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 관념이 필름 망쳤다”
  • 편집국 ()
  • 승인 199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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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에 관한 기념지적 연구서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50·시카고 대학 교수)거 최근 미디어 비평서 《전쟁과 텔레비전》(베르소 출판사)을 펴내 또 한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사저널》 조광동 통신원이 시카고에서 커밍스를 만났다. 텔레비전이 역사 진실을 왜곡한다고 말하는 커밍스는 지난 88년 영국 템즈 텔레비전과 함께 제작했던 <한국:알려지지 않은 전쟁>의 내용이 미국에서 어떻게 변질됐는지 소상히 밝힌다.
 <편집자>

귀하는 한국에 아주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귀하에 대해 비판적이기도 하다. 그 이유를 무엇 때문이라고 보는가?

 첫째로는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인권 탄압과, 그러한 정권을 지원해 주는 미국에 대해 비판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한국전쟁에 대해 독립된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이나 북한이나 많은 점에서 내 의견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일반 국민은 물론 한국의 학자들까지도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거의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 북한에서는 북한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 했고, 한국에서도 감옥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그 사회를 지배하는 유일한 해석을 거역하기 힘든 실정이었다. 미국에서도 냉전 시대에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권력과 밀착된 사람들, 예컨내 헨리 키신저나 조지 번디 같은 사람들은 아직도 한국전쟁을 공산주의 침략에 대해 자유주의가 승리한 전쟁이라고 해석하고 싶어한다.

최근 러시아 정부가 비밀 자료를 공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자료가 귀하의 한국전쟁에 대한 의견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는가?

 새 자료는 49년에서 50년까지를 취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입장은 한국전쟁의 시작은 45년이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자료는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보는 기본 입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소련 자료에 따르면 50년 침략 당시 스탈린이 생각보다 더 깊숙이 개입했다. 이 사실은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45년에는 스탈린이 마음만 먹었으면 한반도를 전부 장악할 수 있었다. 미군보다 한달 먼저 붉은 군대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왜 5년이나 지난 뒤에야 전쟁 주도에 동의했느냐가 이론적으로 석연치 않다.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일본의 분열 통치 정책에 따라 김일성 중심의 게릴라 세력과 이승만·김성수 세력은 45년에 이미 내전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다음 미국이 한국 분단을 주도했고 소련이 거기에 동조했다. 나는 45년부터 이 5년 간이 한국전쟁의 제니시스(창세기)라고 본다. 예를 들어 49년 한국 군대가 제한적으로 북한을 침략한 것은 사실이다. 50년 북한의 선제 공격은 그러한 일련의 전투의 연장 또는 절정이었다. 한국전쟁은 본질적으로 내전이며 미국과 소련이 내전을 심화시켰다. 한국전쟁에 관한 자료를 보면, 미국은 당사자인 한국은 물론 어느 우방국과도 상의 없이 독자적으로 분단을 주도했다. 북한측이 혁명 과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혁명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발발은 누가 먼저 침략했느냐 하는 사실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각의 문제, 해석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가?

 모든 분쟁의 역사적 기원은 해석의 국면을 가지고 있다. 미국 혁명의 기원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문제도 지금까지 논쟁이 되고 있다. 북한이 50년 6월25일 갑자기 침략을 했다면 우리는 이것을 내전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것은 한반도 울타리 안에서 일어났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분쟁의 결과였다. 역사적 사건은 해석의 일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진실의 그것을 바꾸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전쟁이 내전이라는 것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이다.

한국전쟁에 관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 생각이 쉽게 변할 수 있겠나?

다큐멘터리 필름을 만들 때 군사 전문가인 폴 하클리와 토론한 경험으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하클리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 포로까지 되었던 사람이며 훌륭한 군인이다. 그러나 그는 나와의 토론 끝에 마침내 “당신이 어떤 자료를 가지고 있든 상관없다. 나는 전쟁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다. 당신은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한국인과 얘기할 때도 이런 경험을 한다. 자신이 한국전에 직접 참여했기 때문에 한국 문제는 당사자인 자기만큼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경험함 것밖에는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가의 해석보다 장군의 경험을 더 믿는 것 같다.

귀하는 텔레비전 미디어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한국전쟁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는가?

 나는 아직도 템즈 텔레비전이 제작한 한국전쟁 다큐멘터리를 아주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공영 방송인 PBS가 이 내용을 아주 실망스럽게 고쳤다. 보스턴 PBS는 자문 책임자인 나를 배제하고 주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스틸웰을 기용해서 내용을 수정했다. 스틸웰은 한국전쟁 당시 중앙정보국 동아시아 책임자로 오랫동안 우익 정치에 관계했던 사람이다. 결국 런던 필름과 보스턴 필름은 중요한 대목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트루먼 대통령에 관한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51년 4월 북한과 중국에 원자폭탄 투하를 심각히 고려했다. 이것은 한국전쟁의 큰 비밀 중의 하나이다. 그는 맥아더 장군의 전략을 전폭 수용했던 것이다. 보스턴 PBS는 이 부분이 너무 논쟁의 소지가 강하다고 해서 일부를 삭제하고 의미를 바꾸어 버렸다. 트루먼이 위대한 대통령이라는 국민들의 생각을 거스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전쟁 전에 한국에 3만명의 정치범이 있었다는 증언도 이에 대한 분명한 자료가 있는데도 스틸웰의 반대에 부딪히자 프로듀서가 결국 빼버리고 말았다. 텔레비전 사람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진실을 말하려 하기보다는 거기에 대해 일어날 여론의 반응, 특히 우익 세력의 반응에 더 신경을 썼다. 이승만 정부가 진실을 은폐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휴전된 지 수십년 뒤에 그것도 미국의 공영 TV가 논쟁을 회피하려는 태도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PBS 공영 방송이 다른 일반 상업 방송보다 우수한데도 그 정도이다. 내가 얻은 교훈은 미국에서 제일 간다는 텔레비전도 편협한 정치에 예속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언론 자유가 충분히 보장된 나라가 아닌가?

 한국의 방송이 정부 통제 하에 있었다면 미국의 텔레비전은 자기 검열의 구조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보스턴 PBS 프로듀서의 경우에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검열을 했다. 우익 세력의 비판, 의회의 재정 지원 삭감 따위 때문에 진실을 포기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뉴스가 선별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주요 텔레비전 대담 프로그램은 정부 관리 또는 정부 관리가 되려는 사람들이 워싱턴 언론인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인사이드 벨트웨이(Inside Beltway)라고 하지 않는가. 벨트웨이는 워싱턴 D.C를 둘러 가는 하이웨이를 말하는 것으로, 이 벨트웨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물을 밖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본다는 농담이 있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서로 거래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서로를 자극하지 않게 하는 정치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 관한 대답 프로도 기본적인 방향은 이들에 의해 통제된다.

북한은 언제 다녀왔나?

 81년 미국 학자들과 처음으로 다녀왔다. 그때는 일종의 관광 방문이었다. 87년에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두 번 다녀 왔다. 미군 폭격에 희생된 사람들은 필름에 담던 순간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나는 이것이 한국전쟁이 끝나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많은 한국이나 서방 학자는 북한 경제가 어려워서 정치적 불안정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의 장래에 대한 귀하의 생각은 어떤가?

 현재로서 북한 경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본다. 지난 3~4년 사이에 국민총생산이 2~5% 하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러시아가 작년에 25%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것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북한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옛 유럽과 같은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남북 간의 바람직한 정치적 해결은 지역 자치성을 부여하는 연방제도라고 생각한다. 한쪽이 다른 한쪽은 일방적으로 통합하려고 하는 한 한국의 분단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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