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어도 뿌리깊은 나무 JP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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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에 타격 줄 수 있는 ‘역설적 실세’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민자당 金鍾泌 대표에게 이 말은 꼭 들어맞는다. 김대표의 발언은 번번이 다른 쪽으로 비켜나가 파장을 일으킨다. “80년 신군부에게 골동품과 서화를 강탈당하다시피 빼앗겼다”는 그의 발언은 오히려 야당으로부터 “재산 축재 과정을 밝혀라” “5.17 세력은 결국 5.16의 사생아가 아니냐는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김대표는 뿌리깊은 나무이다. 3김이라고 불리며 金泳三 대통령.金大中 전 민주당 대표와 함께 한국 정치사의 한 주역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그러나 그 깊은 뿌리는 역사적인 부담으로도 작동한다.

 5.16 주체 세력으로 한.일 국교정상화를 이끌었고 유신체제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그의 이력은 ‘권력형 부정축재자’ ‘정보 정치의 원조’ ‘유신 총리’ ‘제2의 이완용’이라고 비판받는다. 지난 7월5일 민주당 李富榮 최고위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국무총리는 이완용으로 자처한 김종필 대표를 집권당 대표직에서 물러나도록 대통령께 건의할 생각이 없는가”라고 치고나옴으로써 다시 한번 김대표의 ‘역사성’을 문제삼았다. 김영삼 정부 출범직후 용공 음해 사과발언, 역사의 기승전결론을 내세우며 5.16의 민족사적 기여와 정당성을 정면으로 거론한 이른바 ‘5.16발언’을 둘러싸고 야당은 이미 두차례나 집권당 대표의 퇴진을 요구했다. 따라서 이최고위원의 공세는 세 번째 퇴진 요구인 셈이다.

 그러나 불어대는 바람에도 김대표의 당내 위상은 흔들림이 없다. 집권 초기에만 해도 ‘시한부 대표’ ‘허약한 얼굴 마담’이라고 여겨지던 그의 입지는 오히려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튼튼해지고 있다. 이최고위원의 질문 공세에 민주계인 黃明秀 사무총장이 “민주당 이대표를 가만 놔두지 않겠다”며 맞불 작전을 불사할 정도로 당 수뇌부는 ‘김대표 보호하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바깥에선 바람 잘 날 없지만 안에서는 날로 입지가 강화되는 상황은 김대표의 발언에서도 엿보인다. 골동품 발언 파문에 이은 국회 공방전 직후 열린 지난 7일 민자당 고위당직자회의에서 김대표는 “부덕의 소치로 그동안 주변에 심려를 끼쳐서 미안하다. 그런데도 당이 대표를 보호하기 위해 합심해 애써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김대표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각은 ‘불안함’ 그 자체였다. 민자당 경선 과정에서 막판에 김영삼 후보를 미는 쪽으로 극적으로 선회하긴 했지만, 6공 내내 그는 “내각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양김은 물러냐야 한다”는 등의 발언으로 김대통령을 견제해온 대표적 인물이었다. 공화계 의원들의 탈당과 진영 혼란으로 당내 기반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한때 대표직 사퇴 심각히 고려
 4월9일 민자당 상무회의에서 그는 일부의 관측을 뒤엎고 김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대표직에 취임했다. 그러나 당헌 개정으로 대표최고위원이라는 명칭은 대표위원으로 달라졌다. 임기도 확실히 보장되지 않았다. 총재와의 관계가 수직적으로 설정됨에 따라 권한이 축소됐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김대표의 수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른바 ‘온고지신론’ ‘속도 조절론’ ‘골프 발언’ 등이 당 안팎에서 개혁에 대한 문제 제기성 발언으로 해석되면서 오래 못가는 게 아니냐 하는 관측이 대두됐다. 주변의 반응에 비교적 초연한 태도를 보이던 김대표도 이때만은 “진심을 달리 보면 한이 없다. 개혁을 하더라도 천천히 다져가면서 하자는 이야기인데…”라며 섭섭한 심경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토로했다. 특히 골프 파문이 일자 그는 대표직을 내놓을 뜻을 굳히고 적당한 때를 찾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당 개혁 실세 崔?佑 총장이 아들의 부정입학이라는 돌발 변수로 전격 사퇴하면서 김대표는 사퇴할 시기를 놓쳤다. 김대통령도 적극적으로 그의 상한 마음을 달래 주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명주.양양 보궐선거 공천자로 金命潤 고문이 내정되고, 민주계 일부가 “김대표의 퇴장은 시간 문제다. 선거만 잘 끝나면 큰 변화가 올 것이다”라며 당 지도부 개편을 은근히 흘리고 나서자 다시 김대표의 심기는 극도로 불편해졌다. 특히 6월3일 김대통령이 취임후 첫 기자회견에서 5.16을 ‘역사를 후퇴시킨 큰 시작’이라고 규정한 사실은 당내에 묘한 파문을 일으키며 김대표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강타했다. ‘5.16 발언’으로 말미암아 야당의 집중 포화를 맞고난 뒤 채 몸을 추스리기도 전이었다.

 김대표는 김대통령에게 배수진을 치고 사퇴 의사를 간접 표명했다. 정가에서는 “김대표는 퇴장해도 그냥 물러서지는 않는다. 반드시 개혁 세력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따끔한 충고를 하고 물러선다”는 이른바 ‘폭탄 선언설’이 떠돌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두 사람 간의 신뢰를 거론하며 당 지도부 개편론을 일축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히려 김대통령에게 야단을 들은 쪽은 ‘입을 가볍게 놀린’ 민주계였다.

