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팔아 돈 버는 ‘종말론’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1.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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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휴거설’ 개신교도 사이에 확산 ··· 가정파탄 등 피해사례 줄이어
2월3일 새벽 서울 동작구에 있는 ㅅ교회. 15평 정도의 지하 예배당에서 92년 예수재림을 주장하는 일단의 신도들이 밤을 세워 ‘성령의 강림하심’을 축복하고 있었다. 이들은 요즘 한창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92년 携擧’를 주장하는 종말론 목사 중의 한사람인 ㅎ목사가 이끄는 신도들이다. ‘아멘’과 ‘할렐루야’가 목사의 말끝마다 복창되는 가운데 진행된 이날 예배에서 특이한 것은 어린 아이들이 단상 바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신들린 듯 몸을 떨며 신의 계시를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종말론을 주장하는 대다수 교회의 예배가 그렇듯 이날 철야예배의 절정은 어김없이 ‘어린 종’들이 ‘입신’하는 과정이었다. 하얀 양복을 입은 ㅎ목사가 어린 종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자 어린 종들은 까무라치듯 뒤로 자빠져 한참동안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그것이 훈련된 동작인지 진짜로 신의 계시를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92년 예수님이 오십니다” “666표(현재의 신용카드를 대신할 바코드) 받으면 지옥 갑니다” ···. 사람들이 붐비는 역 근처난 번화가에 나도는 종말론 전단에 적힌 문구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666에 대한 해석을 EC통합과 관련지어 92년 휴거설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다 ‘어린 선지자’라고 알려진 하방익군과 권미나양 등의 믿겨지지 않는 계시를 혼합해 인류의 파멸을 경고하고 있다. 휴거는 가만히 있는 사람이 어떤 신령한 힘에 의해 하늘로 들어올려지는 현상을 말한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예수의 재림 때 휴거되는 것을 가장 큰 소망으로 간직하고 있다. 시한부 종말론이 교인들 사이에 급속도로 파고드는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92년 말세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로 꼽히고 있는 이는 다미선교회의 이장림목사. 다미는 ‘ 다가오는 미래’의 약자이다. 서울시내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종말론 관련 서적 중 가장 잘 나가는 책도 바로 이목사의 ‘다가오는 미래’ 시리즈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하늘문이 열린다≫ ≪경고의 나팔≫ ≪1992년의 열풍≫ 이다. 다미선교회는 92년 휴거설의 근거로 요한계시록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그리고 직통계시를 받는다는 진군(모 신학대 2년) 하방익군(고등학교 1년) 권미나양의 계시를 들고 있다.

 이장림 목사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92년 종말론’은 이제 서울에만도 20여개의 추종교회나 단체의 난립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대부분 목회에 한두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목사들이거나 개척교회 목사들이 종말론을 추종한다는 것이다. 같은 성격의 단체가 난립하면 으레 그렇듯 이런 종말론 단체들은 이제 서로를 적그리스도(대환란 시기에 나타난다고 하는 그리스도의 적)의 무리라고 공격하며 자기 세력의 확장에 여념이 없다. 하나님의 계시는 두 개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흔히 쓰는 말로 “촛대를 옮겼다”는 표현이 있는데 예수의 권능이 자신이 이끄는 교회를 옮아왔다는 얘기이다.

 다미선교회의 한 부목사는 “마귀들이 고도의 전술을 사용해 어린 양들의 객관적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있다”며 다른 종말론자들을 비난하고, 하군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비성경적인 계시에 매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때 이장림 목사와 함께 전도활동을 하던 하방익군은 지금 이목사에게서 독립해 서울 송파구에 다베라선교교회를 설립하고 계시설교를 펴고 있다. 현재 하군은 그 ‘계시’를 전하러 미국을 순방중이다.

 그런데 이들의 교세확장 방법이 아주 독특하다는 주장이 있다. 어떤 목사는 지방교회의 부흥회 강사로 초빙되면 목회자사회의 관례인 사례비를 받는 것이나 호텔에 숙소를 정하는 것을 정중히 거절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초청한 교회에서는 목사의 청빈함에 감탄하면서 그 교회에서 가장 부유한 신도의 집에 숙소를 정해준다고 한다. 그러면 며칠동안 숙식을 해결하면서 그 신도를 자신의 교회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이들의 실상을 잘 알고 있다는 김동한 목사는 “얼마 안되는 사례비를 받는 것보다는 깨끗한 이미지도 심고 재산을 통째로 삼키는 일석이조를 택하는 셈” 이라며 92년 휴거설을 빌미로 교세확장을 꾀하는 이들의 교묘한 방법을 꼬집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이들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라며 일축해버린다.

개신교단, 교계 차원에서 대응책 모색
 종말론자들이 횡행하면서 피해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인천에 사는 ㅂ씨(31 · 순복음교회 집사)는 부인이 종말론에 휘말려 가정파탄까지 당한 경우이다. ㅂ씨 부부는 주일마다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다니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러나 작년 8월 부인이 근처의 여호수아교회(손금룡 목사)에 나가면서 급기야 지난 1월 가정이 결딴나기에 이른 것이다. ㅂ씨는 “그렇게 순진하던 아내가 가정생활은 뒷전에 밀어둔 채 어떻게 종말론에 빠져들었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아내가 무섭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한다. 이들 사이에는 한 살 난 아들이 있지만 현재 신앙관의 차이로 별거중이다.

 사태가 이렇게 진전되자 개신교단에서도 교계 차원에서 시한부 종말론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임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종말론 추종세력을 ‘유사이단’으로 규정했으며 예수교장로회도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1월 29일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실에서는 예장연합총회 주최로 ‘인류역사종말론’이라는 주제강연이 있었다. 이날 총회신학교의 이창근 교수는 “한국인의 내면의식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기복신앙을  ‘제 논에 물대기’식으로 끌어들여 명예욕을 채우고 축재하는 데 종말론을 이용하는 세력들이 있다”고 평가하고 “92년설을 얘기하면 93년까지 살아남아 그 거짓을 증거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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