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기업의 남다른 구석
  • 김재일 경제부차장 ()
  • 승인 1991.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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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시장조사 · 발상 전환으로 소비자 마음 한발 앞서 파악
어떤 기업이 성공하는가.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들이 모두 적자를 낼 때 매출액이 몇배씩 성장하는 기업이 있다. 아파트 건축을 시작하기도 전에 분양을 끝내고 이익까지 남기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인건비ㆍ자재비를 들여 완공한 후 비싼 광고비를 쏟아넣고도 이자도 못 건지는 기업이 있다. 이처럼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것은 출발할 때의 사소한 차이에서 비롯된다. 고객의 필요를 한발 앞서 아느냐 모르냐의 차이인 것이다.

 성공하는 기업가는 불리한 여건을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 기업의 성장으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본의 대기업가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불황 때 돈을 못 벌면 장사꾼이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나라 재벌의 성장과정을 보면 아직까지는 주로 정경유착과 창업주의 선견력에 의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기업 성공의 노하우를 알고 있는 회사만이 성장한다. 그런 기업이 지금 당장은 적자를 낼지라도 흑자로 돌아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창업자의 카리스마에서 탈피, 마케팅 전략을 잘 세워 성공한 기업은 적응력이 강하고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다. 빠른 속도로 변하고 다원화되는 사회와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고 예견하려면 평면적 사고에서 벗어난 입체 전략이 요구된다.

시티은행 수퍼신탁. 1년반새 2백억원 유치
 성공한 기업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다른 데가 있다. 성공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이테크마케팅연구소(소장 金榮漢)는 최근 마케팅에 성공한 기업 20개를 선정했다. 선정 기준은 자체 시장조사, 최근 2~3년간의 성장률, 환경적응 능력, 그리고 여타 기관이 선정한 10대 상품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것이다. 이 중 몇개를 골라 성공요인을 살펴보자.

 시티은행 한국지점은 ‘텔레마케팅’이란 획기적인 방법을 도입, 은행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꿔버렸다. ‘수퍼신탁’이란 상품은 3년 만기 50.1% 수익의 신탁예금, “1천만원을 3년 후 1천5백1만원으로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구체적인 광고가 나가자 전화통에 불이 날 정도로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빗발치는 문의전화를 고도로 훈련된 8명의 상담요원이 직접 받아서 친절하게 상담하고 “어느 지점의 누구를 만나라”는 도움말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담당자에게 묶어주었다. 고객상담부의 金南渟 차장에 따르면 상담요원들은 3개월간의 훈련을 통해 전문적인 상담기술과 상품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시티은행은 89년 5월 내놓은 수퍼신탁으로 지난해 말까지 약 2백억원을 유치했다. 김차장은 “전화 걸려온 횟수와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면 고객이 어떤 내용의 상품에 관심을 갖는지 알 수 있고 효과적인 접근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는 말로 텔리마케팅의 위력을 설명한다.

 우리나라 시중은행은 관행상 관료주의ㆍ정경유착ㆍ특권의식의 타성과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해 서민에게 ‘높은 문턱’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시티은행은 ‘은행도 이익을 내야하는 기업’쪽으로 발상을 전환, 고객과의 밀착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지금 시티은행은 우리나라 은행에 새로운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엘렉스컴퓨터의 ‘게릴라 전략’
 엘렉스컴퓨터는 ‘남다른 시장을 캐서’성공한 경우다. 삼보컴퓨터의 신화를 창조한 李潤基 사장이 “나의 회사를 갖고 싶어” 삼보에서 나와 자신의 이상에 맞는 엘렉스컴퓨터를 설립한 것이 87년. 이 회사는 창립 후 3년간 연평균 1백%의 신장세를 보였다. 88년 45억원이던 매출액이 89년 94억원, 지난해에는 2백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 목표액은 4백억원이다.

