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 '기업 참여'놓고 敵前 분열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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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환경개발회의 앞두고 "기업 관심 유도해야" "기업과 야합할 염려" 맞서

농민운동가 李京海씨가 스위스 제네바의 가트(GATT) 사무국에서 할복자살을 기도한 날은 90년 11월5일이었다. 이씨의 할복은 협상에서 농민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 정부에 경종을 울리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흐른 오늘 한국의 환경운동은 이른바 '그린 라운드'라는 태풍을 맞고 있다. 6월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릴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씨의 예처럼 민간인이 할복하는 불상사는 없을 것 같다. 정부대표간 협상 외에도 각국에서 참가하는 민간대표들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발표하고 정부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공식적인 장치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이하 한국위)는 오는 6월에 있을 그린 라운드의 민간 단체 국제기구인 '92 지구포럼'에 참가해 독자적인 민간활동을 펼치게 될 한국 대표기구이다. 유엔환경개발회의가 끝날 때까지(공식일정은 6월12일까지임) 한시적으로 존재하게 될 한국위는 지난 3월6일 "정부대표만 환경문제에 관한 논의를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고 민간 차원에서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내용의 설립 취지문을 발표하고 정식출범했다. 4월10일 확대개편회의를 통해 조직의 골격을 갖춘 한국위는 공해추방운동연합(이하 공추련의장 최열) 외에 경실련, 대한 YMCA연맹 등 민간단체 70여개가 참여하고 있다.

 

피해 주민 빼고 공해기업 참여시킨 '공해추방운동연합' 독단이 불씨

한국위 출범의 바탕에는 '건강한 환경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둘러싸고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가 대립할 것으로 예상되는 그린 라운드 협상에서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가 깔려 잇다. 그러나 조직구성재정운영기업 참여 문제를 놓고 환경운동 진영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이 논쟁이 환경운동단체의 대명사격이며 현재 한국위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공추련 내부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끈다.

지난 3월23일 공추련 사무국 앞으로 2건의 문서가 접수됐다. 그중 하나는 회원을 상대로 "환경파괴에 비타협적으로 투쟁해 온 공추련의 전통을 굳건히 지키다"고 호소한 문서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위와 그 대표단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해 유엔환경개발회의 특별위원회 앞으로 보내는 공추련의 공개질의서였다. 대의원 成樂埈씨(32)가 주도해 만든 이 문서들은 '의견제시 방법이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조직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공추련 지도부로부터 배포를 금지당하거나 일부 항목을 삭제당했다.

문서에 담긴 주장의 핵심은 공추련이 주도한 한국위(설립 당시 집행위원 전원이 모두 공추련 간부였음)가 설립될 당시, 참여인사 명단에 공해피해지역 주민들이 빠져 있는 반명 유창순 전경련회장, 찬핵론자로 알려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金모 교수 등 이른바 '환경파괴의 주범이나 협력자'가 들어가 있어 지도부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의 참여부분을 언급한 대목이다. 문서는 "공추련이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지난해 페놀사건을 일으킨 두산그룹을 비롯, 공추련과 대립관계에 놓여 있는 기업체들은 한국위 대표단에 끌어들이려 함으로써 환경파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이다.

한국위에 대한 이러한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 3월30일 성낙준 간사를 비롯해서 처음 문제삼았던 지역직능위 소속 회원 6명이 한국위 추진과정에서의 공추련 독주조직운영의 비민주성 등을 이유로 집단 탈퇴를 선언했다. 4월7일엔 지역직능위의 입장에 동조했던 공추련교사모임 회원들이 또 다시 공식탈퇴를 선언했다. 공추련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4월18일자로 조직에 반기를 든 성낙준씨와 지역직능위 소속 간사들에 대해 각각 제명처분과 회원자격 일시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와 함께 공추련 지도위원으로서 지역직능위와 입장을 같이한 申英稙씨(환경만화가)에게는 회원자격은 유지토록하되 지도위원 위촉은 철회한다는 조처를 내렷다. 탈퇴와 징계의 상호 대립으로 치닫던 공추련 내분은 일단 여기서 멈추었다.

