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만 뒤쫓다 핵심 놓친 ‘율곡 감사’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3.07.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세대전투기 부분 빠져 ‘한계’…“감사 방향 다시 잡아야”

두달여에 걸쳐 국민의 비상한 관심 속에 진행된 율곡사업 특별감사가 지난 7월9일을 기해 일단락 됐다. 이회창 감사원장은 이 날 발표를 통해 그동안 실시해온 총 23개 율곡사업 분야 감사 중 차세대전투기사업(KFP)분야를 제외한 22개 분야에 대해 감사처리 결과를 밝혔다. 감사원이 적발한 문제는 총 1백18건이었는데 그 중에서 이종구.이상훈 전 국방부장관, 김종휘 전 청와대외교안보수석, 김종호.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 한주석 전 공군참모총장 등 6명을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으며, 현직 비위 관련자 53명에 대해서도 징계 및 인사 조처를 건의했다.

 이에 따라 차세대전투기사업을 제외한 율곡사업 비리 처리 문제는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70여 일에 걸쳐 실시한 이번 특별감사는 그동안 성역시되어 오던 분야의 비리를 의욕적으로 파고들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감사기간 내내 국민 역시 다른 어느 감사에서도 볼 수 없었던 높은 관심과 기대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발표된 감사 결과의 실질적 내용을 들여다보면 용두사미격 감사에 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차세대전투기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 이번 감사의 한계를 드러낸다. 감사원측은 이에 대해 미국에 의뢰한 자료를 입수하고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한 후 밝히겠다고 했다. 그러나 군 주변에서는 사실상 이번 발표로 율곡감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판단은 곧 이번 감사를 착수한 배경과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시행착오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제보, F18쪽에서 나와
 지난 4월27일 감사원이 전격적으로 율곡사업 감사를 시작한 주요한 배경은 정용후 전 공군참모총장의 폭로성 발언이었다. 공군 인사비리로 구속 위기에 처했던 정씨는 당시 “차세대 전투기 기종이 F18에서 F16으로 바뀐 것은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측의 로비 때문이었다”라고 밝히고 그 과정에 검은돈 수수 등 부정이 있었음을 암시했다. 이에 따라 국내 거의 대부분의 언론은 차세대전투기사업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으며, 감사원도 전격적으로 율곡사업 감사 방침을 내놓았다. 이후 감사가 율곡사업 전분야로 확대되기는 했지만 감사원의 감사 초점은 차세대전투기사업 분야에 대한 부정.비리를 캐는 데 모아져 있었다.

 정용후 전 총장이 주장한 차세대 전투기 기종 변경을 둘러싼 검은 거래 의혹은 감사원 특별감사의 핵심이 되었으며, 감사원과 각 언론기관에는 이에 관한 투서와 제보가 무수히 날아들기 시작했다. 감사원은 처음부터 자존심을 걸고 특별감사에 착수했기 때문에 이들 제보 내용은 큰 원군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6월5일께에는 이종구 전 국방부장관과 김종휘 전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의 가명계좌에서 5억~10억원대에 이르는 뭉칫돈을 적발해냈고, 이 중 일부가 차세대전투기사업과 관련됐다는 단서를 캐내기 위해 감사에 박차를 가했다.

 이어서 6월 중순에는 일부 언론사와 감사원에 ‘특종성’ 제보가 답지했는데, 그 내용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F16으로 기종을 변경하는 대가로 제너럴 다이내믹스사로부터 제3국을 통해 엄청난 뒷돈을 받아 스위스 은행에 예치했다’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너럴 다이내믹스 서울 지사장인 김용호씨가 미국계 씨티은행에 예금계좌를 갖고 있으며, 이곳에 막대한 로비 자금이 예치됐다’는 제보도 들어왔다. 감사원은 즉각 조사를 벌였지만 씨티은행 예금계좌 관련 제보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차세대 전투기 기종 변경을 둘러싼 비리 조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시행착오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감사원이 자체 정보와 치밀한 조사를 토대로 한 기획감사를 벌이기보다는 제보에 의존한 감사를 벌일 수밖에 없는 한계에서 나왔다.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는 제보를 추적해 나갔지만 차세대 전투기 기종 변경을 맡았던 모든 실무자들로부터 뒷돈을 주고받은 흔적은 단 한건도 적발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종구 전 장관과 김종휘 전 수석의 예금계좌 뭉칫돈도 차세대 전투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이 드러났다. 결국 감사원은 허탕을 치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했으며, 일부 언론은 속속 들어오는 제보를 특종인 양 계속 대서특필해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시사저널》이 독자적으로 취재하여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차세대전투기사업과 관련해 이번 감사 기간에 감사원과 일부 언론은 보이지 않는 제보자의 춤에 장단을 맞춘 꼴이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제보자는 놀랍게도 최종 기종 선정에서 패한 F18측 로비스트들이었다.

