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도 한보 ‘약’먹고 비틀
  • 김당 기자 ()
  • 승인 1991.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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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 관련 거액 촌지수수 공식화…검찰ㆍ보도 ‘움직임’ 없어 의혹 확대

정경유착 또는 정ㆍ경ㆍ관 유착의 6공비리라고 언론이 이름붙인 ‘수서특혜’ 사건은 이른바  제4부라고 일컫는 언론까지 한몫한 정ㆍ경ㆍ관ㆍ언 유착의 총체적 비리라고 고쳐 불러야 할 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보그룹 홍보실에서 서울시청 기자실에 촌지를 뿌렸다는 소문이 언론계에 떠돈 것은 지난해 9월께부터였다. 이때만 해도 한보에서 ‘무슨 짓을 꾸미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때’였다. 검찰의 발표대로라면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평소에 친분이 두터운 장병조 청와대 비서관에게 서울시에 압력을 넣어달라고 부탁하면서 금품을 제공했던 때가 지난해 10월경이다. 그러니 정회장은 장비서관에게 청탁하기 전인 예비음모 단계에서부터 이미 언론에 ‘무슨 용도인지도 모를 약’을 뿌렸다는 말이 된다.

이 약이 어떤 약인지는 지난해 12월13일부터 일부 언론이 국회건설위에서 한보주택 및 26개 직장연합조합의 수서택지 특별공급을 위한 청원을 받아들여 서울시에 의견을 통보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효험’이 드러났다. 이때부터 ‘한보와 시청기자단 사이의 촌지수수 및 이에 따른 축소보도설’이 기자협회와 언론노동조합연맹 등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문으로만 나돌던 ‘촌지설’은 지난해 12월21일자 <기자협회보>를 통해 언론계에 공개되었다. ‘시청기자단 촌지설 파문’이라는 제목을 단 가십기사의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상당수 출입기자들이 촌지수수 인정”

“상당수 출입기자들은 90년 7월초 한보로부터의 촌지수수는 인정한 반면 촌지가 기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들. 상당수 시청기자들은 관련 어느 부처 기자보다도 자신들이 앞서서 보도ㆍ해설ㆍ기자수첩 등을 통해 수서택지 특별공급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12월13일 이후 각 언론의 관련기사들을 검토해보면 보도 시기, 문제점 지적의 강도에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대체로 이번 특별공급이 문제가 있다는 논조를 보이고 있어 촌지에 따른 기사왜곡을 명백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

기자협회에 따르면 당시 조사에서 시정 출입기자단 간사를 통한 1천만원 수수설과 3천만원 수수설이 나돌았는데 출입기자 중 일부는 20만원에서 30만원씩 받았다고 말해 촌지수수는 확실하나 출입기자단 간사는 이를 부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협회보>에서 공개한 촌지설 파문은 액수가 크지 않고 특히 당시에 한보로비설이 퍼진 청와대나 정치권에 견주면 ‘새발의 피’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서특혜의 본질을 호도할 우려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탓인지 크게 번지지는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2월초 맨먼저 1면 머리기사로 치고나온 <세계일보>(2월3일자)를 비롯하여 언론이 수서택지 특혜분양 사실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해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양상이 달라졌다.

2월8일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회동을 마치고 민자당사로 돌아온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청와대 개입설 보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수서사건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를 하기로 했다”과 회동결과를 밝히는 한편, 특히 “국민들 가운데 언론에 성역이 있다는 말이 있다”고 말해 마치 언론에 대한 모종의 조처가 있을 것처럼 예고했다. 김대표는 이내 “일반론을 설명한 것”이라고 후퇴했지만 같은 날 검찰에서도 한보의 로비대상 언론인 수사방침을 흘려 단순한 일반론이 아님을 뒷받침했다.

검찰에서 흘린 것을 물고늘어진 것은 <한겨레신문>이었다. 이 신문(2월10일자)은 1면 머리기사에서 ‘한보회장ㆍ사장 내일중 구속’ ‘검찰, 건설위원장 등 의원4명 곧 소환’ ‘로비자금 관련 언론인 수사 비쳐’ 등의 제목을 나란히 뽑아 언론인 관련설을 부각시켰다.