 수년간 고속성장을 하던 국내 퍼스컴 회사는 거의 모두가 지난해 적자를 감수해야했다. 89년 한국능률협회에 의해 최우량 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는 삼보컴퓨터까지도 어려움에 직면했다.

 퍼스컴 회사들은 너나할것없이 IBM 호환성 상품을 만들어 이전투구 양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다. 연말에는 연초 가격의 절반 수준도 안될 정도였다. 엘렉스컴퓨터 마케팅부의 이도훈씨는 “시장은 다품종 소량생산쪽으로 변하는데도 업체들이 이를 깨닫지 못한 채 소품종 대량생산을 계속한 것이 치명적이었다”고 타회사의 실패원인을 분석했다.

 반면 엘렉스는 IBM의 경쟁 품목인 애플사의 매킨토시로 도전했다. 처음에는 시장이 작았으나 점차 키워나갔다. 엘렉스의 전자출판시스템은 출판인쇄업계의 총아로 등장했다. 지난해 엘렉스는 외형을 곱절로 늘리면서 상당한 흑자를 남겼다.

 대구의 건설업체 청구주택은 신도시 아파트 분양 때마다 ‘청구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평촌 아파트 1차분양시 경쟁률 96 대 1, 분당 3차분양시 94 대 1, 분당 5차분양 때는 1백24대 1.
“집이란 뭐냐” 물음에서 ‘청구신화’ 탄생

 신도시 아파트 분양의 열기가 점차 가시는 가운데서도 경쟁률 1백 대 1 선을 고수하고 있는 ‘청구신화’의 비밀은 무엇일까. 73년 張壽弘 회장에 의해 설립된 청구주택은 지방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78년 아파트 건설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초기에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여기에서 청구주택은 스스로 ‘집이란 뭐냐’는 물음을 제기했고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집’을 지어야 한다는 대답을 얻었다. 특히 집 선택의 결정권이 주부쪽에 위임되고 있는 추세에 맞춰 ‘주부가 원하는 주택’에 착안했다. 그때까지 건설회사들은 소비자의 필요는 도외시한 채 ‘자기가 짓고 싶은 주택’을 건축했던 것이다.

 청구주택은 시장조사를 통해 주부가 원하는 집의 구조 색깔 가구 모양 등을 알아내어 주택건설의 자료로 삼았다. 청구주택의 성공비결은 바로 철저한 시장조사였다. 이 회사의 한 간부는 “기업들이 의외로 시장조사를 등한시한다”고 지적하고 “청구주택은 소비자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매년 시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구주택은 82년 서울사무소를 개설한 후 몇년간 단 한 채의 집도 짓지 않고 각종자료와 통계ㆍ정보ㆍ소비자의식을 조사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86년 서울 중계동 지역 6백60가구의 아파트를 첫 작품으로 내놓아 37 대 1 의 놓은 분양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청구주택은 가정자동화시설ㆍ실내어항 등 다른 주택에는 없는 ‘다른 것 한가지’를 첨가함으로써 차별화를 시도, 성공을 거둔 것이다.

유통계의 총아. 세븐일레븐
 최근 (주)코리아 세븐의 중간간부 2명이 회사의 유통조직개요ㆍ사업계획서 등 기밀서류를 빼내 상대회사에 넘겨준 혐의로 구속됐다. 신문에 1단 기사로 간단하게 취급된 이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 코리아 세븐은 미국의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측에 거액의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유통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었던 것이다.

 편의점(CVS)이란 24시간 영업하는 소규모의 슈퍼마켓. 지난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편의점 코리아 세븐은 ‘90년대 유통업계의 꽃’으로 부상하고 있다. 맞벌이부부가 늘어나고 야간활동 인구가 많아진 데다 합리적인 소비 패턴이 보편화되는 추세에 발맞춰 ‘셔터 없는 점포’ ‘작지만 알찬 매장’ ‘소형 만물상’의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주고객은 맞벌이 부부 청소년 독신자 직장여성들이다.