공추련 내부의 파문은 탈퇴자들의 주장이 바깥에 알려지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던 한국위로 비화했다. 공추련 탈퇴자들의 주장에 동조한 '안면도핵폐기물처분장설치반대투쟁위원회'(안면도반대투쟁위) '푸른한반도되찾기시민의모임'(푸른한반도모임) 등 공해지역 주민 환경단체가 한국위에 임하는 공추련의 태도에 이의를 제기하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3월27일, 안면도반대투쟁위는 한국위원회의 행사에 공해를 유발해 온 기업의 돈을 받는 일이 절대로 있어선 안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공추련 단체회원인 '고창군반핵투쟁위원회'도 성낙준씨 등 일부 회원들이 발표한 공추련 탈퇴 성명서에 지지를 표명했다.푸른한반도 모임 등 5개 서울지역 환경단체도 "한국위 구성이 너무 상층부를 중심으로 꾸며졌으며 민간환경단체의 환경행사에 기업의 도움을 받는 일은 전례 없는 것이므로 다시 생각해 보자"고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4월10일 열린 한국위 확대 개편회의를 위해 위원회측에서 작성한 문서는 이러한 안팎의 비판이 어느 정도 수렴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주요 쟁점이 됐던 한국위 주관 국내행사의 기업참여문제는 "기업의 재정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며 정책결정 과정에 기업이 참여할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정리됐다. 브라질에 파견할 대표단에도 공해핵피해지역 주민대표를 새로 포함시켰으며, 전노협전교조와 참가여부를 놓고 교섭에 들어갔다. 기업부문도 당초 입장에서 한발 후퇴해 기업인은 단순한 참관인 자격으로만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공추련 파문으로 불이 불었던 한국위 운영논쟁은 거듭된 토의를 거쳐 점차 수습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역사가 짧은 국내 환경 운동단체들에 운동의 방향, 효과적인 활동방법과 관련해 적지 않은 논쟁거리를 남겨 놓았다. "기업을 끌어들인다는 것이 자칫 기업과 야합해 환경운동의 본령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다. "공추련이 페놀사태의 주범 두산그룹까지 한국위에 끌어들이려 했다"고 주장하는 공추련 전 지도위원 신영식씨는 "아직 피해보상금 2백억원 지급 약속을 지키지 낳는 기업을 어떻게 페놀사건 피해자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한국위에 참가시킬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이에 맞서 한국위측은 "앞으로의 환경운동은 견제문제와 맞물릴 수밖에 없으므로 기업으로부터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유도해야한다”며 기업의 참여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국위에 참여한 경실련의 유재현씨(경제정의연구소장)는 "이제까지 환경운동은 공해추방쪽으로만 치중해왔다"고 지적하며 "환경운동이 급진적 이미지를 벗어나 좀더 대중화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열 정비 위해 이념논쟁 불가피"

한국위 구성 과정에서 사실상 기업의 참여를 받아들인 공추련의 입장은 이보다 복잡한 듯하다. 공추련의 朴相喆씨(30연대사업위원회 간사)는 공추련을 향한 일부 환경단체의 비판에 대해 "한국위 사업과 공추련의 전반적인 사업은 구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위의 차원에서 기업과 협조한다는 것이 곧 공추련 전체 성격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추련의 박상철씨는 "기업과 야합하고 있다는 말이 고의적인 음해였다는 사실을 이후의 행동으로 밝혀주겠다"고 장담했다. 한국위에 비판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서울지역 환경단체 푸른한반도모임의 김혜애씨는 "리우데자네이루회의가 한국의 환경운동을 되돌아보게 한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환경운동 진영의 통일성을 위해서도 이념논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위 구성을 계기로 환경운동단체들 사이에 제기된 이념성 문제는 리우행 이후 재론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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