<한겨레신문>은 1면에서 “검찰은 한보주택이 일부 언론인에게도 로비자금을 뿌렸다는 첩보에 따라 일간신문ㆍ방송의 편집국 및 보도국 간부와 경제ㆍ사회부 기자들에 대해서도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이 신문은 15면에서 “이정웅 한보그룹 홍보담당 상무는 지난 8일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수서택지를 주택조합에 공급한다는 서울시쪽의 공식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가급적 수서택지에 관한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시청 출입기자단 등 언론인들에게 촌지를 준 것은 사실’이라고 언론에 대한 로비설을 일부 시인했다”고 밝히면서 “이밖에 한보쪽은 언론사 주요 간부들에게 수서택지 공급의 불가피성을 나름대로 강조하면서 로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수서 관련 언론인 촌지수수와 로비가 공식화된 셈인데 그러나 이상무를 함께 취재한 다른 신문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한편 2월18일 수서특혜분양 사건 수사결과 발표에 이어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에서 최명부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수서특혜 언론인 연루설에 대해 “그러한 첩보를 입수했으나 앞으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돈을 받은 시기와 명목ㆍ액수 등을 따져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내사 또는 수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변, 사태추이에 따라 수사를 할 수도 안할수도 있다는 애매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다. 검찰수사 발표 다음날 서울시내 가판에 깔린 언론전문 주간신문인 <매스컴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언론인 거액수뢰 의혹설’을 보도하는 한편 3면에서는 ‘수서회오리 언론계도 강타’라는 제목으로 촌지관행을 다룬 해설기사를 실어 언론계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현재 언론인들의 수뢰설에 대한 물증확보를 위해 은밀한 내사를 벌이고 있으며 범법사실이 드러나면 구속수사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수서파문은 조만간에 언론계까지도 강타할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신문은 뇌물수수 관련 출처를 밝히지 않고 ‘알려졌다’ 또는 ‘전해졌다’고 간접 보도하고는 있지만 지난해 터진 ‘시청기자실 촌지설 파문’과는 달리 구체적 액수와 시기, 관련 언론인 등을 거론하고 있어 언론계 내부에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와 관련 <매스컴신문> 편집인 이연원씨는 “거액 촌지수수 보도가 나가자 신문ㆍ방송 편집국 간부들에게서 관련 언론인 명단을 확인하려는 문의전화가 여럿 걸려왔으며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전화로 관심을 표명한 뒤 신문을 1백부 사가지고 갔다”고 밝히고 있다. 이씨는 이 기사의 신빙성을 묻는 질문에 “근거 자료없이 막강한 언론을 상대로 한 폭로성 보도를 할 수 있겠느냐”고 일축하면서 출처가 검찰쪽임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작 검찰쪽에서는 이를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대검 공보담당 배재욱 검사는 “정구영 검찰총장과의 기자간담회가 열린 2월21일 오전에 출입기자들이 확인을 해와 그런 신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면서 “검찰에서는 기자들을 내사한 적도, 그 신문과 접촉한 적도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한 언론인은 “검찰에서는 촌지 액수와 시기ㆍ명목 등을 적은 언론인 명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조만간 언론사에 통보하거나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언론계 ‘본질 호도 가능성’ 우려 표명
이 언론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수서 관련 보도가 처음 나오기 시작할 때 이미 일부 시청 출입기자 중 1진은 3백만원, 2진은 50만원씩 나누었는데 이때 <ㄱ일보>와 <ㅅ일보> 기자는 1ㆍ2진 가리지 않고 50만원을 받은 차별대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또 서울시에서 택지공급방침을 발표한 1월21일께도 한보는 일부 언론사 사회부장ㆍ편집국장에게 각각 1천만~2천만원식 촌지를 뿌렸는데 이때도 위 두 신문은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에서 예상과 달리 거의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 나서자 한보에서는 급한 나머지 8천만원으로 시청기자실 불을 끄려고 했고, 4천만원을 전달받은 모방송사 ㄱ기자는 2천만원을 먹고 나머지 2천만원을 7명이 3백만원씩 분배했으나 일부 기자는 촌지로 보기에는 액수가 너무 커 거절하거나 되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과 보도에 대해 언론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보도는 자칫 언론의 발목을 잡아 이번 수서사건의 본질을 호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처럼 수서 관련 촌지파문이 정ㆍ경ㆍ관ㆍ언 유착이라는 총체적 비리로까지 도지고 있으나 정작 검찰과 이번 사건에서 검찰보다 앞질러 ‘수사력’을 발휘했던 언론 모두 아무런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오히려 더 큰 의혹을 사고 있다.

지금대로라면, 검찰에서는 아직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검찰수가는 물론 검찰수사를 이끌었던 언론보도에도 성역은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서파문에 연루된 언론인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관련 언론에서 명예훼손의 진상을 밝히거나 적어도 사실 그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면 ‘침묵과 공존의 카르텔’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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