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은 새 소설인가
  • 남진우 (문학평론가) ()
  • 승인 199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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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지 첫 장편 - 객관성 인물형상화 사회비판에 결함
 신예작가의 처녀장편이 문단 안팎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한 작품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독서계에 유다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그 작품에 어떤 문제성·화제성이 잠복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만큼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이란 소설은 일단 출판전략 면에서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작품이 유발시킨 문단내의 열기 내지 소란이 곧 이 작품의 문학적 성취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먼저 우리는 저널리즘과 출판광고에 의해 이 작품에 씌워진 환상 중의 하나인 ‘새로운’ ‘이색적인’ ‘기존의 한국소설과 전혀 다른’과 같은 언급이 갖는 허구성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미 80년대 이인성 최수철 박인홍 등의 작가들에 의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정도로 되어버린 작단의 한 경향을 염두에 둔다면 이 작품이 서술방식에서 보여준 특이함은 그리 참신한 것도 심각한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 문학의 두께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R이 그러하듯이 하루 동안 읽고 버린 한권의 소설로 예단할 성질의 것은 아닌 것이다.
 현재 긍정과 부정, 찬사와 매도의 교차로에 서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색은 인간이나 사물을 가급적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그러니까 주관적 판단이라 감정의 개입, 비유와 수식을 철저히 배제한 채 R의 오관에 포착된 외부현실만을 집요하게 묘사해나가는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우리는 여기서 이 작가가 추구하는 이러한 객관적 묘사가 과연 어떤 문학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눈앞에 놓여 있는 책상 하나를 설명하는 데 단 한 문장을 소비할 수도 있고 책 한권의 분량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어떤 쪽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관점과 의도에 달린 것이다. 작가는 소설 말미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소설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자유의 확대-여기서의 자유는 단순한 정치적 자유에서부터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에서의 탈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뜻을 함축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바로 이점에서 결정적 파탄을 내비치고 있다. 즉 이 작품은 철저히 R이라는 인물의 시각에만 매몰되어 인물묘사나 사건의 진행에 있어 균형을 상실한 편향성을 노출하고 있다.

인물묘사·사전진행에서 균형 상실
 작가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R은 진리의 담지자처럼 그려진 반면 그의 아내는 한없이 우매하고 고루한 인습의 노예로, 정부인 J는 변덕이 심하고 허영심이 가득한 현대여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R의 부모는 가난하지만 매우 성실하고 사리판단이 분명한 사람인 반면 중산층의 표본적 삶을 누리고 있는 J의 부모는 위선과 가족이기주의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다시 말해서 작품 속의 모든 담론은 R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고 아내와 J 그리고 그녀의 가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끔 배분·축조되어 있다(페미니즘비평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작품처럼 여성이미지를 고도로 지능적으로 부당하게 취급하는 작품도 많지 않을 것이다). 기술적 측면에 있어서 이 작품이 보여주는 객관성은 인물의 형상화에 있어서 극도의 주관성과 상치되며 이는 작가의 애초 의도와는 달리 작가에게 어떤 자유를 선사해주기는커녕 작가가 설치한 일방통행로로 내몰리도록 구속한다.

 물론 소설 속의 한 인물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어떤 평가가 내려지도록 유도하느냐 하는 것은 작가의 권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R과 주위 인물들의 상호관계를 면밀히 검토해보면 우리는 R이라는 인물이 그렇게 옹호될 수만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R이 과연 아내나 J에 비해 도덕적 우위를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처신했느냐 하는 점도 문제이려니와, 귀국 첫날밤을 호텔이 아닌 장급 여관에 묵게 한 사실에 대해 분노한다거나, 현대는 상표의 시대인 만큼 우리나라도 그럴듯한 상표를 탄생시키기 위해 재벌들에게 협력해야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거나, 헤어지자는 J에게 그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R 역시 철저히 물화된 의식의 소유자이며 극도로 이기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소설 여기저기에서 한국사회를 프랑스 사회와 견주어 비판하는 것도 그 비교가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피상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비교의 단순성에 대한 자의식까지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렇다할 공감을 자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자기자신에 대한 냉철한 검토를 수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외부현실에 대한 비판은 곧잘 R이라는 인물의 자기자만으로 귀착되기 쉽다.

 아울러 작품 후반부의 R과 J 사이의 지루한 실랑이는 우리 사회의 폐쇄성과 허위의식의 암유로 읽혀지기보다는 작품 전체를 개인적 원한의 발산으로 격하시키는 데 일조한 감이 없지 않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한번 읽고나면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 치워버릴 작품이지 되풀이 읽기를 유도하는 혹은 되풀이 읽기를 견뎌내는 작품은 아닌 듯 싶다. 특히 어색하기 짝이 없는 대화체와 소설 곳곳에서 그리고 책 뒤에 붙은 ‘작가의 말’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허세섞인 오만함- 마치 키 작은 가짜박사 J를 내려다보는 R처럼 작가는 한국현실을 한국문학을 나아가 이 소설의 독자를 굽어보고 있는 듯하다-은 작품이 주는 감동을 반감시킨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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