등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해왔다. 전회장은 “90년 5월 부다페스트에서 늦어도 92년까지 북한의 조선사회과학자협회 및 세계미래연구협의체와 더불어 국제학술회의를 공동개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고 전한다.

 한편 미래 연구 자체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한 중견학자는 “미래라는 이름을 빈”학회의 발족에 주목하면서 이같은 움직임은 “근자의 정치·사회적 전환에 편승하려는 반학문적 행태일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연구자들은 현단계 한국 미래학의 주요 과제로 △환경문제△노동문제△정보체계의 변화△소비행태의 변화△국제정세 예측 드을 꼽고 있다. 한국 미래학회측은 “경제적으로 뒤진 북한을 세계경제의 흐름속에 끌어들이는 일”을 우선으로 하여 통일 문제에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미래 연구를 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이다. 그간의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 또한 다양하다. 특히 통일문제나 과학기술·정보혁명 등 미래 예측의 주요변수들에 대해 고통된 인식이 없는 학풍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연구자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삶을 바라보는 총체적 전망이 없을 때 미래학은 한낱 숫자놀음에 불과한 가장 위험한 학문이 될 수도 있다. 현실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과 결합하지 않을 때 미래 연구는 오히려 현실에 대한 매몰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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