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교가 대륙별로 뭉치기 바람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1.03.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ECㆍ아세안클럽 등 4개 발족 ‘이익단체’로서 관심사 토의

걸프전 종전 하루 뒤인 3월1일 오후 서울 한남동에 있는 이슬람중앙사원. 이 사원에서는 걸프전쟁중엔 물론 89년 10월 부임 후 단 한번도 거르지 않았던 버르한 가잘 주한 이라크 대리대사의 예배참석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비록 예배 시각인 1시보다 25분 정도 늦긴 했어도 가잘 대사는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매주 이슬람교도의 합동예배일인 금요일 이 시각이면 나타났던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등 여타 이슬람권 대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이라크 대사와의 조우는 불발로 끝났다.

이슬람중앙사원은 단순한 예배장소가 아닌 서울에 사는 이슬람권 외교관과 그들 가족 등의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해왔다. 특히 매주 금요일 합동예배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모든 이슬람교도가 의무적으로 참석하게 돼 있어 지난 금요일의 이슬람중앙사원은 걸프전쟁 이후 이슬람건 외교가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장이 되기에 충분했다. 현재 서울에 상주하는 이슬람권 공관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말레이시아 대사관을 포함 모두 15곳. 이슬람권 외교관들은 그동안 이렇다할 친목단체없이 매주 금요일 사원에 모여 친목을 도모해왔다.

공식적 친목모임이 없는 이슬람권 외교가 와는 달리 주한 외교단체내에는 아세안(동남아사아 국가연합)클럽, EC(유럽공동체)클럽, 아프리카클럽, 라틴아메리카클럽 등 4개의 ‘블록외교단’이 구성돼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주한외교단은 세계보건기구 등 6개 국제기구대표부의 대표들을 포함해 모두 82명의 외국공관장으로 구성돼 있다.

주한 EC대사들 월1회 정례회동
이중 지난 70년대초부터 활동해오고 있는 EC클럽은 블록외교단의 선두주자인 셈. 주한 EC대표부의 김동욱 경제담당관에 따르면 초기에는 일본등 비EC회원국도 참여하는 형태로 운영되기도 했으나 작년 3월 EC대표부가 서울에 개설되면서 EC 12개 회원국으로만 이뤄진 공식협의체를 발족하게 됐다는 것이다. 주한 EC대사들은 월1회 정례회동을 갖는다. 이와는 별도로 상무참사관들이 월1회 모임을 갖고 있으며 문정관들도 부정기적이긴 하지만 2개월에 한번꼴로 만나 현안을 협의한다.

EC클럽이 독특한 점은 여타 클럽이 친목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비해 실무적 성격이 강한 ‘이익단체’라는 것이다. 길레스 아누일 주한 EC대표부 대표는 “우리 클럽의 목적은 공동의 관심사, 특히 경제분야의 이해갈등을 조정하고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EC클럽이 작년 12월 한국의 상공장관과 재무장관을 초청, 간담회를 가진 것에서도 클럽의 실무적 성격이 잘 나타난다.

EC클럽과는 달리 친목단체 성격이 강한 아세안클럽도 작년 7월에 정식 발족해 나름대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67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5개 동남아국가로 이루어진 아세안(ASEAN)은, 최근 십수년 사이 이 지역이 무시 못할 경제권으로 부상한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클럽의 영향력을 더해가고 있다. 한국정부가 지난 89년 11월 통상 등에 대해 아세안과 협상할 수 있는 창구가 될 ‘부문별 대화 상대국’ 그룹에 가입한 것도 아세안의 중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의 마퉁당 공보관은 “아세안은 운영내규상 부문별 대화 상대국과 공식대화 채널을 확보토록 하고 있다”고 밝히고 “서울의 아세안 대사들이 정례모임을 갖는 것은 그런 필요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세안대사들은 공식발족에 앞서 비공식적으로 지난해 2월부터 월1회 정기적 모임을 가져오고 있다. 특히 오는 5월 하순에는 한국정부가 ‘아세안주간’을 선포하게 돼 있어 이 기간중에는 한국종합무역전시관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마퉁당씨는 귀띔한다.

한편 지난 88년 주한대사 5명으로 출발한 아프리카클럽은 최근 9개국 대사의 모임으로 확대됐다. 가봉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이 모임은 단순한 친목을 넘어 향후 아프리카의 제반 관심사 토의는 물론, 아프리카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혀 주목되고 있다. 이 클럽에는 라이베리아 리비아 나이지리아 모로코 스와질란드 튀니지 수단 가봉자이르 등 9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이 클럽은 매월 마지막 목요일 정례 대사모임을 가진다고 한다.

이밖에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등 라틴아메리카권 대사들도 월1회 정례회동을 갖고 있는데, 특히 아니발 카살 주한 파라과이 대사는 주한 외교단장을 맡고 있다.
한 외교분석가는 이같은 외교단내의 블록화 현상에 대해 “선진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며 “1백개국 이상과 수교를 맺고 있는 우리의외교가 그만큼 컸음을 실증해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같은 블록 외교활동에 대해 외무부 실무관계자들이 “그런 클럽이 있다는 정도만 알지 상세한 내용은 모른다”며 남의 일처럼 방관하고 있음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