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남미式 사찰 제안
  • 한종호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3.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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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회담서 미국측에 …정부, 당혹감 속 대응책 마련 부심

제1단계 미 . 북한 회담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북한이 뉴욕 회담에서 미국측에 새로운 사찰 방식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청와대와 정부 관련 부처가 입장을 정리하기에 부심하고 있다.

 새로 제시된 사찰 방안은'브라질 . 아르헨티나 방식'이라 불리는 쌍무적 검증 체제와 유사한 형태로, 남북한이 주체가 되어 상대방의 핵시설을 사찰하고 거기에 국제원자력기구가 제3자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남미대륙의 주도권 경쟁 차원에서 핵개발을 서둘러 온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탈냉전 이후 핵 경쟁을 중단하고 중남미 비핵지대화조약(트라테로코 조약)에 뒤늦게 가입했다. 두 나라는 핵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가 개입하는 상호사찰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상호사찰과 국제사찰을 조합한 이 방식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호주의 핵문제 전문가 피터 헤이즈는 《시사저널》과의 회견에서"작년과 올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 당국자들에게 브라질 . 아르헨티나 사례를 소개하고 관련 자료를 전달한바 있다"라고 말했다. 

 애초에 미국은 회담 의제로서 △북한의 핵금조약 복귀 △국제 원자력기구의 특별사찰 △남북한 비핵선언 이행 등을 내걸었지만 공동성명에서는 △핵금조약 탈퇴 효력의 임시 정지 △국제원자력기구의 공정성 보장 △남북 비핵선언 지지로 추상적 원칙을 마련하는 선에 머물렀다. 회담이 끝난 뒤 국내에서는 사찰 문제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는 점을 이유로 비판 여론이 높았다. 국제원자력기구는 회담 직후 북한측에 공한을 보내 사찰 문제를 토의하자고 제의했으나, 북한은 최학근 원자력공업부장 명의의 6월26일자 서한에서"7월14일 열리는 2단계 북 . 미 회담 이후에나 보자"며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최근 미국측으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전달받은 뒤 청와대에 비상이 걸렸다. 북측의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뚜렷한 원칙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에는 마치 한국과 미국정부가 이같은 방안을 북한측에 제의할 것을 검토하는 것처럼 잘못 보도됐다. 특히 한승주 외무부장관이 지난 6월30일 관훈토론회에서 이같은 방안에 조건부로 반대 입장을 표시한 것을 두고 청와대와 외무부가 대립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북측의 요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 6월10일 빈 주재 북한대사 김광섭이'핵금조약에 복귀하지 않고도 투명성을 입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또 미 . 북한 회담 북측 대표인 姜錫柱 외교부 제1부 부장은 6월19일 중앙방송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우리는 회담에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NPT)에 복귀하지 않고도 우리나라와 주변 환경의 실정에 맞게 핵 전파방지를 담보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가장 합리적인 핵 문제 해결방도를 제시하였다"라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이 이같은 제의를 하고 나온 배경에 대해 정부 관련 부서에서는"핵금조약 탈퇴가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후계자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는 방안을 찾으려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방안이 채택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브라질 . 아르헨티나 방식의 핵심은 핵금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끼리의 사찰에서 객관성 보장을 위해 국제기구를 참여시킨다는 점이다. 강석주 부부장은 앞의 담화에서"핵금조약 복귀 문제는 논의할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핵금조약 제제를 유지하는 것을 외교 목표로 삼고있는 미국이 북한의 핵금조약 탈퇴를 사실상 용인하는 이같은 방식에 합의해줄 리 없다. 민족통일연구원 전성훈 책임연구원은"핵 의혹을 해소하는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임시 조처라면 몰라도 항구적 사찰 체제로는 적합지 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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