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많은 '한 자리수' 임금 인상
  • 강철규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 ()
  • 승인 199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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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임금 인상률의 한자리수 억제를 경제정책의 가장 중요한 항목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정부가 임금억제를 중요시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임금이 지난 수년간 경쟁국보다 높게 상승하여 한국상품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저하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87년부터 89년 상반기까지 한국의 임금은 78%나 상승하였는데 이는 같은 기간 동안 일본의 14%나 대만의 52%에 비하면 월등히 높았다. 그 결과 국내적으로 인플레이션, 국제적으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금년에도 물가안정과 제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하여 한 자리수 물가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 자리수 임금억제정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물론 정부의 논리가 무조건 틀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의 문제점이 크다고 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퇴보하는 근로자 후생
 첫째 임금 가이드라인 정책은 실패한다는 것이 선진국의 경험이다. 예를 들면 미국이 1963년에 노동생산성에 맞추어 임금상승률을 정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임금 가이드라인 정책을 실시한 바가 있다. 그러나 그 정책은 실패하였다. 실패한 이유는 규제대상 범위가 너무 넓어 현실적으로 규제가 어려웠고 위반시 적절한 규제수단이 없었다는 것 등이다.

 둘째 근로자의 임금이 아무리 높아져도 집값·전세값의 상승을 따르지 못하여 근로자의 후생은 나아지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숭실대 노사문제연구소의 최근 조사연구에 의하면 6대도시 근로자의 가구당 전세보증금은 2년 전에 비하여 평균 4백 30만원이 올라 1천2백26만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88년 이후 2년간 전세금 상승액 4백30만원의 약 절반에 해당한다. 나머지 2백14만원은 전세유지를 위한 근로자들의 부채증가로 나타났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의 임금상승분은 전액이 집주인, 즉 주택 혹은 토지 등 자산보유자에게 다시 돌아갔다는 뜻이다. 오히려 도시근로자는 전세상승분 중 부족분을 메우기 위하여 임금상승분만큼 혹은 그 이상을 차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자리수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셋째 제조업의 공동화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나라의 제조업 근로자들의 임금은 몇몇 서비스분야의 종사자가 받는 임금에 비해 훨씬 낮다. 대표적인 예로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근로자의 임금과 카페의 여종업원의 소득은 천지차이가 나고 건설업의 근로자 일당은 6만~7만원까지 치솟고 있다. 누가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일하려고 하겠는가.

 넷째 업종별로 일괄적으로 한자리수 임금정책을 실시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산업에 따라서는 높은 부가가치를 내는 성장산업도 있고 낮은 부가가치밖에 내지 못하여 점점 쇠퇴하여가는 산업도 있다. 기업별로도 열심히 일하고 잘 경영해 수익이 많은 업체가 있는가 하면 경영부실로 적자를 내는 업체도 있다. 이때 종업원의 임금은 각 산업별 기업별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가 일률적으로 임금인상률을 한자리수로 억제할 경우 성장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의욕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며 이들 산업에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임금을 그 이상으로 올리려 할 것이다.

주택문제부터 해결해야
 마지막으로 임금상승을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보는 견해도 잘못된 것이다. 임금상승은 사후적으로 보면 분명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그 반대이다. 임금에 앞서서 물가가 오르는 것이 상례이다. 임금은 계약이 1년이지만 물가는 연중 계속 오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가억제를 위하여 임금의 억제가 필수적이라는 논리는 부분적으로 타당하지만 그 비중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정부의 적정통화량 공급정책과 재정팽창의 자제, 기업의 생산성향상 노력 등 여타 경제주체의 노력시 병행되어야 하며 그러한 가운데 근로자의 자제를 요구할 때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임금 한자리수 억제정책은 실효는 적은 반면 부작용은 큰 정책이다. 임금인상률은 다소의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산업과 기업에 맡겨놓는 것이 옳다. 정부는 오히려 근로자의 가계부가 적자로 떨어지지 않고 후생이 향상되도록 하는 정책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적어도 부동산투기 억제정책이 확실하게 추진되어 주택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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