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빈수레 ‘문화부’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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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영화의 해’ 제정 … 예술계 반발 크고 정부 지원 미흡
 “한국 연극 영화 진흥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올해를 ‘연극영화의 해’로 정하고 1월19일 그 선포식을 가지려던 문화부가 17일 아침 “걸프전쟁 발발과 관련, 행사를 연기한다”고 발표하자 문화예술계는 실망을 나타냈다. 일부에서는 “문화를 사치나 과소비의 차원으로 보는 비문화적 태도”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또한 정책의 실현이 중요하지 선포식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도 나왔다.

  문화부가 출범 두 해째, 문화발전10개년 계획의 첫 해를 맞아 제정한 ‘연극영화의 해’를 둘러싸고 문화예술계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은 문화부의 역기능을 지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지적은, 예산의 뒷받침이 없는 가운데 나오는 ‘일과성 행사’라는 말로 요약된다. 문제는 예산과 국고지원 그리고 문화예술인 출신이 장관을 맡고 있는 문화부의 ‘일방통행’에 있다.

  올해 문화부가 일년 동안 쓸 수 있는 예산은 총예산의 0.42%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문화부는 예산의 1%를 쓴다. 이 장관은 문화부 예산을 “전체 예산의 0.5%쯤으로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예산배정의 우선 순위, 부처와의 균형, 경제 전반에 대한 형평문제 등이 고려돼 문화부의 요구가 “광야의 외침”이 되고 말았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연극영화의 해’는 일단 문화예술계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신극80년 역사를 가진 연극계는 계속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고 영화계는 특히 외국영화의 상륙에 직면,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문화부는 연말까지도 구체적인 대안은 물론이고 해당 문화예술인들의 의견을 수렴하지도 못했다.

  연극인들은 지난해 11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연극의 해를 두달여 앞두고도 문화부가 구체적인 몸짓을 보이지 않자 자발적으로 연극의 해 집행위원회(위원장 권오일)를 구성, 문화부가 발표한 ‘문화발전10개년계획’을 바탕으로 장단기 계획을 세워 이를 건의했으나 문화부는 대답이 없었다. 문화부는 연극영화의 해가 시작된 1월8일에야 움직이기 시작했고 1월16일 잠정적인 사업계획을 내놓았지만 연극인들의 건의내용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집행위원회는 18일 선포식 연기와 관계없이 4개항의 요구사항, 즉 건의에서 누락된 내용인 △중장기 발전계획(제작금고, 연극회관 건립, 연극 교과과정 반영, 국립예술학교 설립과 이를 위한 연구기금 책정)의 구체적 반영 △연극관람 쿠폰제 채택 및 소요예산 국고지원 △관료적 발상으로 구성된 사업계획 추진기구 재구성 등을 제시하면서 “연극 발전의 중요한 디딤돌인 이 사항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연극의 해 행사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당국의 문화 인식 전환돼야
 영화계는 영화의 해를 앞두고 스스로 의견을 수렴하지는 않았지만 문화부가 제시한 정책이 “한국영화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인 영화법 개정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환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호선(감독위원회 위원장)씨는 “영화인들이 건의한 ‘영화진흥법’을 통과시키지 않는 한 한국영화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국영화 직배에 대항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물론이고 ‘사문화된’ 스크린 쿼터제에 관한 강제조항 등이 영화진흥법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검열제 철폐를 먼저 해결할 과제로 내세웠고 젊은 영화평론가들은 “뉴미디어시대 개막과 더불어 재편될 수밖에 없는 영화산업구조를 직시, 법적·정책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1월21일 청와대에서 있은 ‘교육혁신과 국민정서 함양방안’에 관한 관계부처 합동보고서에서 문화부는 ‘문화예술을 통한 국민정서함양’이란 큰 제목 밑에 연극영화의 해 항목을 달았으나, 연극계의 요구사항은 거의 누락돼 있었다. 외국영화 직배나 스크린 쿼터제, 그리고 검열문제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그러나 집행위원회는 25일 모임을 갖고, 문화부가 23일 보내온 공문에서 연극계의 의견을 수용했다고 판단, 불참결의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문화부는 이 공문에서 자율원칙, 내실화와 활성화, 중장기계획의 분리추진 등 3대원칙을 약속했고 이에 따라 집행위는 18일 요구했던 중장기계획들을 문예진흥원 측과 협의하면서 연극의 해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연극영화의 해 난항을 지켜본 문화예술인 사이에는 벌써부터 문화발전10개년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걱정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부 당국의 문화에 대한 인식의 정도가 예산을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선포식에서 발표될 예정이었던 연극영화의 해 사업계획에서 확인되듯이 문화부에 대한 국고지원 액수는 극히 미미하다. 문화부가 연극영화의 해와 관련, 연극 진흥을 위해 국고로부터 지원받은 액수는 3억7천만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공익자금으로 이루어진 문예진흥기금 40억원과 민자 4억원등 모두 49억원을 책정해놓았었다.

  “문화발전10개년 계획의 성사 여부는 국고지원이 핵심인데, 연극영화의 해에 대한 국고지원 수준을 보면 당국의 문화 발전에 대한 의지에 의혹이 간다”고 한 연극인은 말했다. 문화부나 이 장관이 문제라기보다는 “국정 책임자들의 문화에 대한 의식”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문화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는 점에서 문화부 출범 1년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 “문화부는 국고지원이 없어도 업무 수행에 별 탈이 없다”는 인상을 국정 책임자들에게 심어주지나 않았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행정부 내에서 문화부의 위상을 인정한다하더라도 문화부의 과제로 남는 것은 많다. 장관의 ‘독주’와 문화행정을 도맡을 전문인력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연출가 정진수씨는 “연극인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는 장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극작가이며 연출가인 이윤택씨는 “장관의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현실화할 수 있는 전문가가 문화부 내에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李文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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