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中 대권가도에도 ‘걸림돌’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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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전’ 낙관 분위기 …세대교체론 등 개혁그룹 행보가 변수

  민자당의 치열한 대권 싸움과는 대조적으로 ‘무풍지대’로 남아 있던 민주당에도 서서히 대통령 후보 경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李基澤 공동대표가 지난6일 미국으로 떠나면서 공항에서 “비호남계 위원장들이 15대 총선을 위해서라도 경선에 나설 것을 희망하고 있다”며 출마 의사를 간접적으로 비친 데 이어, 지난 9일에는 韓英洙 당선자 (4선)가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인물을 요구한다”면서 경선 참여의 뜻을 밝히고 나섰다. 전당대회 시기는 5월말(金大中대표)과 7월말(李基澤대표)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당 사무처는 일단 5월말 전당대회를 목표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민자당처럼 짙은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는 아니다. 총선 이후 그 위상이 더욱 강화된 김대표의 ‘일방적인 승리’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시각이 당 내외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우선 3·24 총선 결과는 민주당이 합당 이후 당직 배분과 공천과정까지 상징적으로 고수해온 신민·민주계 6대 4의 다소 인위적인 계파 지분을 무너뜨린 71대 26으로 나타나 신민계 절대 우위의 현실을 확인시켰다. 신민계 후보들은 호남에서 2석을 잃은 대신 서울을 비롯해서  경기·대전·충남 등지에서 기대 이상의 전과를 올렸다. 물론 민주계 역시 8명에서 26명으로 현역 의원수가 대폭 늘어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대표의 지역기반인 부산·경남에서 단 1석의 의석도 얻지 못함으로써 ‘잠재적 경쟁자’였던 이대표의 위상은 대폭 약화되고 말았다.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대의원수 역시 ‘일방적인 승리’를 예고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의 지구당 위원장은 신민계 1백22명, 민주계 1백5명으로 거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광역의회 의원과 기초의회 의장, 부의장 수에서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바람에 전체 대의원 2천3백79명 중 신민계가 1천4백56명, 민주계9백41명으로 6대 4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산술적으로만 따지더라도 후보 경선 결과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김대표진영은 당내 경선에서 수월한 승리를 낙관하는 근거로 이러한 산술적인 우위 외에도 김대표가 총선을 실질적으로 관장한 점을 들고 있다. 실제로 김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큰 효과를 본 ‘안정이냐 견제냐’라는 논리를 일관되게 구사하는 한편, 선거 초반부터 기존의 민주대 반민주 구도에서 경제문제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등 선거전의 흐름을 앞서서 주도했다.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는 호기”

  이렇듯 여러 정황으로 보아 대통령 선거전을 향한 야권 내의 실질적인 걸림돌은 거의 없다고 판단하는 만큼, 김대표 진영은 예선전(당내 경선) 결과보다는 본선을 향한 이미지 관리에 부심하고 있다.

  우선 김대표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부분인 ‘대권 3수생’이라는 점을 ‘경륜있는 지도자’의 이미지로 돌파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일 한국편집인협회가 주최한 금요대화에 참석한 김대표는 이 점을 꼬집는 질문자에게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도 세번째 도전 끝에 당선돼 재선까지 됐다”고 응수했다.

  김대표의 또다른 정치적 부담인 ‘지역적 한계’ 문제는 이번 총선을 통해 일정 부분 극복의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게 김대표 진영의 인식이다. 전북 지역에서 2석을 잃음으로써 오히려 지역감정의 족쇄에서 풀려난 대신, 평민당 간판을 내걸었던 13대 총선에 비해 영남 지역과 서울 경기도 충청도 지역에서의 비약적인 당 지지율 상승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는 것이다. 10일 금요대화에서 김대표는 민주당 집권시 ‘逆지역 차별’을 우려하는 데 대해 “최선책은 아니지만 차선책으로 ‘인구비례에 따른 인재 등용’을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걸 수도 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김대표 진영은 비호남권을 의식, 공동대표제를 대선 때까지 유지한다는 복안이다.

