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환의 '대통령 만들기'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199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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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살리려 김영삼측 야전사령관 이종찬 진영의 '公敵 1호'


한정치 관측통은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김윤환과 박태준의 싸움"이라고 단정한다. 어차피 최대 계파인 민정계가 분열된 상태에서 어느 쪽이 민정계 인사를 많이 확보하느냐가 이 싸움의 관건이라고 볼 때, 민정계를 김영삼 태표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김윤환 의원과 민정계를 단합시켜 일탈자를 방지하려는 박태준 최고의원 간의 싸움으로 보는 것은 그럴듯한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김영삼 대세몰이를 주도하고 있는 김윤환 의원이 이종찬 의원 진영의 공격 목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로 모른다.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김영삼 대표와 맞붙게 될 이종찬 의원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손주환 청와대 정무수석, 최형우 정무장관과 함께 김윤환 의원을 문책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거명했다. 이들은 '엄정 중립'이라는 대통령의 뜻을 왜곡 전파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의원이 거론한 세 사람 중 손수석과 최장관은 장관급 고위 관리이다. 그러나 김윤환 의원은 맡고 있는 관직이나 당직이 없다. 그런데 왜 이의원은 김의원을 거론했을까. 기자들이 이 점을 묻자 이의원은 "대통령을 팔아 온간 짓을 다한 만큼 책임을 지는 것은 상식"이라고 답변했다. 즉 김의원이 당 총재와의 사적인 관계를 이용해 당원들을 현혹시켜 세몰이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이의원측은 가락동 연수원 매매 의혹 사건을 터뜨리면서 김의원을 공격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그를 흠집 내는 것이 김영삼 대표측의 전열을 흐트러뜨리는 지름길이라고 계산했을 법하다. 이의원측은 김의원을 김영삼 대세몰이의 총사령관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김의원은 그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가. 그가 6공 들어 원내총무, 정무장관, 사무총장을 역임한 여권의 실세라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런데 14대 총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무총장직을 물러난 그는 하달 후 김대표 진영의 핵심 인물로 등장했다. 지난달 28일 결성된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후보 추대위원회'의 기구표를 살펴보면 김의원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대책위는 명예위원장에 김종필 최고위원, 위원장에 권익현 당선자, 김재광 국회부의장, 이병희 의원을 추대했다. 총괄간사는 민정계의 김종호 의원, 공화계의 김용채 의원, 그리고 민주계의 김덕룡 의원이 맡고, 그 위에 대표간사를 김윤환 의원이 맡았다. 김의원은 명실공히 대책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대책위에서 그의 위상은 김영삼 대표가 경선에서 승리했을 경우 본선에서 그의 역할, 또 본선에서 승리했을 경우 그의 향후 위상을 예고해 준다.

현재 양측이 확보한 지구당위원장 숫자로만 보면 김영삼 대표측이 이종찬 의원 진영을 압도하가 있다. 김대표 추대위에 참여한 민정계 지구당위원장은 96명. 민정계 한 계파만 보더라도 과반수를 휠씬 넘는다. 거기에 민주계와 공화계까지 합치면 김대표를 지지하는 지구당 위원장은 전체 2백37명의 71%에 해당한다.

 

강한 흡인력으로 민정계와 JP 포섭

김대표 진영의 압도적인 세 확보에는 김윤환 의원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반김영삼 진영이 단일 부호 추대를 모색하던 지난 3월 31일 민정계 9인(김윤환 남재희 김용태 정순덕 김종호 정재철 김진재 이웅희 의원과 금진호 당선자)은 함계 모여 김대표 지지을 선언했다. 그후 김의원츤 특유의 흡인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자신의 계보를 활용해 김대표 세몰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는 김종필 최고위원이 김영삼 대표 지지 쪽으로 방향을 틀게 한 데에도 큰 힘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정계에서 소위 '허주(김의원의 아호)계'로는 남재희 박완일 김기배 이신행 김명섭 김진재 김한규 남평우 황철수 정영훈 이웅희 안찬희 함종한 이민섭 정종택 신경식 박정수 정동윤 김근수 유돈우 황병우 이상득 황윤기 장영철 정동호 박희태 권해옥 김종기 이승무 이상회 서상목 의원 등 30~40명이 꼽힌다.

