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민주 요구 적극 수용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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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첫 영수회담 / 새 관계 정립 계기…청와대ㆍ민자당 인식차 보여

민주당 李基澤 댚가 청와대 영수회담을 제의한 것은 지난 3월이었다. 3월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직후 그는 가장 먼저 영수회담을 하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영수회담에 관한 한 청와대에서는 3개월이 훨씬 넘도록 무용담으로 일관했다 金泳三 대통령이 굳이 이대표를 만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명주ㆍ양양 선거결과 영향
6월11일이 지나자 사정이 달라졌다 명주ㆍ양양의 보궐선거에서 민자당 金命潤 후보가 패하고 민주당의 정치 신인 催旭澈 후보가 당선되자 청와대는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의를 선뜻 수락하는 ‘아량’을 베풀었다. 청와대가 이렇듯 한발 뒤로 물러서게 된 것은 김종필 대표의 위상이 한결 공고해지는 등 민자당내 세력 제편 구도에 차질이 생기면서 야당과 일정수준 협력 체계를 굳혀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명주ㆍ양양 보궐선거 결과는 단순히 국회 의석 수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여야의 기존 역학구도는 물론 이대표의 대내외적 자리매김에도 커다란 변동을 몰아오고 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민자당이 3개 선거구에서 모두 승리했다면 영 영수회담은 또 기약없는 ‘다음 기회’로 늦추어졌을지 모른다.

반면 민주당 입장은 청와대와는 정반대였다. 민주당은 어렵게 성사된 회담이고, 또 명주ㆍ양양의 승리로 인해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 맞는 유리한 국면이니만큼 거둘 것은 최대한 거두겠다는 생각으로 회담에 임했다.

이번 회담에서 이기택 대표가 강조한 것은 두가지 사안이었다. 첫째, 개혁 작업이 야당을 무시하고 국회를 도외시하는 형태로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둘째, 개혁과 사정이 정치보복 차원에서 선별적으로 진행돼서는 안되고, 법과 제도에 기초한 개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담에 나서기 전 이대표가 6공 청산이나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등을 포함한 ‘10대 청산과제’와 금융실명제 즉각 실시 등 ‘10대 개혁 과제’를 거듭 강조한 것도 극회라는 무대를 통한 야당 정치력의 복원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번 청와대 영수회담은 의례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막상 김대통령과 이대표가 만나자 당초의 예상보다 훨씬 진전된 내용에 합의해 과거와 달리 동반자적 여야 관계가 정립되고 있음을 실감나게 했다. 우선 안기부법을 미국ㆍ독일 같은 나라의 정보기관처럼 해외 정보수집에 국한시키는 쪽으로 개정하는 데 합의했다.

김대통령이 도청방지법 제정을 약속한 것도 민주당에게는 커다란 성과이다. 이는 민주당이 국회 정치관계법심위특위에서 현안으로 다루자고 내놓았으나 민자당 특위위원회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는 7월의 제162회 임시국회가 3주 간의 회기로 열리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은 7월 임시국회의 회기를 3주 간으로 늘려 민생현안을 광범위하게 다루자고 주장했으나, 민자당은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내한하는 7월10일과 11일 이틀 동안만 국회를 열 것을 주장했었다.

이로써 민자당보다는 처와대가 개혁작업에서 진보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이처럼 김대통령이 민자당 태도와는 상반된 내용을 이대표와의 회담에서 확정함으로써 김대통령과 김종필 대표 사이에 미묘한 알력이 생겨나게 됐다. 김대통령은 명주ㆍ양양 보궐선거의 패배 이후 민자당 내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민정ㆍ공화계의 수구적 목소리를 시급히 잠재울 필요성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이밖에 이번 회담에서 두 사람은 정치권의 정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금융실명제는 그 시기는 대통령 자신에게 일임해 달라는 유보적 조건을 달긴 했으나, 임기 내에 반드시 실시한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개정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趙瑢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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