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의 난에서 인생 지혜 터득
  • 여운연 경제부차장 ()
  • 승인 199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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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은 그 시각적 아름다움도 좋지만 보여주는 정신으로 해서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난을 키우며 서로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만의 독특한 ‘향’을 풍기고 있다.

 10년째 난을 키우고 있는 가정주부 朴壽子(48·서울 강남구 논현동)씨는 남성일색인 수만명의 난 동호인들 가운데 보기 드문 여성 애란인이다. 그는 무려 8백여개의 분을 갖고 있다. 이 정도라면 그가 노후의 꿈이라는 ‘난 가게 주인’을 지금 당장 한다 해도 손색이 없는 규모다.

 화초를 워낙 좋아해 한때는 선인장 등 열대식물에 흠뻑 빠졌던 박씨가 난에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은 친구의 권유로 관음소심을 키우고부터다. 일단 난에 손을 대보니 우선 소품인지라 이동이 자유로워 나이 들어서도 돌보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스스로 발하는 향은 더욱 일품이었다. 생명이 길고(5~10년), 잘만 키우면 촉을 남에게 남겨줄 수 있다는 점도 솔깃한 요소였다.

 5년 전부터는 자생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집안에 있던 열대식물 온실을 아예 난실로 대체했고 마다에 두 개의 온실을 지어 온통 한국 춘란으로 채웠다. 겨울철에 가온시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쉽게 욕심을 부리게 된 것이다.

 박씨 역시 여느 초심자처럼 처음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물주기. 첫 1년은 너무 물을 많이 주는 통에 뿌리가 썩어들어갔는데도 잎은 파랗게 살아있는지라 모르고 지나치기가 다반사였다.

 박씨에 따르면 난은 습기를 좋아하지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될 수 있는 대로 말려 키우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물을 줄 때는 남의 얘기를 듣지 말고 자기 집 환경에 맞출 것을 권한다. 가령 흐린 날이 계속되면 열흘에 한 번, 집 실내온도가 20도라면 5~7일에 한번씩 준다. 눈으로 봐서 난분 위에 깔아주는 화장토가 마른 지 사흘이 경과한 후가 좋다는 것이다.

 난을 키우며 느끼는 가장 큰 기쁨으로는 봄철에 새 촉이 올라올 때의 환희라고 한다. 해마다 한 촉씩 새로 나오는데 몸체가 건강할 때면 양쪽에서 나오기도 한다. 흔히 화초 키우는 재미가 꽃 보고 잎 보는 맛이라면 난에선 해마다 촉수가 늘고 거기에 꽃을 기다리는 마음은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씨는 한 촉의 난에서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고 한다. 알맞게 자라 더 이상 크지 않는 난의 생리에서 자족의 아름다움을, 어미촉은 죽으면서도 새 촉을 보호하는 데서 희생을,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눠 갖는 데서 이웃간에 따뜻한 마음의 교류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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