김윤환 의원이 공식적으로 김대표 지지를 선언한 것은 민정계 9인 회동 때가 처음이다. 민정계 단일화가 암중 모색중인 상태에서 김의원은 민정게 일부의 따가운 눈총을 무시하고 과감하게 치고 나온 것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대한 부재론'을 조심스럽게 내비치면서 김대표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적지 않은 관측통들은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그가 결국 김대표를 파멸시키기 위해 김대표 진영에 위장 가담한 '트로이 목마'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김대표 선택은 벌써 훨씬 전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 선택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도박이었던 셈이다.

그가 김대표를 선택한 시점은 언제일까. 이것을 유추하기 위해 3당 합당 10개월 후인 90년 11월 말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때 그은 연세대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차기 대권 후보는 새로운 정치환경이 새사람을 만들어 내거나, 밖에서 옹립하거나, 현재의 지도자 중에서 나오는 등 여러 선택이 있겠으나 어느 경우든 14대 총선 이후 경선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뿐만 아니라 군출신 인사, 세대교체 대상자, 대구경북(TK)출신 인사가 대권 주자에서 배제돼야 한다는 이른바 '3비론'을 개진해 세인의 관심을 끌며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그 이전에 이미 김대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TK 배제론은 참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TK 핵심이엇기 때문에 강한 설득력을 지녔다. 반면 6공 권력의 핵으로 부상한 신 TK 세력에게는 일종의 도발이라고 할 수 있는 위험부담이 있는 발언이었다.

그는 제 5공화국 후반부터 주요한 정치적 갈등과 고비가 있을 때마다 중매자 노릇을 수행했다. 뿐만 이날 결정적인 순간에 민감한 문제에 대한 소신을 밝혀 뒤엉킨 정치의 가닥을 잡거나 토론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김의원은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던 지난해 11월 초 민자당 대통령후보는 총선 전에 대통령과 세 최고위원 간의 협의를 통해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발언을 해 당내에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에는 총선 전에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는 민주계와 총선후 경선을 통해 선출해야 한다는 민정공화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던 시기였다.

김의원은 정파간 이해가 얽히고 설킨 국면에서 그때마다 크고 작은 도박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의 도박은 무리수가 아니라는 데 특징이 있다. 그는 "정치는 대중에 기반을 둬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요체다"라고 강조한다. 탁상 정치는 공작적 차원으로 흐를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는 것이다. 김의원은 뛰어난 현실정치 감각의 소유자로 통한다. 정치권의 세대교체는 돼야 하지만 인위적인 세대교체는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내각제 추진론자였지만 개헌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일찌감치 내각제를 포기했다.

 

명분실리 살린 대담한 도박의 명수

김의원은 왜 김영삼 대표를 선택했을까. 그는 여러가지 정황을 감안해 볼 때 TK가 다음 정권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TK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국민정서가 팽배해 있음을 정확하게 인식한 것이다. 그는 김대표를 집권시켜 그 아래서 TK가 보호받는 것이 TK를 살리는 길이라는 판단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한 것이다. 많은 관측통은 김대표가 정권을 잡을 경우 특히 군과 행정부에서 30년 동안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TK 세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툥령의 임기가 5년이지만 취임후 1년은 업무를 익히고 자리잡는 데 지나가고, 마지막 1년은 레임덕 현상 때문에 실질적으로 통치권을 강력하게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3년이다. 그 3년 동안 각계 요소요소에 박혀있는 TK 세력을 다 교체시킬 수 없다는 관측인 것이다. 김대표 또한 집권하더라도 TK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지금 핵분열 현상을 보이는 TK 세력은 새로운 정권에서 재편될 것이고, 재편된 TK의 맹주는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김대표 집권 때 김의원이 TK의 맹주가 될 거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여권의 한 정치 관측통은 "우리 정치는 민주적 형태로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분점은 당연시된다"고 말한다. 권력 창출 과정을 볼 대 제7공화국은 5,6 공과는 달리 정파간 타협의 산물일 것이고 따라서 지금보다 다양한 색깔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의원은 이런 흐름과 정권의 성격을 일목요연하게 읽었는지 모른다. 대담한 도박을 하되 명분과 실리를 살리는 합리적이고 사려깊은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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