 미국의 세븐일레븐은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문을 여는 편의점으로, 30년대에 이미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이 이제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체제로 바뀐 것이다. 일본에는 60년대에 소개됐다. 세븐일레븐저팬은 현재 일본 최대의 유통점으로 성장했다.

 여기서 유의해볼 점은 미국 일본 한국에 편의점이 소개돼 붐을 일으키는 데 30년씩의 터울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소득 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민소득이 5천달러 이상이 될 때 비로소 이같은 소매형태가 먹혀들어가는 것이다. 유통 전문가들은 90년대초를 ‘한국 유통의 혁명기’로 보고 있다.

대우전자의 ‘뒤집어 생각하기’
 대우전자는 ‘뒤집어 생각하기’로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83년 대한 전선을 인수했으나 모든 여건이 경쟁사인 삼성ㆍ금성에 비해 불리했다. 6~7년 전까지만 해도 소비자가 대리점을 직접 방문해 제품을 확인하고 선택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대우전자 유통촉진부는 제품이 평준화되자 소비자가 상품안내 유인물만으로도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데 착안해 방문판매제를 도입했다.

 방문판매제는 특히 서울 여의도에서 큰 성과를 올렸다. 여의도는 주민들이 잠만 그 곳에서 자고 물건은 딴 곳에서 사올 정도로 독특한 생활양태를 가진 곳이다. 따라서 가전제품 대리점이 하나도 없다. 대우전자의 부녀사원들은, 낮에 집에 있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방문판매를 시도했다. 그런대로 반응이 좋아 방문판매액은 점점 늘어났다.

 지난 88년과 89년 연거푸 두차례나 ‘판매여왕’을 차지했던 여의도 팀장 白淑鉉씨는 지난해에는 9억7백만원어치를 팔아 86년 6월 입사 이후 판매액 누계가 20억원을 넘어섰다. 그녀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먼저 제공해주면 판매는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대우전자 홍보부 金南榮 부장은 “현재 전체 매출액의 30%를 부녀사원에 의존하고 있다. 소비자의 심리적 변화를 붙잡는 일에 비정규군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밖에 (주) 백화는 ‘차게 먹는’ 청주 ‘청하’로 청주의 기존 이미지를 바꿨고, 한국타이어는 예전에 ‘고무덩어리’정도로 여겨지던 자동차 타이어를 패션화해서 성공했다. (주)한샘은 컴퓨터 주방설계를 도입, 주방을 거실화함으로써 “5천년 주방의 역사를 바꿨다”는 평을 받는다.

 위의 성공사례를 살펴보면 몇가지 공통요소를 끌어낼 수 있다. 성공한 기업은 철저하게 시장 지향적이며 소비자 지향적이다. 하이마케팅 연구소의 김영한 소장은 “시장은 항상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끊임없이 변한다. 시대가 바뀌면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조직의 ‘자기부정’을 통해 창의성 발휘해야
 이응 마케팅에 있어서 타이밍의 중요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상품개발과 영업형태에는 적기가 있다. 너무 빨라도 늦어도 실패한다. 전자전시회의 역대 대통령상 수상 상품이 하나같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타이밍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준다.

 성공하는 기업은 추구하는 목표가 명확할 뿐 아니라 공략할 시장의 과녁이 분명하다. 조직 또한 젊고 단순해서 회사의 가치관에 잘 맞춰져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한다.

 마케팅에 있어 발상의 전환과 창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존의 선입관 습관 체제 조직에서 탈피, 과감한 자기부정이 요구된다.

 문제는 새로운 것을 개발하면 다른 회사에서 금방 따라온다는 점인데 창의력이 있는 회사는 그 다음 단계를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실패하는 기업은 밖으로 경직돼 있으면서도 속은 유약한 수박같은 조직이다. 성공하는 기업은 외양은 부드러우나 안으론 엄격하고 기업의 가치관이 확고한 복숭아형 체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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