 F18측 로비를 담당했던 국내 무기상은 AM코퍼레이션의 이영우씨와 코바씨즈 통상의 이동로씨다. 이들은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한 직후 모두 미국으로 잠적해버렸다. 그동안 감사원과 국내 각 언론사에는 이들 진영으로부터 제보된 내용이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6월 중순에는 미국으로부터 국내 ㅅ.ㅎ 신문사와 감사원에 각각 한통씩 제보가 날아들었다. 제보자는 미국에 있는 언론인 이모씨였으며, 제보 내용은 차세대전투기사업 진행 경위가 든 서류로 AM코퍼레이션 전용 봉투 속에 담겨져 있었다. 이 내용 역시 일부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그러나 제보자의 신분과 배후, 제보배경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물론 차세대 전투기 기종선정 과정에서 패한 F18 진영의 제보라 해서 덮어놓고 음해성 첩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원에 접수된 대부분의 제보 내용이 F18 진영에서 나왔으며, 감사의 초점이 이들 제보에 의존해 F16측에만 일방적으로 맞춰진 점은 균형성에 비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제보된 내용은 조사 결과 대부분 음해성 정보로 밝혀져 감사원측에도 혼란만 가져왔다. F18측 핵심 무기상들과, 끝까지 F18을 지지했던 서동열 전 공군참모총장이 감사 시작과 동시에 일찌감치 미국으로 도피해버린 가운데 F16 관계자들만 국내에 남아 감사를 받은 사실도 그간의 감사 방향이 지닌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조립업체 선정 과정도 밝혀야
 지난 70여일 간의 감사 결과 감사원은 차세대 전투기 기종 변경에 관련된 실무진의 비리 사실을 적발하지 못한 가운데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만 남았다고 발표했다. 만약 노 전대통령으로부터도 비리를 적발하지 못한다면 감사원으로서는 크나큰 상처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진행해 온 율곡감사가 핵심을 완전히 비켜갔음을 증명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감사원은 이번 감사 결과 율곡사업의 핵심일 뿐만아니라 감사원의 자존심이 걸린 차세대 전투기사업에 대해 아직까지는 함구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감사원이 스스로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서는 차세대전투기사업 감사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감사원은 F16으로 기종이 변경된 배후에 비리가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7년간 전개된 차세대전투기사업의 구조적 비리 및 문제점의 전모를 가리기 위해서는 기종 변경 의혹 외에도 최초에 F18로 결정되기까지 로비 및 검은 돈 거래는 없었는지, 그리고 F18이 승리한 지 9개월 만에 왜 F16에 밀렸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 최초에 F18 결정을 성사시킨 일부 로비스트와 공군 수뇌부가 미국으로 잠적했다는 사실은 이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국내 조립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86년 10월 삼성그룹 이병철 당시 회장과 전두환 당시 대통령 간의 독대가 있기까지 경과와, 그 뒤 1위로 평가된 대우를 제치고 삼성항공으로 결정한 배경도 국 민이 납득할 수 있게 해명돼야 할 것이다.

 지난 70여일 간의 감사 과정에서 차세대전투기사업에 관한한 국내 언론과 일부 감사반은 사실상 미국 군수업체의 대리전을 수행한 면도 없지 않다. 그것은 이 부분에 대한 감사요원들의 전문지식이 부족한 데도 원인이 있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상대 군수 회사 관련자들의 치밀한 제보 공세를 감사와 보도의 기초로 삼았기 때문이다.

 7월9일의 감사 결과 발표로 율곡감사는 끝난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 섞인 관측들을 한다. 감사원이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유보시킨 차세대전투기사업 전과정의 구조적 문제점을 파헤치는 감사에 남은 시간과 힘을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방향은 그동안 상대측 미국 군수 회사 관련자들이 흘린 역정보 전략에 감사가 말려들지 않았나 하는 자기 평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丁喜相 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