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기자 구속’
  • 문정우 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199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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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사건, 취재자료 사실성 여부 쟁점

율곡사업 비리 관련 출국금지자 명단 기사를 작성한 <중앙일보> 정재헌 기자(36ㆍ사회부)가 지난 6월14일 밤 구속됐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중앙일간지 기자가 구속된 것은 74년 이후 처음이다. 정기자는 자신이 쓴 <중앙일보> 6월11일자 ‘율곡 관련 권국방도 출국 금지’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한 권영해 국방장관의 고소로 검찰에 소환된 지 34시간 만에 전격 구속된 것이다.

<중앙일보>는 기사가 보도된 뒤 권장관과 관계기관의 항의가 잇따르자 11일자 2판부터 이 기사를 빼고 12일자 1면에 정정 사과 보도문을 내보냈으나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이번 보도에서 <중앙일보>가 경솔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감사원에 확인조차 하지 않고 감사원을 취재원으로 밝힌 것은 치명적인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당국의 태도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과연 정기자가 입수한 자료가 공항 경찰대가 주장하는 것처럼 ‘신문기사를 보고 작성한 단순한 내부회람용’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중앙일보>측에서는 “취재기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판단도 하지 못했겠느냐”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정기자가 처음에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그 자료를 몰래 들고왔다고 얘기했으나 사실은 취재원으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자료를 건네받았을 것”이란 얘기도 하고 있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사실 보도일 때는 구속하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검찰은 이 부분을 명확히 해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기자를 서둘러 구속했다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문제의 자료가 엉터리는 아닌 것 같다”라고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공항경찰대의 주장도 “신문을 보고 만들었다”라고 했다가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만들었다”라는 등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 <중앙일보>측 주장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기사는 “율곡사업 비리와 관련, 권국방장관을 포함해 전현직 국방부 장ㆍ차관 등 모두 22명이 출국 금지조처를 받았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특히 ‘감사원에 따르면’이라는 전제하에 권장관을 비롯한 출국금지자 명단을 실명으로 공개했다.

“언론계 손보기 시작” 시각도
그러나 이 기사가 나간 뒤 감사원에서는 즉각 <중앙일보>에 정보를 제공한 사실이 없음을 밝혔으며 법무부에서도 권장관 등에 대해 출국금지 조처를 한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
<중앙일보>측에 따르면 이 기사가 게재된 경위는 이렇다.

공항에 출입하는 정기자는 10일 출입국관리에 관계하는 정부기관의 책임있는 위치의 공무원으로부터 ‘법무부 출국 규제자’란 제목이 붙어 있는 자료를 입수했다. 정기자는 자료의 내용을 사회부장에게 보고했고 그 뒤 편집국 차원에서 사실 확인 작업이 있었다. 출입기자를 통해 법무부와 국방부에 확인요청을 했는데 법무부측에서는 사실확인을 거부했고 국방부측에서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 감사원은 그동안 누차 출국금지자 명단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혀 왔으므로 감사원쪽에는 확인요청을 하지 않았다 확인이 어려워 기사화하는 것을 망설였으나 ‘율곡 사업에 쏠린 국민의 관심이 크고 모든 기사가 정부의 확인을 거쳐야만 보도될 수 있다면 언론보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감사원을 취재원으로 인용한 까닭은 ‘11일자 보도 이전에 이미 감사원에서 율곡 관련자에 대해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보도돼 문제의 자료는 감사원에서 보낸 자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언론계 일부에서는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즉 그동안 새 정부 출범 이후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언론계 손보기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오인환 공보처장관이 얼마 전 기자 간담회에서 얘기했던 ‘언론도 제소당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나 언론노련도 진상조사 작업에 들어갔는데 이번 사건이 ‘김영삼 정부식 언론 길들이기’의 일환으로 확대됐다는 판단이 서면 조직적으로 대응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文正宇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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