  이런 수세적인 입장에서의 이미지 관리만이 아니다. 최근 김대표는 경제문제에 대한 꾸준한 언급과 군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로 그동안 애써 쌓아올린 ‘온건·합리·개혁’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김대표 진영은 ‘경제대통령’ 논의가 일 정도로 경제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은근히 반기고 있다. 김대표 자신이 경제문제에 관한 한 《대중경제론》이라는 책을 저술할 정도로 깊은 관심과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표 진영은 경제분야의 중견 전문가를 영입, ‘대중경제론’을 현재의 실물경제에 접목시켜 물가·교통·무역 등의 각 분야에 걸친 정책 대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편 김대표는 ‘어떻게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표를 지키느냐’가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는 관건이라고 믿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지만” 과거 대통령 선거의 예와 이번 총선에 비추어 전면적인 관권·부정선거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 자치단체장 선거 없이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김대표의 기본 인식이다 따라서 김대표는 자치단체장 선거의 실현에 자신의 정치생명과 당운을 걸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대표의 대권 전략을 당내 경선이라는 예선전보다는 결선전을 향해 그 초점이 맞춰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민주당 전당대회는 당초 정치권의 예상대로 아무런 변수도 없는 밋밋한 선거로 진행되지는 않을 듯하다. 야당의 속성상 아무리 우월한 지위를 확보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완전무결한 장악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이질적 집단이 모인 통합야당의 속성에 비추면 더욱 그러하다.

 

“조용한 전당대회는 오히려 곤란”

  당내 일각에서는 아예 대통령 후보는 김대표, 당권은 이대표에게 넘겨주는 ‘역할분담’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지만, 김대표 진영에서는 이런 역할분담은 71년 대통령 선거(당수 유진오씨와 대통령후보 김대중씨)의 경험에 비추어 ‘비현실적인 발상’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결국 이대표로서는 차기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당내 경선에 나설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대결은 숫적으로 이미 결론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영남 지역에서의 전멸이 김대표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라고 믿는 영남·강원 지역의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의 반발 강도에 따라 당내 경선이 예상보다 격렬한 양상을 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하나의 변수는 이른바 당내 ‘개혁그룹’의 행보다. 14대 총선에서는 13대에 진출한 재야출신들에 이어 李富榮 최고위원 李吉載 대외협력위위원장 柳寅泰 당무위원 諸延坵 元惠榮 朴啓東 張永達 申溪輪 당선자 등이 원내에 합류했다. 각기 민주연합·평민련·신민주연합 등으로 소속 계보는 다르지만 당내 공천과정에서 이미 ‘계보를 뛰어넘는 연대’보인 만큼 당내 경선에서도 세대교체론 등을 내걸고 파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여권의 대권주자가 어느 쪽으로 결정되는가에 따라 ‘세대교체’의 바람이 가속력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범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 기성 정치권에 뿌리를 내릴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데다, 총선과는 달리 대통령 선거에서는 소속계보를 뛰어넘는 공동 보조를 취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이들이 단일한 정치적 블록을 형성하고 한 목소리를 내는 시기를 대통령 선거 이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이들 세력은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 최소한 대통령 후보 경합자에게 ‘개혁정책과 당내 민주화’를 강력히 요구하며 위상과 입지를 넓혀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대표와 이대표는 총선 직후부터 이들 세력에 대한 자신의 연고권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차세대 지도자’를 겨냥하는 당내 중진들의 행보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경선이 거의 확실시됨에 따라 벌써부터 ‘포스트 金’을 노리는 金相賢 당선자 金元基 사무총장 鄭大哲 의원 등 당 중진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이들은 대권 후보 결정과정에서 나름대로의 역량을 발휘하며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확실히 다질 공산이 크다.

  그러나 김대표 입장에서 보면 ‘다소 시끄러운’ 전당대회가 반드시 곤혹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여당이 전례없는 자유 졍선을 치르는 마당에 ‘조용한 전당대회’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김대표 진영의 인식이다. 동교동의 일부 측근들 가운데서 “예측을 불허하는 팽팽한 경선 양상을 띠는 게 오히려 낫다”는 여유있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치권은 이제 여야를 막론하고 일찌감치 대선전으로 돌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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