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범은 대부분 아는 사람”
  • 시드니·김태정 (시드니대학 유학생) ()
  • 승인 1991.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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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성폭행상담소 상담원 스테이시 매컬리스터

 시드니에 있는 로얄 프린스 알프레드 병원의 성폭행상담소를 찾아가 상담원으로 근무하는 스테이시 매컬리스터를 만났다. 그는 강간은 근절될 수 없는 범죄이지만 남성들의 여자에 대한 생각, 이를테면 “남자는 힘으로 여자를 정복할 수 있다”는 식의 폭력적이고 독선적인 사고방식이 바뀌고 여성 또한 스스로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주에서 강간이 늘고 있는데 증가율은 얼마나 되는가.
  경찰 통계나 우리 상담소 상담 숫자로 미루어볼 때 해마다 10%씩 꾸준히 늘고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산업사회의 발전, 물질만능 풍조, 성의 상품화 등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텔레비전이나 잡지는 “여성은 섹시하고 바보스럽고 남자보다 약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그릇된 고정관념이다. 그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담소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경찰과 연결되어 있는가.
  우리는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그에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정신·육체적 피해를 치료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사법절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우리 상담소를 찾는 상담객 중 약 40%는 자진해서 경찰에 신고한다(이로 미루어 호주에서의 성폭행 신고율은 40% 안팎이 될 것 같다).

●성폭행을 줄이기 위한 근원적 대책은 무엇인가.
  교육이 중요하다. 어린아이 때부터 남녀는 평등하다는 것, 인간은 그 누구도 남을 힘으로 억압할 수 없다는 것 등을 알게 해야 한다. 또한 여성은 여성 나름대로 호신술을 배워둘 필요가 있다. 힘이 약한 여성은 자기 스스로 자기 몸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호주의 여성단체에서는 호신술을 무료로 강의하고 있다). 물론 성의 상품화에 동원되는 여성에게도 반성할 점이 없지 않다. 여성은 여성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미니스커트를 입는 등 과다노출이 강간 증가의 원인으로 작용하지는 않는지. 만약 그렇다면 강간에는 피해자의 책임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은 남성들의 고정관념이다. 강간범은 대부분 면식범이다. 낯선 사람에게 강간당하는 경우는 적다. 따라서, ‘피해 여성의 충동 유발’은 어불성설이다. 또 호주에서는 토플리스 수영복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남성의 성충동을 자극해 강간을 유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강간피해자와 그 가족은 어떤 방법으로 고통을 잊는가.
  이사를 하는 등 변화를 꾀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봉사 활동을 함으로써 과거를 잊고자 노력하는 경우도 많다. 상담원과의 꾸준한 대화는 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강간 피해자들은 사법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또 한번 고통을 당한다고 들었다. 개선할 방법은 없는가.
  하나의 방법으로 재판의 비공개 및 1회 증언을 생각할 수 있다. 녹음된 피해자의 진술을 법으로 인정한다면 진술의 반복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을 자꾸 말하도록 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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