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심판이 필요하다
  • 김동선 (편집국장대우) ()
  • 승인 199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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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스런 과거사는 철저히 청산하자. 철저한 청산 없이 밝은 미래가 없다는 것은 역사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고독한 영웅이었던 드골의 생애에는 줄곧 ‘역사’라는 낱말이 붙어다닌다. 그의 조부 줄리앙 필리프는 저명한 역사학자였으며, 부친 앙리도 역사철학 교수였다. 이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흥미를 가졌던 드골은 청년 시절에도 역사 과목을 비롯해 현실 정치 문제와 조국의 운명에 깊은 관심을 쏟았다 그의 회고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들의 영광을 상징하는 것처럼 노트르담의 야경, 베르사유 궁정의 장엄한 모습, 저녁 노을 속에 우뚝 선 개선문의 위용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내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어려서부터 내가 직접 당하고, 보고 이야기 들은 조국 프랑스의 비참한 모습이었다. 숱한 패배의 기록, 그리고 수없이 저지른 잘못은 내 마음을 한없이 어둡게 했다.”

어린 시절의 꿈이 전도사였던 드골은 역사에 눈을 뜨면서 진로를 바꾸 사관학교에 진학했고, 그후 군인과 정치가로서 위기에 처한 프랑스를 구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질풍처럼 밀려온 피틀러 기계화부대가 프랑스를 정복했을 때 ‘위대한 프랑스’를 믿는 사람은 드골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오로지 위대한 프랑스에 대한 신념 하나로 영국으로 망명해 항독투쟁을 전개하면서 프랑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망명 시절에 드골과 수없이 언쟁을 벌였던 처칠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도골을 “언제 보아도 그는 프랑스라고 하는 나라의 위대한 가치, 그 권위, 명예, 야심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인격의 표현인 것처럼 보였다”고 묘사했다.

나치스 협력잘ㄹ 단죄한 드골의 역사의식
초라한 망명객으로 하여금 자나 깨나 위대한 프랑스 재건 집념에 불타게 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드골의 역사의식이었다. 역사를 통해서 얻은 위대한 프랑스에 대한 신념을 망명지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드골의 투철한 역사의식은 개선장군으로 파리에 입성한 뒤에도 나타난다. 나치스 협력자들에 대한 철저한 단죄가 그것이다. 대독협력자 약 10만명이 체포되었고 총살형을 당한 자가 7백91명(사형선고를 받았던 자는 2천명), 유기ㆍ무기ㆍ금고형을 받은 자는 3만8천명, 공직에서 추방된 자는 4만8천명에 이르렀다.

특히 비시 정권의 수상으로서 극단적인 친독정책을 폈던 라발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음독자살까지 기도했으나 혼수상태 속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드골의 나치스 협력자 처형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군인보다도 언론인을 비롯한 문필가들에게 더욱 가혹했다는 점이다. 장군의 신분이었던 자들은 전부 특사되어 총살을 면했지만 문필가ㆍ언론인들은 예외없이 총살되었다. ‘賣國’에는 칼보다 펜의 해독이 더 크다고 인식했던 것 같다.

뒷날 역사가 진실 밝힐 수 있는가
현재 우리 사회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에 대한 단죄가 진행되고 있다. 사정의 칼날에 의해 난마처럼 얽힌 구조적 부패실상의 상당 부분이 드러났다. 보복ㆍ표적 수사라는 문제 제기와 ‘커질 것 같으면 덮어버리는 식’이라는 불만도 나오고 있지만 현재의 개혁이 부패 척결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대통령이 5ㆍ16의 성격을 쿠데타로 규정한 것이나 청와대가 12ㆍ12사태에 대해 ‘쿠데타적 사건’이라는 견해를 내놓은 것도 과거 청산의 한 단면이다.

그런데 광주 문제의 진상 규명 요구에 대해서 대통령은 “훗날의 역사에 맡기는 것이 도리”라며 진실은 역사 속에서 반드시 밝혀지고 만다는 것이 자신의 확신이라고 말했다.

진상 규명을 훗날의 역사에 맡기자는 김대통령의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담화는 광주 지역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지금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역사적 심판’을 기대했던 탓일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어쨌든 대통령의 담화로 광주진상 규명은 역사에 맡겨졌다. 그리고 이 때문에 새삼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역사에 대한 개념 규정은 학자마다 다르지만 오늘의 개혁 정국에서는 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E. H. 카의 정의가 감동을 준다.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라고 규정했다.

현재의 기점에서 과거를 해석한다는 의미인데, 드골의 생애에서 발간되는 역사도 바로 그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이다. 드골의 위대한 프랑스라는 신념은 프랑스 역사에 대한 깊은 탐구에서 나왔고, 나치스 협력자에 대한 가차 없는 차단도 치욕스런 과거와의 진지한 대화였던 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개혁에 대해서 바라는 점은 우리도 이제 과거와 진지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불미스런 과거를 철저하게 청산하지 않고는 밝은 미래가 없다는 것도 역사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비단 광주 문제뿐만 아니라 치욕스런 과거사는 철저하게 청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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