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사회의 적 '정보 악용 買辦'
  • 안병찬 (편집인) ()
  • 승인 1993.07.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방시대를 맞아 외국 세력을 위해 정보를 악용함으로써 사욕을 채우려는 또 다른 악덕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이행하는 길목에서 나타나는 증상의 하나가 정보의 상품화이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 확대됨으로써 산업정보의 거래와 유출이 시작된다. 국가 기밀의 해외 유출이 스파이 논쟁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중국의 鄧小平채재가 개방 정책을 넓혀가던 84년 서독 시사주간지《슈피겔》북경특파원 티지아노 테르자니(중국 이름 鄧天諾)는 공안국에 연행되어'골동품 밀반출 혐의'를 시인한 후 추방되었다. 외국인을 상대로 국가 기밀을 보호하고 대간첩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83년 6월 국무원 직속 기구로 창설된 중국 국가안전부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가혹한 비판자인 테르자니를 지목해 왔던 것이다. 테르자니가 북경을 떠난 다음날인 4월9일 최초의 외신기자 클럽이 북경에서 문을 열었으니, 테르자니 추방과 개방이 시기적으로 묘하게 교차한 셈이었다.

 일본 후지 텔레비전 서울지국장에게 공군 항공기 전력배치 현황이나 전환기 군사대비태세 계획 등 2급․3급 군사기밀을 넘긴 사람은 국방정보본부 소속 현역 소령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개방의 전환기를 맞던 89년부터 기밀 서류들을 넘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경우 군사기밀보호법이 언론통제적인 독소 조항을 담고 있다는 점은 사건과 별도로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일본 언론인이 한국 군사기밀을 빼내 안보에 관한 글을 써왔다는 혐의를 고려한다면 2․3급 군사기밀은 분류상에 과장이 없다고 할 때 어쩔 수 없이 민족안보와 깊이 관련된다. 따라서 국방정보본부 소속 소령의 행위는'외세의 앞잡이'로 비치기 십상이다.

사욕 위한 외세 변호는 반역행위
 개방된 한국 사회에서 요즘 고개를 들고 있는 또 다른 악덕은 외국인이나 외국 세력을 위해 맹목적으로 봉사함으로써 사욕을 채우는 것이다. 개인이 이익을 쫓아 외국인이나 외국 세력을 변호하고 대변한다고 해서 모두 악덕이라는 말은 아니다. 누가 봐도 분명한 선덕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외국인이나 외세를 업고 그릇된 행동과 비뚤어진 변론을 한다면 악덕행위를 넘어 매판행위로 몰릴 수 있다. 민족에 대한 악덕이나 매판행위는 폐쇄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사회에서만 거론되는 논제가 아니다. 그것은 문민 사회에서 더욱 분명한 소리로 논의되어야 할 주제이다. 동족을 겨냥한 악덕․매판 행위는 열린 사회에서 오히려 더욱 엄중 문책할 대상이 되는 법이다.

 개방의 특성은 숨김 없이 터놓고 모두에게 기회를 허용하는데 있다. 개방의 그같은 장점을 허점으로 악용하여 외국 세력을 변호하고 외세와 자기 한몸의 무한한 금전적 이익을 노리는 부류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일부 법률 전문가들이다. 그런 법률 악덕배는 동족이나 내국 기관의 약점을 잡다 돈을 벌 것이 없나 이것저것 들추어내서 외국 세력을 꼬드겨 앞잡이 노릇을 한다. 그중에는 미국의 잣대와 미국식 사고방식을 우리 사회에 끌어들여 내국 기관을 상대로 액수가 수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터무니 없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명예훼손 명목으로 걸어보는 자들이 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계산한 것이 분명하다.

명예훼손 조항 악용 말아야
 동기가 불순하기 짝이 없으므로 그런 부류는'외세의 주구'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물론 외국에서 배운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바르게 살려 열린 시대의 개방 사회에서 합목적적인 데 쓰려고 힘쓰는 국제 변호사들이 더 많다. 이들은 외세의 주구 노릇을 비판할 뿐 아니라 상호동화작용의 매개자로서 전문적 미덕을 발휘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기능은 외면한 채 사욕만을 추구하여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업으로 삼는 악덕 국제 변호사들의 정체는 멀지 않아 개방 사회에 똑똑히 노출될 터이다.

 <중앙일보>가 전면적인 사과문을 냈는데도 취재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걸어 구속한 행정부의 언론간섭적인 행위는 국내 문제일 뿐이다. 이를 두고 언론계는 행정권적인 횡포라고 비판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정부와 언론의 갈등 관계가 빚은 전형적인 사건으로 분류할 성질이다. 그렇지만 몇몇 국제 변호사가 미국의 잣대로 수백만 달러대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거는 분별 없고 근거 없는 행위를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권련의 횡포'와는 차원이 다른'외세의 횡포'이다.

 우리는 일본제국주의라는 외세에 지배당했을 때 많은 민족 언론인이 수난당한 일을 알고 있다. 일제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사실 유무를 불문하고'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백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 320조 1항을 악용하여 언론을 탄압하는 방편으로 활용했다.

 일제 외세가 언론을 탄압할 때 가장 손쉽게 쓴 무기가 명예훼손 조항이었고, 20년대에 특히 이 조항을 남용하여 취재가자는 물론이고 편집인과 발행인이 한꺼번에 피소당하는 일이 잦았다.(한국 외국어대 정진석 교수 저《언론인 수난》 참조).
 일제가 기자를 고소한 사례를 보고 떠오른 것은 최근의 <중알일보>사건만이 아니다. 90년대에 명예훼손 조항을 악용하는 새로운 유형의'정보 매판'이 나타났다고 우리는 규정하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