YS가 JP를 필요로 하는 까닭
 김대표의 입지는 그 이후부터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6월19일 그는 당무회의 자리에서 “설익은 과일을 따지 말라”는 말로 입조심령을 내리면서, 당 관계자들의 중구난방식 언급으로 야기된 일련의 정책 혼선을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나섰다. 그동안 정책 입안과 당무를 주도해온 측이 민주계의 이른바 ‘당무 실세’였던 만큼, 이 발언을 두고 구구한 해석이 뒤따랐다.

 여기에 힘을 더 실어준 것은 김대통령이었다. 김대통령은 지나달 27일 민자당 시.도 지부장 초청 만찬 자리에서 유례없이 두차례에 걸쳐 “김대표를 중심으로 합심노력하라”고 당부해 김대표의 위상에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국회에서 황명수 총장이 이부영 최고위원의 김대표에 대한 공세를 사력을 다해 방어한 것은 황총장의 다혈질에도 기인하지만, 김대통령의 의중을 읽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있다.

 ‘약체 대표’로 출발한 김대표가 나름대로 입지를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몸을 낮추는 김대표 특유의 처신, 당 실무와 정책을 주도해온 민주계의 잇따른 실책, 명주.양양 보궐선거 패배, 춘천 보권선거 공천 및 문제 지구당 조직책 인선 과정에서 나타난 난맥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김대통령이 김대표를 필요로 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김대통령은 사정으로 기득권층과 보수 지배세력의 주요 고리를 무력화했다. 그러나 김대표만은 남겨두었다. 이 점은 민정.공화계로 하여금 ‘구세력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라는 상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바로 이것이 김대통령이 노리는 효과다.

 단순한 상징 효과만이 아니다. 김대통령은 민주계 친위부대만으로 민자당을 끌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따라서 김대통령은 김대표에게 사정의 찬 바람 속에서 伏地不動(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는)하는 당내의 보수 세력을 다독거리고 포용해서 개혁 작업 안에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더욱이 요즈음 개혁의 흐름은 어느 정도 국면 전환을 맞고 있다. 경제 위기감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경제 활성화라는 초미의 현안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기 위해 기존 개혁기조를 유지하면서 일정 부분 군과 재계를 끌어안는 타협적인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 한 정치학 교수는 “김영삼 정부는 경제 면에서 하루빨리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초조감 때문에 타협적 흐름을 수용하고 있다. 즉 ‘체제 개혁’보다는 ‘체제내 개혁’으로 물꼬를 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현재의 상황을 규정한다. 보수적인 흐름을 수용하는 것은 곧 김대표의 역할이 그만큼 커지고, 김대통령에게 김대표의 필요성이 그만큼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대통령에게 김대표가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김명윤 고문의 원내 진입 좌절로 민주계 안에서는 당장 김대표 구도를 대신할 만한 대안이 없다. 대안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대표 자리에 앉을 경우 당장 ‘2인자 구도’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 김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에서 후계 구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따라서 김대표 체제는 김대통령에게 정치력의 낭비를 막고 통치권의 누수 현상을 최대한 늦출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치로 여겨지고 있다. 민주계의 한 핵심 당직자는 “김대표 체제는 의외로 오래갈 공산이 크다”면서 김대표 체제가 갖는 상황적 필요성을 인정한다. 초기에만 해도 ‘길어야 1년, 그 이전에라도 언제든지 퇴장’에서 이제는 ‘짧아야 1년, 상황에 따라서는 그 이상이라도’로 달라진 것이다.

 김대통령에게 김대표가 필요하다는 말은 거꾸로 뒤집으면 김대표가 발을 뻗으면 김대통령이 곤란해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부 정치 분석가들이 “현 지배블록 내에 김대통령 외의 정치 실세는 없다. 굳이 있다면 김대표 정도가 역설적 의미에서 정치 실세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역설적인 정치 실세’는 친위 부대나 가신으로서 실세의 위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입장이기 때문에 정치적 위상을 보장받는 경우다. 사실상 노대통령 때 김영삼 대표최고위원도 역설적 의미에서 정치 실세였다. 민주계 수장이자 확고한 지지 기반을 가진 대중 정치인 김영삼은 ‘여차직하면 당을 깰 수도 있다’는 배수진을 치고 노대통령 아래서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

개혁 국면 전환으로 입지 강화
 물론 같은 역설적 실세라 하더라도 김대표의 힘과 과거 김영삼 대표가 지녔던 힘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지역 기반도 상당 부분 상실했고, 계파 수장으로서의 입지는 잃은 지 오래다. 따라서 역설적 실세가 발휘할 수 있는 파괴력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김대표 자신이 노대통령 시절부터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아랫사람으로서의 처신에 충실한 정서를 갖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앞날을 스스로 선택하고 설계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렇다면 김대표가 발휘할 수 있는 역설적 힘은 어디에 있는가. ‘혼자 그만 두는’ 소극적인 저항으로도 김대통령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김대통령 밑의 그 어떤 실세도 현재로서 그만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런 현재의 상황은 김대표의 정치적 과거와 견주어서도 매우 역설적이다. 치고 일어나 5.16 주체로서 정치에 입문한 뒤 그는 처삼촌인 박정희 대통령 아래서 일약 ‘제2인자’ ‘권력자’로 화려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권력으로부터 설움과 견제를 가장 많이 받은 위태로운 실세였다는 게 중평이다. 두 번의 외유 끝에 박정희 대통령 아래서 당의장을 두 번 지냈지만 이미 손발이 다 잘린 명목상의 2인자였고, 박대통령의 손짓 하나면 언제고 권력의 성층권에서 내려앉아야 하는 불안한 처지였다.

 그러나 이제 김대표는 그 반대의 상황에 서 있다. 그 누구도 그를 2인자라고 여기지는 않는 대신, 상황에 따라 대통령에게 가장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실세로 떠올랐다.
 김대표는 정치 권력과 역학 관계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주고 있다
徐明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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